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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4개월 만에 중국을 방문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행보는 다시 돌아봐도 기행(奇行)에 가깝다. 이전처럼 이번 방중도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채 진행됐다. 민주적인 현대 국가에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였다.

어떤 경로를 택해, 중국의 어디를 방문할 것인지가 그의 출발 이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렇듯 중국을 방문하는 것부터 철저하게 은폐형이니 중국에서 누구누구를 만날지, 상하이 엑스포 같은 곳을 방문할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려지지 않았다.

이것이 북한식 외교다. 물론 중국이 여기에 철저하게 동조했다. 북한의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언론도 취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보도를 거의 하지 않다가 그가 평양으로 돌아간 뒤에야 비로소 기사를 쏟아내는 것은 하나의 관례였다. 중국에서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라는 이들도 입을 닫기가 일쑤였다.

김 위원장의 방북은 방식이나 시간이나 모두 상식적이지 않았다. 월요일인 5월 3일 새벽 5시 20분(현지 시각)에 17칸의 특별 기차가 신의주와 맞붙은 중국 단둥에 도착한 사실이 파악되면서 비로소 언론에 노출됐다. 거꾸로 시간을 계산해 보면 평양 출발 시간은 일요일 밤 12시쯤이 된다.

휴일 심야에 기차로 국경을 넘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정상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관행은 이렇지 않다. 3년 반 동안의 청와대 출입 기자 경험을 돌아보면 몇 가지 형식이 기억난다. 따지고 보면 각별한 형식이랄 것도 없이 지극히 상식적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방문하는 쪽의 일정에 맞춰 출발하면 된다. 물론 국빈 방문, 공식 방문, 실무 방문 등으로 상대국 방문의 격에 맞춰 일정이 진행된다. 종종 방문국 현지 사정에 맞춰 도착하자마자 공식 환영식이라든가 국빈 환영 행사가 있을 때도 있는데 이 경우는 다르다. 시간차까지 감안해 현지 행사에 맞추도록 하면 출발 시각은 주말이 될 수 있고 심야가 될 수도 있다.

영국, 까다로운 의전으로 유명
<YONHAP PHOTO-1080>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steps into a car at a hotel in Dalian, China May 3, 2010. Reclusive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reportedly went to China seeking aid and protection from his only major ally after bungled policies at home and military grandstanding that has exasperated the region. REUTERS/Kyodo (JAPAN - Tags: POLITICS IMAGES OF THE DAY) JAPAN OUT. NO COMMERCIAL OR EDITORIAL SALES IN JAPAN. FOR EDITORIAL USE ONLY. NOT FOR SALE FOR MARKETING OR ADVERTISING CAMPAIGNS. YES/2010-05-04 15:34:38/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steps into a car at a hotel in Dalian, China May 3, 2010. Reclusive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reportedly went to China seeking aid and protection from his only major ally after bungled policies at home and military grandstanding that has exasperated the region. REUTERS/Kyodo (JAPAN - Tags: POLITICS IMAGES OF THE DAY) JAPAN OUT. NO COMMERCIAL OR EDITORIAL SALES IN JAPAN. FOR EDITORIAL USE ONLY. NOT FOR SALE FOR MARKETING OR ADVERTISING CAMPAIGNS. YES/2010-05-04 15:34:38/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미국 같은 곳은 국가 원수급 손님을 받아들일 때도 영국적 전통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전례대로 하면 미국 대통령과 회담 때도 바로 워싱턴DC로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손님 접견 전통 중엔 “국빈은 ‘국경’을 넘어 미국 국토를 밟아 수도로 이동한다”는 것도 하나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전에 한국의 대통령이 큰 목적이 없으면서도 뉴욕에 먼저 도착해 동포 간담회나 미국 재계 인사와의 간담회 등 덜 중요한 행사를 가진 뒤 워싱턴DC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정한 사안을 염두에 둔 실무 방문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방문인 국빈 방문이나 여기에 준하는 형식일 경우에 이런 과정을 밟는다. 예우가 높을수록 공식 방문단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

백악관 인근의 미국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만 하더라도 19세기에 지어진 낡은 건물이다. 그러나 역사와 유례가 깊은 이곳에 머무르기는 쉽지 않다. 의전으로 치자면 영국을 빼고는 얘기가 안 된다.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의 전통 때문인지 영국은 엄격하다.

영국은 매년 국빈으로 받아들이는 외국 손님도 한손에 꼽을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대통령이니 총리니 왕이니 하는 타국의 손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실무·공식 방문으로 영접하고 국빈 방문만큼은 엄하게 숫자를 제한해 제대로 대접하는 방식이다. 대개 국가별 순서도 미리 정해져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국 국빈 방문을 무척이나 하고 싶어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재임 기간 중에 한국이 국빈 방문국 순서를 배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대신 김 전 대통령이 무척이나 공을 들인 결과는 한참 뒤에서야 나타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빈 방문이라는 ‘호사’를 누렸다.

그래봤자 별것도 없다. 공식 수행단이 버킹엄 궁에서 묶고 이 궁에서 런던 시내 한복판을 한 시대 전의 화려한 마차로 퍼레이드를 한판 벌이는 정도다. 그러나 뭔가 대접받는다는 느낌만큼은 확실히 받는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기도 하다.

은둔의 공화국 같은 북한 지도부의 은밀한 중국 방문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2009년 10월에 불거진 연말 방중설은 ‘연말연초’로, 다시 ‘연초’로 변했다가 수그러들곤 했다. 이후 몇 차례 방중설이 더 나돌았으나 그때마다 불발로 끝나는가 했는데 결국 야음을 이용한 비밀스러운 방중이 이뤄졌다. 뉴스의 극적 효과나 북한 지도부의 신비감만큼은 한껏 키웠다.

허원순 한국경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