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식품공업이 경영권 방어 수단인 ‘포이즌 필(poison pill)’ 도입을 위한 정관 개정안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했다. 이에 대해 2대 주주가 의안 상정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포이즌 필을 도입하기 위한 정관 개정이 위법하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포이즌 필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법원이 포이즌 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법적으로 포이즌 필을 하면 안 된다는 내용도 없다.

이것을 적법하도록 하기 위해 포이즌 필로 활용될 수 있는 ‘신주인수선택권’ 도입을 위한 상법 개정안(회사편)이 마련돼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신주인수선택권’은 일정한 기간 내에 발행 회사로부터 일정한 수량의 주식을 저렴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옵션 권리를 의미한다. 이 권리를 적대적 매수자를 제외한 기존 주주들이 행사하면 적대적 매수자의 지분이 희석돼 적대적 인수를 포기하게 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개정안에서는 이사회 결의를 통해 포이즌 필 사용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 주면서도 이사들(경영진)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기 하기 위해 사전에 정관 변경을 의무화하고 있다. 상법상 정관 변경은 주주총회 특별결의(출석 주주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 사항이다.

그런데 외국인 보유 지분이 높은 대기업들은 현실적으로 이러한 결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돼 왔다. 법무부 장관 역시 현 개정안의 개정 필요성을 최근 언급한 바 있다.

물론 포이즌 필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는 필요하다. 문제는 주주총회 특별결의라는 엄격한 요건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우므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모든 주주와 회사 전체의 장기 이익을 명백히 훼손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포이즌 필을 사용할 수 없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주주총회와 상관없이 이사회가 포이즌 필의 도입과 사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주주총회의 관여 여부는 이사회가 회사 전체의 이익을 위해 포이즌 필을 사용했는지 사법부가 사후적으로 판단하는 ‘정당성 판단’의 한 요소로 고려되고 있다.

즉, 포이즌 필 사용이 회사와 모든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했다는 사실을 법원에서 설득력 있게 입증하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법원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상법 개정안처럼 사전에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면 이러한 설득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이사회 결의만으로 포이즌 필 사용이 가능하도록 상법 개정안을 다시 개정할 필요가 있다. 주주들의 관여가 필요하다면 일본처럼 행정부의 지침으로 이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지침이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대부분의 일본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포이즌 필을 사용하고 있고 일본 사법부도 이러한 경우에 정당성을 인정해 주고 있다. 그러나 주주총회를 거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 상법 개정안처럼 당연위법(當然違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사들의 포이즌 필 사용이 사후적으로 부당하다고 판단된다는 것은 포이즌 필을 회사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막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만의 이익을 위해 포이즌 필을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기업들이 스스로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포이즌 필을 사용하는 경우와 법적으로 강제해 그렇게 하는 경우는 분명 다르다. 상법 개정안처럼 입법에 의한 강제적이고 획일적인 개입보다 행정부의 지침과 사법부에 의한 ‘부드러운 개입(nudge)’을 통해 기업들의 자발적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포이즌 필’ 개정안의 문제점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약력 :
1970년 서울 출생. 중앙대 경제학과 졸업. 연세대 법학 석사·박사. 2005년 연세대 법학연구소 연구원. 2007년 한국경제연구원 법경제연구실 선임연구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