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엑스포서 나타난 중국·대만 밀월
지난 5월 1일 상하이 엑스포 전시장. 오전 9시 개장과 동시에 몰려든 수많은 인파가 서울 여의도 3분의 2 넓이의 전시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중국관을 비롯한 여러 참가국 전람관 앞에는 어느새 긴 줄이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전시장 주도로 옆 대만관의 분위기는 달랐다.“오후 늦게 다시 오라”며 예약표를 나눠주던 관계자는 “대만의 고위 인사들은 물론이고 한정 상하이 시장을 비롯한 중국의 지도자들이 잇따라 예방하기 때문에 부득이 늦은 오후부터 일반인 관람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40년 만에 엑스포에 다시 참가한 대만은 이렇게 중국 지도자들의 환대를 받고 있었다.
5월 1일 개막해 10월 31일까지 184일간의 일정에 들어간 상하이 엑스포 하루 관람객 수가 하루 평균 예상 규모인 40만 명에 크게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엑스포 속의 양안(兩岸:중국과 대만)동맹은 뜨겁다. 현장의 8만여 직원들이 입고 있는 단체복은 대만계 세탁 업체인 샹왕이 제공한 것이다.
엑스포조직위원회는 감사의 뜻으로 1000만 위안(17억 원)어치의 세탁 쿠폰을 샹왕으로부터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중국관에서 안내하던 뤼천(상하이 푸단대 2학년) 씨는 입고 있는 옷이 대만 기업이 제공한 것이라고 알려주자 “중국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것도 좋지만 대만과 가까워진다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라며 웃었다.
◇ ‘양안동맹’ 무르익어 = ‘엑스포의 축’으로 불리며 동양과 서양의 국가관을 가로지르는 길이 1km의 대형 상가에 위치한 중화미식가(中華美食街)는 캉스푸·차이이줘·TMSK·양안커피 등 대만의 외식 업체가 점령했다.
어차이줘의 종업원 셰밍 씨는 “이번 엑스포를 계기로 중국 내에 좀더 많은(대만) 매장이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만의 션다그룹은 엑스포 공식 스폰서로 참가해 위성항법장치(GPS) 시스템을 제공했다.
양안의 밀월은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관과 엑스포 전시장 주도로를 사이에 두고 선 대만관은 제갈공명의 모자를 형상화해 ‘공명등’이란 이름이 붙었다. 단독으로 기업 전람관을 운영하고 있는 대만 사무용품 회사 전단그룹은 중국의 유명한 옥 제품을 전시하고 가공 기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자사 생산품은 전시하지 못하게 한 규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화의 우수한 문화를 알리는 게 이번 엑스포 참가의 목적(전단그룹 왕단 경리)”이라며 본토의 문화를 알리기 바빴다. 엑스포의 마스코트 하이바오는 대만의 유명한 디자이너 우용젠이 설계한 작품이고, 대만의 유명 가수인 우스카이는 주제가를 작곡했다. 상하이 엑스포는 ‘양안 공동 엑스포’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듯했다.
중국 측 기대와 지원도 화끈하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4월 29일 저녁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상하이를 찾은 롄잔과 우보슝 등 전 대만 국민당 주석과 송추의 친민당 주석과 같은 대만 지도자들과 만나 “양안의 중국인들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함께 완성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며 “엑스포는 중화민족의 자부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롄잔 전 주석은 “대만이 엑스포에 참가한 것은 양안 간 평화를 위한 노력의 결실”이라며 “양안 간 경제협력 기본협정(ECFA)을 서둘러 올해 안에 체결하자”고 화답했다.
이 같은 우호적 분위기 때문인지 엑스포 현장에선 대만에 대한 특혜도 주어졌다. 대만관에서 관람객들에게 준 선물꾸러미에 들어있는 컵라면은 대만 통일그룹의 제품이라는 스티커가 눈에 띄게 붙어 있었다.
브랜드 홍보를 못하게 돼 있는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현지 관계자는 “엄격히 말하면 규정 위반이지만 주최국인 중국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 온기 없는 남북의 전람관 = 한편 불과 400m 정도 떨어진 한국과 북한의 전람관 사이엔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상하이 엑스포 개막식에서 눈길도 마주치지 않았던 냉랭한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 쪽 관계자들은 한국 국가관을 거의 찾지 않았다.
그나마 남쪽 관광객 중 호기심에서 북한관을 찾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다. 북한관을 아이들에게 구경시켜 주기 위해 찾아왔다는 김명준(41·상하이 거주) 씨는 “엑스포 현장에 와보니 곳곳에 대만식당이 눈에 띄는 등 양안이 부쩍 가까워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지만 남북한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 720도 극장, 먹는 그릇 = 대만관 5층에 들어서자 커다란 원구가 나타난다. 지름 15m 정도의 원은 위아래가 모두 극장이다. 둥그런 원의 반을 가른 다리가 안쪽에서 객석 역할을 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치솟은 돌고래가 머리위로 떠오르더니 발밑 물속으로 다시 사라진다. 타이베이 가오슝 등 대만의 주요 지역을 4차원 입체로 보여준 720도 극장은 대만관이 자랑하는 새로운 영상 시스템이다. 이번 상하이 엑스포의 특징은 이처럼 첨단 신기술이 생활에 접목된다는 점이다. 한국관의 영상 터치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친환경 기술 또한 이번 엑스포를 상징하는 기술이다. 영국관에서는 먹는 그릇이 등장했다. 이는 탄소 배출 제로를 겨냥한 것으로 녹말가루 등을 고체화한 그릇이다.
직경이 97m에 달하고 높이가 42m인 집열관은 단순히 빛을 모으는 게 아니라 빛을 자연스럽게 아래쪽으로 분사해 지하 공간에서도 태양광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첨단 기술이 적용됐다.
“1000년 전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네.” 상하이 엑스포 개막 첫날인 지난 5월 1일 오전, 1시간 넘게 줄을 선 끝에 들어간 중국관 맨 위층(12층). 움직이는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를 보는 관람객 사이에서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상하이 엑스포 조직위원회가 국보급 명화(名畵)라고 일컫는 청명상하도는 청명절 도성 내외의 번화한 강가 정경을 묘사한 그림이다.
안내원은 “북송시대 화가 장택단(張擇端)이 당시 수도 개봉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을 토대로 만든 디지털 영상물”이라며 “면적만 832㎡로 원작의 700배”라고 소개했다. 가로 528.7cm 세로 24.8cm인 그림이 폭이 6.5m이고 길이가 무려 128m에 이르는 첨단 영상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였다. 원작에는 약 600명이 있는데 이 디지털 영상에서는 주간에는 691명,야간 풍경에는 377명이 등장한다고 안내원이 전했다.
밤풍경은 원작에는 없다. 시장의 좌판에서 물건을 사거나 술 마시면서 손가락을 내미는 게임을 하고, 가마와 말을 타는 장면 등이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관람객들을 1000년 전 시대로 빠져들게 했다. 이 작업을 맡은 수정석(水晶石) 디지털과학기술공사의 위정 총감독은 원작의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원작의 60% 이상을 살렸다고 전했다.
상하이 엑스포는 청명상하도를 통해 고대 중국의 번화한 도시 풍경과 첨단 기술을 결합, 중국 문화와 첨단 기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움직이는 청명상하도가 현대 첨단 기술과 결합해 중국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었다.”(인민일보) 청명상하도는 중국관에 있는 허난성관에 들어설 때도 등장했다.
35명의 예술가와 공인들이 만든 12톤 무게의 대형 나무뿌리에 청명상하도를 새긴 조각 작품이 전시된 지하 1층엔 카메라와 휴대전화를 든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허난성관 바깥에 설치한 170㎡ 크기의 대형 LED 전광판에도 청명상하도 그림이 등장했다.
‘동방의 으뜸, 번성하는 중화, 천하의 곡창, 부유한 백성(東方之冠, 鼎盛中華, 天下糧倉, 富庶百姓)’을 주제로 중국 문화의 자신감을 표현한 중국관은 높이 69m의 웅장한 건물로 20m로 높이를 제한한 다른 국가관에 비해 규모면에서 압도한다. 훙하오 상하이 엑스포 사무협조국장은 “개막 첫날 가장 인기를 끈 전람관은 중국관으로 3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고 말했다.
상하이 엑스포 개요
● 기간 : 2010년 5월 1일∼10월 31일(총 184일)
● 성격 : 5년마다 열리는 국제박람회기구(BIE) 공인 ‘등록 엑스포’
● 주제 : 더 좋은 도시, 더 좋은 삶(Better City, Better Life)
● 전시장 규모 : 5.28㎦(여의도 크기의 3분의 2)
● 참가국 : 189개국과 57개 국제기구, 18개 기업(연합)관
● 예상 관람객 : 7000만 명(95%가 중국인)
● 투자 금액 : 286억 위안(4조6200억 원)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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