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그리스 등 일부 유럽 국가의 재정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 지역은 금융 산업이 발달된 곳도 아니고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과도 강한 연결 고리가 없다. 그런데 왜 재정 문제가 이토록 심각해진 것일까.일반적으로 경기 침체기에는 전통적인 산업 기반이 미약한 국가의 재정 적자 부담이 큰 폭으로 늘어난다. 가뜩이나 미약한 산업 기반을 가진 국가의 경기가 큰 폭으로 수축될 경우 정부 부문의 의존도가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 중 전통적인 산업 기반이 취약한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의 2009년 재정 적자 비중이 다른 국가들보다 크게 확대됐다는 점이 대표적인 사례다.문제는 일부 유럽 국가의 재정 부담이 단시일에 해결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유로협약의 근본을 이루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회원국이 어려움에 처할 때 상호 공조한다’는 규정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 부도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세입의 확대가 어렵고 세출 축소에도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먼저 세입을 늘리기 위해서는 경기 개선을 통해 세수를 확대하거나 세율을 인상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 지역의 경기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상황이기 때문에 세수를 빠르게 늘리기는 쉽지 않다. 급격한 세율 인상은 오히려 경기를 악화시켜 세입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반면 세출을 축소하는 것은 그동안 예산이 방만하게 투입된 부문을 줄이면 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쉬운 대안이다. 그리스 정부도 국방비 감축, 공공 부문 보너스 삭감, 사회 지출과 정부 운영비 삭감 등을 통해 내년 재정 적자 비중을 올해의 12.7%에서 9.1%로 낮출 계획이다. 그러나 집권 사회당의 정치적 성향과 그동안 실시한 공공 부문에 대한 개혁 실패 때문에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한편 올해 대부분 국가의 재정 적자가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영국의 경우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주요 전망 기관은 올해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 비중이 13%를 넘어 지난해 수준(12.1%)을 상회할 것으로 내다본다.그 이유 중 하나는 은행 국유화에 대한 부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영국은 지난해 RBS은행과 로이드(Lloyds)은행을 국유화했다. RBS은행과 로이드은행은 기초자산을 기준으로 할 때 세계 4위와 48위(2008년 기준, The Banker 참고)에 해당하는 대형 은행이다. 이러한 대형 은행을 국유화한 영국 정부의 재정이 악화될 것은 뻔하다. 올해 유럽 은행의 금융 손실이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은행 위기 이후 국유화에 따른 재정 악화는 과거 경험에서도 관찰된다. 1980년대 말 북유럽 위기가 발생하면서 스웨덴 정부는 부실화된 고타은행과 노드은행을 국유화한 후 레트리바와 세큐럼이라는 특별 기구를 통해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스웨덴 정부의 재정 수지가 큰 폭으로 악화됐다. 재정 수지 적자는 고타은행이 노드은행에 합병된 1994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1998년에야 비로소 흑자로 전환됐다.결국 일부 유럽 국가의 재정 악화는 올해에도 지속되면서 경기 회복에 상당한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민영화를 염두에 두고 정부가 국유화한 은행의 건전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점도 금융회사의 중계 기능을 약화시킬 요인이다.이를 감안할 때 올해 유럽의 경기 회복 속도는 빠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유럽 국가들의 경우 재정 압박과 경기 회복 간 딜레마라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 1972년생. 국민대 경제학과 졸업. 서강대 경제학 박사과정. 2000~2008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하나금융연구소.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2008년 신영증권 거시경제팀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