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함을 만드는 ‘곡선 사고’의 힘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한때 사람들을 비난하기를 좋아했다. 젊은 시절 링컨은 곧잘 다른 사람을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조롱하는 편지나 시를 지어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길가에 놓아두곤 했다. 이런 편지 때문에 일생 동안 링컨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된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다. 변호사로 개업한 이후에도 신문 투고를 통해 상대방을 공개적으로 공격하곤 했다.

한번은 너무 지나쳐 큰 말썽이 났다. 서른네 살 때인 1842년 가을 링컨은 허세를 잘 부리고 시비 걸기를 좋아하는 제임스 쉴즈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정치인을 조롱하는 익명의 투고를 ‘스피링필드 저널’에 보냈다. 그 글이 실리자 사람들을 쉴즈를 비난하고 비웃었다. 화가 난 쉴즈는 링컨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미시시피 강변의 모래사장에서 만나 결투하기로 했다.

링컨은 육사를 졸업한 사람에게 기병대용 장검으로 결투에 대한 교습을 받으며 준비해야 했다. 목숨 건 결투를 시작하려는 순간에 쌍방 입회인의 중재로 화해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한 죄과로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던 것이다. 혼쭐이 난 링컨은 그 후 다시는 남을 조롱하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

남북전쟁 때인 1863년 포토맥지구 전투사령관 미드 장군은 참패를 거듭했다. 그런데 포토맥 강이 홍수로 강물이 불어나 남부군의 리 장군을 사로잡으면 단숨에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링컨은 미드 장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고 전투 개시를 요구하는 특사를 보냈는데 어쩐 일인지 미드 장군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결국 강물이 줄어들었고 리 장군은 병력과 함께 포토맥 강을 무사히 건넜다. 링컨은 격노했다. 링컨은 미드 장군을 엄중히 질책하는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미드 장군. 남부군은 궁지에 몰려 있었고 최근 승리한 기세를 몰아 조금만 더 밀어붙였다면 이번 전쟁은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장군이 효율적으로 부대를 통솔할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링컨은 이 편지를 부치지 않았다. 링컨 사후 그의 서류함 속에서 발견됐다. “남의 비판을 받고 싶지 않으면 남을 비판하지 말라.” 링컨의 말이다. 상대방을 나쁘게 말할 때도 링컨은 “그 사람들을 비난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처지였다면 우리도 역시 그렇게 했을지 모르니까요…”라고 말했다. 비판하기 잘하던 사람에서 비판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모하면서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됐고 결국 노예해방이라는 역사적인 개가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남을 비난하지 않았던 링컨은 평생 비난과 협박에 시달렸다. 그가 노예해방을 단행하려고 하자 암살단까지 공공연하게 활동하기도 했다. 비난과 협박에 시달리던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주머니에서는 낡은 신문 한 조각이 발견됐다. 그 쪽지에는 ‘링컨은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 중 한 사람이었다’고 적혀 있었다.
‘굽히는 자’가 ‘꼿꼿한 자’를 이긴다
상대를 몰아세우면 자기에게 돌아와

리더라면 누구나 비난과 비판의 유혹에 직면한다. 비난하면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올릴 수 있지만 장기적인 성과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려면 비난하기보다 용기와 위안을 주어야 한다.

또 리더라면 누구나 조급증의 유혹에 빠진다. 이때 조급증을 이겨내지 못하면 결코 큰일을 이루어낼 수 없다. 작은 일을 참아야 큰일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청나라 옹정제가 여기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리더다.

옹정제는 “급함을 경계하고 참아야 함을 단 한시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옹정은 청 번영의 기반을 구축한 황제로 평가받는다. 옹정은 황제의 보좌에 오르기 전에 45년 동안 황자 생활을 했다. 45년 중 30여 년을 황태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보냈다. 그것은 황태자였던 윤잉의 폐위에서 시작됐다. 그때부터 ‘태자 쟁탈전’이 시작돼 30년동안 지속된 것이다.

황태자 후보로는 강희의 35명 아들 중 맏이 윤시, 셋째 윤지, 넷째 윤진, 여덟째 윤사, 열넷째 윤제 등이 부각되었다. 이 중 윤사는 활달하고 인맥이 넓었다. 신하들이 그를 추천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강희는 신하들의 이런 강권하는 분위기에 노여움을 드러냈다. 결국 윤사는 태자에서 탈락했고 작위까지 빼앗겼다. “누구든지 사당을 만들어 태자의 자리를 꾀하는 자는 나라의 적으로 간주하고 엄벌로 다스리겠다.”

윤진은 이때부터 ‘두드러짐’을 극도로 경계하고 격렬한 태자 싸움으로부터 짐짓 달관한 듯한 태도를 취했다. 승려들과 교유하면서 사원을 짓고 ‘천하에서 가장 한가한 사람’인 척하며 ‘열심집(悅心集)’이라는 책까지 지었다.

“인생 칠십 사는 사람 드물다고 하지만/유년과 후반의 노년을 제외하면/ 중간의 시간들도 많지 않고/ 그것마저도 번뇌로 점철되어 있다….”

윤진은 차근차근 역량을 키우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강희의 총애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강희가 강조한 형제들과 우애에 신경을 썼다. 윤진은 강희가 자신을 ‘친왕(親王)’이라는 가장 높은 작위를 내리자 다른 형제들에게 줄 것을 간언한다. 이는 물론 계산된 발언이었다. 그러자 강희는 윤진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기며 신뢰하기 시작했다. 결국 윤진은 태자 쟁탈전에서 최후 승자가 됐다.

상대 자존심 배려해야 나도 인정받는다

링컨 대통령과 옹정제의 승리는 노자가 말한 ‘곡선 사고’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곡즉전(曲則全)’이라며 곡선적인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두 발 전진을 위해 한 발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곡즉전’에서 곡은 구부려 힘을 모으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구부린 상태는 오래 유지할 수 있지만 곧게 편 상태는 부러지기 쉽다.

이는 곧바로 나아가기보다 조금 돌아서 가는 편이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곡전’이란 말이 유래한다. 이는 훗날 노자 풍의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처세 철학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천하란 얻으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얻으려고 하면 균형을 잃고 잡으려고 하면 멀어진다.”

즉각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직선 사고’라면, 비난할 일이 있어도 느긋하게 참고 견디며 장기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곡선 사고’라고 하겠다. 곡선 사고를 나타내는 말로 ‘궁구에게는 달려들지 말라(窮寇勿迫)’는 말도 있다. ‘궁구’란 궁지에 몰린 적이다. 이때 적을 공격하면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반격해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볼 수 있어 공격해선 안 된다. 적을 포위할 때는 반드시 한쪽 길을 열어 두라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상대가 잘못했다고 해서 매몰차게 비난하고 몰아세우면 언젠가는 보복을 당한다. 다른 사람과 논쟁할 때도 마찬가지다. 치밀한 논리를 펼쳐 상대방이 반론할 여지를 주지 않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을 가끔 볼 수 있다. 완벽하게 제압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상대방의 처지도 배려해야 한다. 언젠가는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충돌이 생겼을 때는 먼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상대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게 곡선 사고다.

일본인은 직선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목적을 향해 곧장 달려들어 벽에 부딪쳐도 무리하게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장점이 있지만 상승하는 속도가 빠른 만큼 하강하는 속도도 빠르므로 지속할 수 없다. 전력을 다해 질주하므로 여유가 없다. 지금의 일본을 보면 이해가 간다.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멀리 가려거든 곡선으로 가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이 ‘직선 사고’ 유형일 것이다. 직선으로 빨리 가려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마라. 위대함을 만드는 것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굽히는 자’가 ‘꼿꼿한 자’를 이긴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비교문학 박사.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