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국내 자산 규모 1위를 다투는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 작업이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 조짐이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금융 민영화 완료 시점에 대해 “연말을 넘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매각에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정권 후반부로 갈수록 추진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간단하게 넘길 말은 아니다.

우리금융 민영화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최근 정부와 청와대의 인적 구성 변화다. 우리금융과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묶어 민영화하자는 소위 메가뱅크 진영의 부상이 눈에 띈다.

우선 메가뱅크론의 주창자라고 할 수 있는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가경쟁력위원회 위원장 겸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을 맡으면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강 위원장을 보좌하다가 잠시 필리핀 대사로 물러나 있던 최중경 전 재정부 차관은 경제수석으로 복귀했다.

지난 4월 승진한 임종룡 재정부 1차관은 강 장관 시절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이었고 최상목 전 비서실장은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을 결정하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으로 가 있다.

반면 우리금융 민영화와 국책은행 민영화를 따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진영은 수명이 다해 가는 모습이다. 진동수 위원장을 비롯한 현 정부 2기 경제팀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 대거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진 위원장을 측면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은 7월에 있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우리금융 민영화와 국책은행 민영화를 분리해서 진행해야 한다는 진영의 뜻에 따라 금융 산업 구도가 그려져 왔지만 앞으로는 메가뱅크론자들의 의중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문제는 정책 방향이 바뀔 경우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은 더욱 더뎌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금융 민영화가 또다시 장기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메가뱅크론자들의 귀환
세션1 G20 정상회의와 금융시장의 새 질서.
진동수 금융위원장 특별 연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0.04.21
세션1 G20 정상회의와 금융시장의 새 질서. 진동수 금융위원장 특별 연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0.04.21
메가뱅크를 추진하는 데도 걸림돌은 있다. 가장 큰 변수는 폴 볼커 미국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의 이름을 따 ‘볼커룰’로 불리는 대형 금융사 규제 방안이다.

볼커룰은 시장점유율이 10%를 넘는 금융회사는 추가적인 인수·합병(M&A)이나 지분 인수를 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 20개국(G20)은 11월 서울 정상회의에서 전 세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대형 금융사 규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내 금융사들은 글로벌 금융사에 비하면 규모가 작아 볼커룰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이지만 G20 의장국으로서 국제적인 동향을 거스를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일부에서 G20 정상회의가 끝난 다음인 올 연말이나 돼야 우리금융 민영화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금융의 인수 후보인 금융사들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민영화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알아야 필요한 준비를 할 텐데 지금으로서는 예상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금융 업계에서는 미국 등 선진국들이 주도하고 있는 대형 금융사 규제 논의는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글로벌 금융 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선진국 금융사들은 모두 M&A를 통해 성장해 왔는데 이제 와서 대형 금융사의 M&A를 막겠다는 것은 경쟁자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시장점유율이 10%를 초과하는 금융사의 M&A를 금지하는 볼커룰을 한국에 적용할 경우 KB금융·우리금융·신한금융 등 3대 금융지주는 M&A를 할 수 없다.

메가뱅크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할 경우 그 정도 규모의 금융사를 인수할 주체가 있느냐 하는 점도 문제다. 내년이면 이명박 정부는 집권 4년 차가 된다.

정권 후반부로 갈수록 우리금융 민영화와 같은 대형 과제를 실행하기 어려워진다고 봐야 한다. 국내 금융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면서 국제적인 규제의 틀에서도 벗어나지 않는 우리금융 민영화의 묘수는 과연 무엇일까.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