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립하는 ‘테마파크 프로젝트’
“투자는 50년을 내다보라.”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는 1970년대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을 조성하며 테마파크가 미래 주요한 산업으로 성장할 날이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남들이 ‘안 된다’는 사업을 강행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테마파크는 당시로서는 아무래도 수지가 맞지 않는 사업으로 극심한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수십 년 후 한국의 국토 개발 및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꿰뚫고 있었다. 그로부터 40년 후인 2010년 에버랜드는 국내 테마파크 업계의 부동의 1위로 총매출 3720억 원에 810만 명을 고용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이제 에버랜드·롯데월드·서울랜드 3강 구도로 지속돼 온 국내 테마파크 업계는 해외 테마파크의 국내 진출 도전과 함께 소위 ‘제2라운드’에 접어들게 됐다.최근 우리나라는 테마파크 조성이 붐을 이루고 있다. 우선 미국의 ‘파라마운트 무비파크’와 ‘유니버설스튜디오’가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파라마운트 무비파크는 대우자동차판매(주)가 미국 파라마운트영화사와 라이선스 계약으로 1조5000억 원을 투입해 2012년 개장할 계획이다. 대우차판매는 이를 위해 지난해 2월부터 인천 송도국제도시 근처 연수구 동춘동 송도유원지 내 49만9575㎡ 부지에서 토목공사를 진행 중이며 금융권과의 자금 조달 협상, 해외 투자자 유치 활동 등을 벌이고 있다.뒤를 이어 지난 1월 19일에는 미국 디즈니랜드에 비견되는 세계적 위락 시설인 유니버설스튜디오의 국내 설립 계획이 발표됐다. 경기도 화성시 송산그린시티 내 435만 2819㎡ 부지에 조성되는 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 리조트(USKR)는 개발 면적이 53만㎡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테마파크가 된다. 해외 유니버설스튜디오 중에서도 최대로 미국 올랜도와 LA의 유니버설스튜디오의 3배, 일본 오사카에 있는 유니버설스튜디오의 6배 규모다.2014년 3월 개장까지 리조트 건설에는 4만여 명이 투입되고 완공 후에는 10만여 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시설이 완공되면 연간 1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에버랜드·롯데월드·서울대공원도 ‘복합 레저 종합 관광 단지’로 탈바꿈할 대대적인 개발 개획을 최근 밝혔다. 에버랜드는 2014년까지 세계 10위 테마파크를 목표로 1조 원을 투자해 가족형 숙박 시설, 모터파크 시설, 문화 교육 시설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고도 제한으로 논란이 됐던 123층 규모의 제2롯데월드는 현재 서울시의 환경영향평가와 교통영향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공원은 동물원과 식물원, 서울랜드를 통합해 기후대별 생태계를 경험할 수 있는 친환경 생태 테마파크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지자체별로 발표하는 테마파크 조성 계획은 너무 많아 수를 헤아릴 수도 없다. 서울시 ‘서울게임테마파크’, 인천과 경남 마산의 ‘로봇 테마파크’, 부산시의 ‘영화·영상 테마파크’, 경기 화성시의 ‘해양천문테마파크’, 경북 성주군의 ‘오리테마파크’, 인천 영종도의 ‘자동차 테마파크’를 비롯해 심지어 부산 자갈치시장도 ‘종합수산테마파크’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이처럼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걸쳐 봇물처럼 테마파크 조성 계획이 발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는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지자체장들이 각자의 목적에 따라 너도나도 관광 육성책으로 테마파크 조성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수십억 원에서 수조 원의 막대한 비용이 드는 테마파크 조성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자금 마련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미비해 보이는 것들도 눈에 띈다. 협약 혹은 계획만 발표되고 있어 실제로 완공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계획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와 함께 테마파크의 수익성도 의문이다. 완공 시 예상되는 입장객 수와 고용 창출 규모, 유발 경제 효과는 장밋빛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테마파크의 규모에 비해 실제 동원 가능한 관광객 수는 미지수다. 테마파크 업계는 지난 2002년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입장객은 적게는 3%에서 많게는 10%까지 줄어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테마파크 이용객 수는 2004년 2536만 명에서 2008년 2305만 명으로 감소했다. 에버랜드·롯데월드·서울랜드 입장객을 모두 합치면 1500만 명 정도로 전체 테마파크 이용객 수의 62.1%를 차지하고 있다. 즉, 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가 예상한 연간 1500만 명 이용객 수는 3곳의 입장객을 모두 끌어 모아야 하는 수치다.테마파크 시장점유율 1위(35.1%)인 에버랜드의 수익 구조를 살펴보면 2008년 기준 총매출액은 1조8000억 원 규모이지만 에버랜드와 캐리비안베이의 테마파크의 매출은 3720억 원으로 약 2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빌딩 관리 용역, 급식 사업, 조경 공사 등 환경 개발, 4개의 골프장 영업에서 발생하고 있다. 현재 테마파크 업계의 총매출 규모는 6735억 원으로 집계되고 있다.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는 총사업비 3조 원에 테마파크 조성에만 1조 원이 투자된다. 유니버설스튜디오코리아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국토해양부는 신안산선 원시~USKR역 연장 사업을 최근 확정, 발표했다. 그리고 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의 진입 도로인 국도 77호선을 4~6차선으로 확장하고 신규 도로도 건설하기로 했다. 직접 투자 외에도 간접 투자비용도 상당한 것이다. 이러한 대대적인 투자비용을 넘어 손익분기점까지 가는 데는 현재 테마파크 이용객 수를 고려할 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이와 함께 테마파크는 기본적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데 한국의 출산율은 현재 1.22명으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저조한 출산율을 보면 테마파크의 미래는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해외 관광객의 적극 유치로 테마파크 이용객 수의 파이를 키울 수는 있다. 하지만 가까운 일본에는 디즈니랜드, 유니버설스튜디오, 하우스텐보스 등 유명 테마파크가 조성돼 있고 싱가포르에도 현재 유니버설스튜디오가 건립되고 있어 이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다.27년 전 개장한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는 국내 테마파크 사업자들에게 성공 사례로 비춰지고 있다. 연간 2600만 명을 유치하며 현재까지 총 4억6000만 명이 다녀가 연간 400억 엔(약 5067억 원)의 이익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쿄 디즈니랜드도 개장 당시 이후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과 고객을 매료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 끝에 재방문율 97%를 이뤘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안전사고율 0% 유지도 중요한 그들의 성장 배경 중 하나다. 반면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20여 곳에 테마파크를 갖고 있는 미국의 식스플래그스는 최근 금융 위기로 관광객이 급감해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져 결국 지난해 6월 파산보호를 신청하기도 했다.유진투자증권의 이승응 애널리스트는 “국내 테마파크 사업은 수익성 우려가 다소 있다”며 “국내 관광객만으로는 수익을 맞추기 힘들기 때문에 해외 관광객을 적극 유치해야 하는데 관광 선진국으로서의 인프라가 다소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국내 테마파크의 다양화를 통해 관광 인프라를 확보하고 해외 관광객 유치의 첨병으로 만든다는 계획은 좋다. 하지만 남발되는 테마파크 조성 계획과 함께 글로벌 테마파크는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과거 호암 이병철 창업자처럼 수지타산이 힘든 사업에서 50년 후의 황금알을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할 길은 길고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