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보름 정도 지난 2008년 3월 12일. 경기도 용인의 3군 사령부 참모 식당에 모인 ‘별’들과 국방부 간부들이 이 대통령으로부터 호된 ‘얼차려’를 받았다.국방부 업무 보고 도중 이 대통령은 “체질을 끊임없이 바꿔라”는 등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했다. 하루 전인 3월 11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도 “낡은 관행과 비효율을 과감하게 털어내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후 지금까지 2년 넘게 군을 향해 끊임없이 ‘쓴소리’를 쏟아냈다. ‘군(軍)을 믿는다’는 대전제를 깔면서도 강력한 쇄신을 요구해 왔다.
예는 수두룩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8일 국무회의에서 국방 업무 관련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제도적 차원에서 기존 업무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투명한 국방 예산 집행을 위해 제도 개선을 포함한 선진 운영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1주일 후 국방일보 기고문에선 “병무·군수·방산 등 국방 전 부문의 부조리와 비리를 막기 위해 더 개선된 제도와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3월 18일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보직 신고식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동일한 시스템과 누적된 관습으로는 새로운 변화와 개혁이 이뤄질 수 없다”며 “선진 강군은 군을 정예부대화하고 무기를 현대화하는 군사력 증강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군의 운영 방식과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전반적인 선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천안함 사고 이후엔 보다 직설적으로 쇄신을 강도 높게 요청했다. 4월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7차 지역발전위원회 회의에서 “(남북이) 분단된 지 60년이 되다 보니까 군(軍)도 다소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질타했다.
4월 22일에는 군 원로들과 만나 “나는 기본적으로 군을 믿지만 관행적으로 계속해 오던 일을 한번 철저하게 돌아보고 문제가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정비해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천안함 사고 이후 직설적으로 쇄신 요구
이 대통령이 군을 불신하는 이유는 뭘까.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기업을 경영해 본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봤을 때 구조적 허점이 많은 데도 군은 수십 년 전의 시스템을 유지해 국방 업무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요소와 비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국방 조달 관련 비리가 끊이지 않고 안보 대응 체계에 허점이 드러난 것은 어느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시스템 전반에 문제가 많다는 인식이다.
한마디로 과거의 누적된 관습에서 비롯됐다는 게 이 대통령의 판단이다. 지난해 11월 군납 비리 의혹이 잇달아 터지자 “현재의 구조에는 근원적으로 비리가 생길 틈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라며 획기적인 개선책을 지시한 것은 시스템적 차원으로 접근하라는 의미다.
2년 넘게 쇄신을 촉구했지만 군이 개혁에 대해 큰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이 대통령의 인식이라고 한 참모는 전했다. 오히려 이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시책에 대해 군 당국이 맞서는 모양새를 보이기도 했다. 송파신도시 내 특전사령부와 남성대 골프장 이전 재검토를 요구하기도 했고,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 신축을 놓고도 청와대와 국방부는 이견을 보였다.
천안함 사고 대응 과정에서 군의 문제점이 함축적으로 나타나자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이 대통령의 선택은 민간 사령탑에 의한 군 개혁이다. 이미 지난해 말 국방개혁실장에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를 임명했고,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위원장엔 이상우 전 한림대 총장을 발탁했다. 이어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를 만들어 의장에 이상우 위원장을 발탁했다.
위원들 중에 육해공군 장군 출신들이 골고루 포진해 있지만 군 개혁 주요 기구 수장에 민간인을 내세웠다는 점이 특이하다. 현역은 완전히 배제했다.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국가 안보 시스템에 본격 메스를 대겠다는 뜻이다.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는 5월 13일 첫 회의를 열고 가동에 들어갔다.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는 미국이 9·11 테러 이후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블루리본위원회’와 성격이 엇비슷하다. 2, 3개월 후 우리나라 국가 안보의 쇄신 틀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국판 블루리본위원회’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안보 시스템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홍영식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