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의 미·중 환율 전쟁

미국과 중국의 환율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은 달러 흔들기에 나섰다. 작년 초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이 달러를 대체할 슈퍼 기축통화를 주창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은 지난해 1월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이 환율 조작국이라고 믿고 있다”며 위안화 흔들기에 나섰지만 “미국 국채의 투자 가치를 따져봐야겠다”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반박에 입을 닫아야 했다. 작년까지 G2(주요 2개국) 환율 전쟁의 창은 중국이 쥐고 있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1년여가 흐른 지금 전세가 바뀌는 모습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월 초 “중국 등 다른 국가에 계속 압박을 가해 훨씬 터프하게 나가겠다”면서 “대응해야 할 도전 과제 중 하나가 환율 문제”라고 적시하면서 위안화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작년 11월 방중 이후 중국산 타이어에 고관세를 매기는 등 중국산 제품에 대한 잇단 수입 규제 조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위안화 절상 압박을 가한데 이어 수위를 높인 것이다.

지난해 독일을 제치고 세계 1위 수출국에 올라선 중국의 위안화 환율 변화는 중국을 최대 교역 대상국으로 두고 있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2008년 7월 이후 달러당 6.83위안 안팎에서 고정돼 온 위안화 환율 흐름을 좌우할 G2의 입장과 향후 전망을 정리한다.

◇ 창을 든 미국 = 오바마 대통령은 작년 11월 처음 찾은 중국에서도 위안화 절상 문제에 대해 낮은 자세를 견지했다. 그는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과거 일정 기간 동안 시장 지향적인 환율 시스템으로 나가겠다고 거듭 약속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경제의 펀더멘털에 기초해 그렇게 하는 게 전 세계 경기 회복 노력에 필수적인 공헌을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후 주석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2008년 7월까지 3년간 위안화를 21% 절상한 것처럼 위안화 가치를 앞으로도 올려야 한다고 압박을 가한 것이었지만 간접화법에 그친 것이다. 그러던 그가 3개월여 만에 ‘매파’로 돌변했다.

2월 초 민주당 상원의원들의 정책위원회 모임에서 “2001년부터 2007년간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으로 230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는 알렌 스펙터 의원의 질문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제품 가격이 인위적으로 올라가고 그들의 제품 가격은 내려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선 중국의 위안화 환율 정책을 더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중국 경제는 내수보다 수출 주도의 성장 모델에 기반해 왔다”며 “순탄하지 않을 테지만 우리는 아주 심각한 협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불균형 해소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의 통화 정책은 리밸런싱(rebalancing:세계경제 불균형 해소)을 가로막는 것”이라면서 “통화절상이 자국 이익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중국이 인식하도록 하는 게 내년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리밸런싱은 지난해 피츠버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주창해 주요 과제로 채택됐다.

수출 주도국들이 수출을 줄이고 내수를 확대해야 세계경제가 균형 발전한다는 논리다. 주요 표적은 중국이다. 중국에 잇따른 반덤핑 공세와 전방위적인 시장 개방 압력, 지식재산권 보호 요구를 동시 다발로 내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공세가 본격화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다급해진 ‘국내 일자리 안보’와 직결된다는 분석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실제로 “아시아 수출 비중을 1%포인트만 높여도 미국에서 수십만,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며 “(환율 조작 없는) 공정한 경기장에서는 누구도 미국을 꺾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경기 회복이 서서히 탄력을 받으면서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부담이 줄어든 것도 한 요인다. 여기에 중국이 과열 우려까지 나올 만큼 10%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자 절상을 요구할 명분도 얻게 됐다는 지적이다. “솔직히 말해 중국은 내부적으로 거품 덩어리들이 형성되고 있는 잠재적 과열 경제이기 때문에 통화절상 정책이 이익이 된다(오바마 대통령)”는 게 미국의 인식인 셈이다.

게다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염두에 둬야 하는 미국의 현실도 위안화 공세가 날카로워지는 배경이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은 “위안화가 최소한 25% 평가절하돼 있다”며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상을 계속 막을 경우 오바마 정부는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포함한 압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재무부가 의회에 환율 반기 보고서를 내놓는 오는 4월이 위안화 절상 압박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방패 든 중국= 중국은 달러 기축통화 흔들기로 공세에 나섰지만 보유 외화 자산 가치 하락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공세를 멈췄다. 그 대신 미 국채를 서서히 줄이면서 보유 외화 자산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2월 현재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전달보다 342억 달러 감소한 7554억 달러로 집계됐다. 중국은 전달(93억 달러)에 이어 두 달 연속 미 국채를 줄였다. 두달 연속 국채를 줄인 건 2007년 이후 처음이다. 반면 일본은 한달간 115억 달러어치를 더 사 세계 1위 미 국채 보유국(총 7688억 달러)으로 올라섰다.

중국이 미 국채 보유국 1위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2008년 9월 이후 처음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이미 지난해 7월 “외화보유액을 해외 투자와 인수를 촉진하는데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며 자산 다변화를 예고했다.

중국은 이와 함께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한 기반 다지기에 힘써 왔다. 홍콩 마카오는 물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중앙아시아에서 무역 거래 결제에 위안화 사용을 허용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놓고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기축통화로 가기 위해서는 강(强)위안으로 가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성장 동력인 수출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로 중국은 만만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위안화 저평가를 고집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데 있다. 인플레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절상은 과거 중국이 인플레 억제를 위해 써왔던 카드였다. 중국 내부적인 요인이 중국 당국으로 하여금 고민에 빠지게 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이 5년 만에 또다시 위안화 절상을 깜짝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잇따르는 배경이다. 중국은 2005년 7월 21일 위안화 환율을 2.1% 절상하고 이후 3년간 19%를 점진적인 방식으로 추가 절상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중국이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5년 전처럼 위안화를 한 번에 소폭 절상한 뒤 점진적으로 절상을 확대하는 전략을 채택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한 번에 큰 폭의 위안화 절상을 단행하는 것은 중국 수출 기업에 대비할 시간을 주지 못해 실물경제에 충격이 클 것이라는 점이 문제이고 점진적인 절상은 위안화 절상을 노린 핫머니 유입으로 인플레와 자산가격의 급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데 중국의 딜레마가 있다. 월지는 중국은 5년 전에도 이 같은 딜레마를 갖고 있었다며 이 때문에 해법도 유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골드만삭스의 짐 오닐 이코노미스트도 중국 인민은행이 19개월 만에 은행 지급준비율을 올린다고 발표한 지 꼭 한 달 만인 지난 2월 12일 은행 지준율을 0.5%포인트 또 인상한다고 발표한 직후 비슷한 전망을 내놓았다.

오닐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언제든지 한 번에 5% 정도의 위안화 절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뭔가 꾸며지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월 사회과학원 국제금융연구소의 장밍 부소장도 중국 정부가 경기과열에 따른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오는 3월 이전에 위안화를 한 번에 절상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오광진 한국경제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