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산업의 지각변동

골프 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골프 클럽이다. 골프 클럽 메이커 가운데 상위 1, 2위를 다투는 캘러웨이의 연간 매출액은 10억 달러(약 1150억 원) 정도다. 이와 비슷한 매출 규모를 기록하는 ‘메이저’ 업체로는 테일러메이드·나이키골프·타이틀리스트 등이 있다. 이들 외에 일본의 야마하·던롭·혼마·브리지스톤 등 유명 브랜드들도 수백여 종의 클럽을 쏟아내고 있다. 순수 클럽 시장만 놓고 보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수백억 달러가 넘는, 작은 시장이 아니다.그런데 클럽 시장이 수년 전부터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다. 골프 클럽은 예전에 나무(우드)를 소재로 썼다. 메탈로 소재가 바뀐 현재도 클럽 이름을 ‘페어웨이 우드’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소재가 우드에서 메탈로 바뀔 때 클럽 시장은 가히 혁명적인 변화와 성장을 겪었다. 또 한 번의 큰 변화는 현 드라이버 소재로 쓰이는 ‘티타늄’의 등장이 가져왔다. 이처럼 소재의 변화는 시장의 수요를 폭발시키면서 클럽 회사들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다. 소재 개발과 함께 새로운 기술 개발도 클럽 매출 증대에 기여해 왔다. 클럽의 무게를 낮추면서 공을 잘 뜨게 만든다거나 최대의 거리를 낼 수 있도록 헤드의 ‘스위트스폿’ 면적을 확대한다거나 헤드 페이스 면을 최대한 얇게 해서 반발력을 높이는 등 진화를 거듭했다.이런 클럽 시장의 첨단 기술이 너무 빠르게 진화하다 보니 골프 룰을 제정하는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립협회(R&A)가 해마다 헤드 크기, 반발력 제한 등 클럽에 규제를 가할 정도였다.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오렌지카운티 컨벤션센터에서는 지난 1월 28일부터 사흘간 세계 최대의 골프 용품 전시회인 ‘2010 PGA 머천다이즈 쇼’가 열렸다. 이 용품 전시회는 세계 골프 산업의 향후 트렌드를 판단해 볼 수 있는 자리다. 수년간 이 전시회를 관람한 필자는 올해 참가한 ‘메이저’ 클럽 메이커들을 보면서 클럽 시장의 불황의 골이 예상보다 깊다는 것을 새삼 발견했다. 신기술·신소재 개발의 한계로 인해 클럽 회사들이 신상품으로 내놓은 것은 지난해 제품에 연식만 바꾼 것이 전부였다. 테일러메이드와 나이키골프는 전시회에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최근 발표한 실적에도 이들의 현황이 그대로 나타난다. 캘러웨이는 지난해 총 9억5080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했지만 2090만 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한다. 지난 2008년 매출 11억 달러에 6600만 달러의 흑자를 올렸던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심각하다. 테일러메이드도 지난해 상반기에 순채무가 11억 달러에서 39억 달러로 급증하면서 ‘초긴축 경영’을 해오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 지역 본부를 축소하고 매장을 통폐합하는 등 몸집 줄이기에 여념이 없다.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지 못하는 클럽 메이커들의 전략은 제품 개발보다 시장 개척에 무게를 두고 있다. 캘러웨이는 물건을 팔 수 있는 신흥시장을 찾아 나섰다. 특히 인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지난 1월 12일 ‘캘러웨이골프 인디아’를 설립하고 인도 출신의 PGA 투어 선수인 지브 밀카 싱을 브랜드 대사로 임명하는 등 인도를 회사의 주력 시장으로 선정했다.클럽 메이커들이 고전하는 골프 산업에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첨단 제품들이 혜성처럼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열풍을 몰고 온 ‘스마트폰’에 스윙 분석과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한 거리 측정, 레슨 프로그램 등의 기능을 탑재한 제품들이 클럽 시장을 잠식할 조짐이다. 이와 함께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선보인 ‘앱스토어(콘텐츠 온라인 시장)’에 골프 관련 애플리케이션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앞으로 골퍼들은 골프장에서 스마트폰으로 골프장 코스 공략도를 검색하고 거리를 측정하면서 자신의 스윙을 분석하고 각종 기록 통계도 낼 수 있게 된다. 스마트폰이 골프 체험 환경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골프 샷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골프 클럽의 개선이 지지부진하면서 실전 라운드에서 바로 활용이 가능한 ‘정보 기능’을 탑재한 첨단 IT 장비들이 골프 산업의 주류 자리를 놓고 클럽 메이커들과 경쟁 구도를 형성할 태세다.마이애미(미 플로리다 주)= 한은구 한국경제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