레이싱스쿨 체험기

“주행 중 앞 차량이 급정차해 순간적으로 피해 가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세요. 준비 되셨죠? 출발!”

강사의 신호와 함께 액셀러레이터(액셀)를 깊게 밟는다. 시속 40km로 가속해 달리다가 빨간 표시가 된 지점이 나타나면 핸들을 꺾어 옆 차로로 옮겨 타는 ‘레인 체인지’ 코스다. 첫 번째 콘을 통과하면서 액셀에서 발을 떼고 순간적인 핸들링만으로 차로를 바꾸는 것이 요령이다. 이때 브레이크는 밟지 말아야 한다.

급제동이 걸려 핸들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드디어 빨간 콘이다. 왼쪽으로 힘껏 핸들을 돌리자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며 ‘끼익’ 소리와 함께 차체가 휘청한다. 일렬로 서있는 콘들이 튕겨나가 라인은 엉망이 돼 버렸다. 실패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던 강사가 핸들링이 너무 느리다고 주의를 준다.

“핸들을 좀 더 과감하게 꺾으세요. 지금처럼 느긋하게 돌려서는 안 되죠. 앞에서 뭐가 튀어나왔다고 생각하고 긴장하세요. 차가 흔들려도 당황하지 말고 왼쪽 오른쪽으로 핸들을 확확 재빨리 돌려야 해요.”

강사는 핸들 쥐는 법부터 한 번 더 시범을 보였지만 소심 운전에 익숙한 기자가 따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핸들을 재빨리 좌우로 돌리는 동작을 몇 차례 반복하자 손에 땀이 나고 손바닥이 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도 콘 2~3개가 바퀴에 걸리고 말았다.

세 번째 시도에서 가까스로 차로를 이탈하지 않고 가속해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이런 식으로 매회 속도를 시속 5km씩 높여나갔다. 속도가 빨라지면 핸들링 할 수 있는 여유는 그만큼 짧아진다.
[Car & Life] ‘나도 스피드 레이서’…극한 성능 ‘도전’
돌발 차로변경 어떻게 하나

지난 5월 21일 카레이싱을 체험하기 위해 레이싱스쿨에 참가했다. 서산 현대파워텍 주행시험장에서 레이싱아카데미가 개최한 하루짜리 초급 과정이다. 오는 10월 전남 영암에서 열리는 포뮬러원(F1) 경기로 최근 국내에서도 카레이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동차가 성인들의 장난감이라면 레이싱은 운전자의 로망이다. 심장을 울리는 엔진 음과 짜릿한 스피드는 상상만으로도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린다.

처음부터 ‘F1의 영웅’ 미하엘 슈마허를 꿈꾼 것은 아니지만 카레이싱에 대한 부푼 기대는 출발부터 여지없이 무너졌다. 석가탄신일 연휴를 즐기기 위해 쏟아져 나온 차량들에 발이 묶여 이른 아침 서울을 출발한 일행은 점심때가 다 돼서야 겨우 서산 현대파워텍에 도착했다. 허허 벌판에 자리한 교육장도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길이 1.2km, 폭 60m의 도로만 있을 뿐 경주용 트랙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동훈 레이싱아카데미 대표는 “용인 스피드웨이가 확장 공사를 이유로 문을 닫고 안산 스피드웨이는 폐쇄돼 레이싱 교육을 할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라며 “그나마 조만간 사라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매월 1~2회 임차해 쓰고 있는 이곳마저 폐쇄되면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태백 레이싱파크나 현재 건설 중인 영암 F1 경기장으로 옮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이날 현대파워텍 주행시험장에 모인 참가자는 기자를 포함해 모두 6명. 초급반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대부분 레이싱스쿨 프로그램을 이미 몇 차례 수강한 고성능 고급 차량 운전자들이다. 강사는 레이싱 챔피언 출신인 장순호 선수가 맡았다.

장 선수는 올 초 한류 스타 류시원이 이끄는 프로 카레이싱 팀 ‘EXR팀106’에 영입돼 올 시즌 활약이 기대되는 일급 레이서다. 경기장에서의 빠른 스피드와 대비되는 느릿느릿한 말투가 인상적이다.

오후에 시작된 ‘레인 체인지’ 코스는 난이도가 더 높은 ‘더블 레인 체인지’로 이어졌다. 순간적으로 차로를 바꾼 다음 곧바로 원래 차로로 복귀하는 것이다. 급정차한 앞 차량을 피해 차로를 바꿨다가 다시 돌아가는 긴박한 상황을 상상하면 된다.

자동차 동호회 용어로 하면 ‘칼질’이라고 한다. 레인 체인지에서와 같이 시속 40km로 시작해 시속 5km씩 속도를 높여갔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스릴이 넘친다. 좌우 핸들링을 얼마나 신속하게 해 균형을 잡느냐가 관건이다.

마지막은 ‘8자’ 코스다. 두 개의 작은 원 사이를 8자를 그리듯이 10회 왕복하는 것이다. 첫째, 액셀에서 발을 떼며 부드럽게 코스에 진입한다. 둘째, 핸들을 꺾고 코너를 돈다. 셋째, 액셀을 밟아 가속하며 빠르게 나온다. 넷째, 같은 방식으로 반대편 코너를 돈다.

“코너를 돌 때 몸이 같이 기울면 안 됩니다. 목이나 자세가 곧발라야 안정적인 핸들링이 가능해요. 시선은 가능하면 멀리 보세요. 좁은 원 사이를 맴돌기 때문에 가까이 보면 순간적으로 헷갈릴 수 있어요.”

8자 코스는 카레이싱에서 가장 중요한 코너링 공략법을 익히기 위한 것이다. 레이싱에서 승부를 결정하는 코너링이다. 직선 코스에서는 웬만해서는 상대편을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누가 얼마나 짧은 코스로, 얼마나 빨리 코너를 도느냐에 따라 순위 간격은 점점 벌어진다.
[Car & Life] ‘나도 스피드 레이서’…극한 성능 ‘도전’
6명 참가자 중 꼴찌 졸업

코너링의 기본 원칙은 두 가지다. 첫째는 ‘아웃 인 아웃(Out in Out)’. 커브를 돌 때 바깥쪽에서 진입해 바깥쪽으로 나가는 것이다. 커브를 최대한 직선화해 스피드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둘째는 ‘슬로 인 패스트 아웃(Slow In Fast Out)’. 속도를 줄여 느리게 진입해 코너를 돈 다음 가속해 빠져나가는 것이다. 코너 진입 때 속도를 충분히 줄이지 않으면 원심력에 의해 차가 밀려 나가는 ‘언더 스티어링’이나 ‘오버 스티어링’이 발생한다.
[Car & Life] ‘나도 스피드 레이서’…극한 성능 ‘도전’
장 선수는 “어차피 코너링은 ‘슬로 인’으로 손해를 보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탈출 때 속도를 내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코너링에서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코너에 얼마나 가깝게 붙어서 돌아가느냐다.

코너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이동 거리가 길어지고 기름 값도 많이 들어간다. 일반 운전이나 레이싱이나 기본 원리는 똑같다. 코너링 요령을 잘 기억하면 안전 운전, 연비 운전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출발 신호와 함께 8자 코스를 향해 돌진했다. 첫 번째 코너를 돌자마자 ‘끼이익~끼이익’ 소리를 내며 차가 바깥쪽으로 쭉 미끄러졌다. 요령을 아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라는 걸 또 한 번 실감했다. 핸들을 꺾어 차를 바로 세우고 액셀을 꾹 밟았다.

너무 가속도가 붙었는지 반대편 코너에서 또 한 번 미끄러진다. 원 사이를 미친 듯이 오가다 정신을 차려보니 10번을 다 돌았다고 손을 흔든다. 코스 주변에 타이어 자국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두 번, 세 번 반복하니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Car & Life] ‘나도 스피드 레이서’…극한 성능 ‘도전’
레이싱스쿨의 대미는 기록 측정으로 장식됐다. 코스는 저속 슬라럼(일렬로 놓인 콘 사이를 지그재그로 오가는 것)→더블 레인 체인지→8자 코스→고속 슬라럼 순으로 짜여졌다.

오는 10월 영암에서 개최되는 F1 경기 우승자에게 수여될 대회 공식 샴페인 ‘G H MUMM 코르동 루즈’ 1병이 상품으로 걸렸다. 상품이 걸리자 은근히 경쟁심이 발동했다. 기자는 두 번 도전에서 1분 03초 37, 1분 00초 05를 각각 기록했다. 46초 42를 기록한 1등과는 큰 차로 6명 중 꼴찌다.

장 선수는 “밖에 나가면 의욕을 가라앉히고 안전 운전하라”며 손을 흔든다. 카레이싱에 대한 환상은 깨졌지만 운전에 대해 훨씬 잘 알게 됐다는 뿌듯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국내에서 운전면허를 따고 나면 운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은 레이싱스쿨이 유일하다.

서산=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