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좌담

애플의 돌풍이 매섭다. 작년 11월 말 국내 상륙한 아이폰은 ‘명불허전’이란 말을 실감나게 입증했다. 아이폰을 받아든 전문가들은 대부분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탁월한 사용감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구한말 고집스럽게 닫아 건 빗장을 풀고 처음 서구 문물을 받아들일 때 느꼈을 충격에 비견될 수 일을까. 아이폰 열풍은 애플이 지난 1월 내놓은 신제품 아이패드로 이어질 기세다. 아이폰에 매료된 네티즌들은 밤잠을 설치며 미국 현지 발표회를 인터넷으로 지켜봤다. 왜 한국에는 아이폰과 스티브 잡스가 없느냐는 질타도 쏟아진다. 하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일으킨 ‘소동’을 지켜보는 정보기술(IT) 업계 종사자들의 시선에선 씁쓸함이 묻어난다. 최근 쏟아지는 혁신 제품의 의미와 ‘신(新)디지털 혁명’에서 한국이 승자가 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해 IT 전문가 4인에게 들어봤다. : 지난해 아이폰 출시로 시장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 모바일 인터넷은 몰라보게 활성화됐다. 트위터나 미투데이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도 큰 인기다. 10년 전 IT 붐 이후 요즘처럼 IT 업계가 활발하게 돌아가는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변화들이 우리 산업과 우리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사다. 우선 일상생활은 어떻게 달라졌나. : 아이폰을 쓰면서 요즘은 노트북을 거의 들고 다니지 않는다. 집에서도 데스크톱 컴퓨터를 잘 쓰지 않는다. 언제나 ‘온라인’이 돼 있어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본다. 노트북을 꺼내는 것은 문서 작성을 할 때뿐이다.(웃음) 그 외에는 아이폰으로 다 해결한다. : 주말에는 침대에 누워 아이폰으로 뉴욕타임스를 읽는다. 며칠 전 뉴욕타임스 상하이 주재 기자가 중국 해커를 만나 해킹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생생한 기사를 썼다. 예전 같으면 현관문을 열고 나가 신문을 갖고 와야 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 종이 신문에는 큰 위기라는 느낌도 든다. : 2007년 2월 미투데이를 창업했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선 인터넷 접속 문제였다. 당시 무선 인터넷을 쓰려면 ‘네이트’, ‘쇼’ 등 이동통신사의 관문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 소비자들은 비용 부담 때문에 인터넷 접속 키를 누르는 것 자체를 꺼렸다. 그런데 아이폰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불과 2개월밖에 안 됐는데 이제 그런 관문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놀라운 적응 속도가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다. : 모바일 인터넷에 관한 한 우리는 분명 후발 주자다. 작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데 만족하며 살았다. 포털 사이트를 서핑하고 트위터를 이용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당시 블로그에 “티나게 쇼한다”고 지적하면 ‘악플’을 다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우선 인터넷이 바꿔 놓은 세상에 대해 놀라기도 하고 기대하기도 한다. 이제 움직이지 않으면 인터넷이 아니다. 무선 인터넷은 제2의 인터넷 혁명을 가져오고 있다. 여기에 제대로 대처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테고 방황하는 기업은 밀려날 수밖에 없다. : 아이폰 등장이 갖는 핵심적인 의미 중 하나는 음성 통화가 무료가 됐다는 것이다. 나는 월 4만5000원 요금제를 쓰는데 데이터 요금으로 4만5000원을 내고 음성 통화 200분은 무료로 쓴다는 개념이다. SK텔레콤의 연간 매출 12조 원 가운데 90%가 음성 통화에서 나온다. 음성 통화 시장을 지키기 위해 무선 인터넷 확산을 막아온 측면이 크다. 이제는 유선전화처럼 이동통신에서도 어떤 통신사를 선택하든 큰 차이가 없는 시대가 될 것이다. 지금도 유선전화는 KT를 쓰든, SK브로드밴드나 LG파워콤을 쓰든 큰 차이가 없지 않나. 휴대전화와 운영체제(OS), 애플리케이션이 통신망 선택의 기준이 될 것이다. : 최근 ‘디지털 혁명’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혁신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것들은 새로운 게 아니다. 한국에서만 새로울 뿐이다. 아마존 킨들은 해외에서는 나온 지 2년이 지났고 아이폰은 거의 3년이 다 된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막 받아들여 산업의 첨단에 서있는 사람조차 사용한 지 두 달밖에 안 됐다. 가족이 미국에 있어 아이폰 1세대부터 써봤기 때문에 나름대로 아이폰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국에 출시된 것을 써보니 느낌이 너무나 달랐다. 회사 내 모바일 담당자들도 출시 첫날 모두 충격을 받았다. 막연히 상상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해 온 몇 가지 서비스는 출시를 뒤로 미뤘다. 다들 열풍이라고 하지만 해외에서 나온 지 2~3년 된 제품들로 이런 소동을 벌이는 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최근 혁신을 주도하는 제품은 모두 외국산이란 점도 마찬가지다. : 트위터가 뜨고, 아이폰이 인기를 끌자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밀려들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트위터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씁쓸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분야는 ‘3D’ 업종이다. 업계의 현실은 창의력을 키우기는커녕 창의력을 학살하는 수준이다. 이동통신사와 콘텐츠 업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런 환경들이 오늘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빌 게이츠를 들먹이며 소프트웨어 강국론을 주장했던 사람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런데 애플 앱스토어로 열심히 하면 뭔가 이룰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시장 규모가 크다, 작다고 이야기하지만 중요한 것은 희망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그런 변화를 외국의 혁신 제품이 들어와 만들어냈다는 것은 곱씹어 볼 문제다. : 그러면 국내 기업들은 최근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 부분을 이야기해 보자. : ‘그라운드 스웰(ground swell)’이라는 말이 있다. 이를테면 컵에 든 물이 요동칠 때 가능성은 두 가지다. 컵 자체의 작은 흔들림일 수도 있고 컵 외부에서 밀어오는 엄청난 쓰나미로 인해 발생하는 진동일 수도 있다. 후자가 바로 그라운드 스웰이다.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혁신 제품의 등장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거대한 혁명적 변화의 첫 시작인 것이다. 그런데 모기업 경영진은 아이폰 열풍은 네티즌들의 잠깐 동안의 트렌드일 뿐이라고 가볍게 이야기한다. 밖에서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 앞으로 닥쳐올 ‘혁명적 변화’는 어떤 것인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 그동안 기업이 정보를 생산해 소비자에게 유통시키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소비자들은 블로그나 위키피디아 등 여러 통로를 통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확산시킨다. 기업이 소비자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기술의 진화 방향도 달라졌다. 과거 산업생산 시대에는 기업의 이익 확대가 목표였지만 이제는 소비자의 편익 증진이 핵심이다. :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도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간격을 대폭 좁힘으로써 사회 패러다임을 바꿔 놓을 것이라고 본다. 과거에는 생산자가 정보를 독점해 소비자들이 무시되기 일쑤였다면 이제는 소비자가 직접 생산자에게 의견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이 의견을 무시하는 기업은 소비자에게 무시당할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트위터와 같은 서비스가 일시적 붐으로 끝날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서비스는 진화할 것이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직접 소통하는 사회로 가는 대세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제 스마트폰으로 논의를 좁혀보자. 국내 업체들은 어디서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까. : 국내 업체들은 아이폰의 충격으로 당혹감에 빠져 있다. 차라리 휴대전화의 디자인이 예쁘지 않다는 문제라면 통제 범위 내에 있으니 큰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아이폰은 그 영역 밖에 있다. 아이폰을 제대로 따라잡으려면 애플의 역사는 물론 아이튠스토어 등 수많은 주제를 파고들어야 한다. 국내에 그걸 다 꿰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내 휴대전화 업체들에 할 수 있는 첫 번째 조언은 애플과 경쟁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애플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없다. 우선 최고경영자(CEO)부터 문제다. 과연 누가 스티브 잡스와 경쟁해 이길 수 있겠나. 그다음 소프트웨어와 디자인, 콘텐츠로 넘어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 흥미로운 분석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 아이폰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래도 시장점유율은 2~3%에 불과하다. 향후 수년간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10%가 한계다. 나머지 90% 시장이 있는 것이다. 아이폰으로 가장 타격을 받은 곳은 소니에릭슨이다. 모토로라는 ‘레이저’ 성공에 취해 있다가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노키아는 애플과 앱스토어 경쟁을 하고 있지만 노키아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의 시장을 애플이 잠식하겠지만 국내 기업들도 빼앗아올 수 있다. 블랙베리도 아이폰보다 훨씬 쉬운 상대다. 그런 식으로 시장점유율을 10% 정도 더 끌어올리면 오히려 또 한 번의 성장기를 맞을 수 있다. 90% 나머지 시장을 잘 세분화해 전략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 안드로이드폰이 아이폰의 대항마로 주목받고 있는데, 상황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안드로이드폰이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성공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리눅스는 오래전에 윈도를 넘어섰어야 하지 않나. 또한 안드로이드폰도 여러 개 버전이 나올 수 있다. 삼성전자 안드로이드폰과 LG전자 안드로이드폰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버전의 안드로이드폰끼리 경쟁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 트위터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많이 달라졌다. 나이와 직종을 떠나 소통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자문할 수 있는 것도 큰 소득이다. 미디어 소비 행태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전에는 원하는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서핑하거나 검색했지만 이제는 원하는 정보가 나에게 배달된다.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기만 하면 세계 어디서든 지정해 둔 정보원으로부터 원하는 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 미투데이는 트위터와 어떤 차이가 있나. : 트위터가 ‘광장’으로 상징되는 반면 미투데이는 ‘문자 2.0’을 지향한다. 기존에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던 친구들과 더 효율적으로, 더 경제적으로, 더 재미있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려고 한다. 젊은 층들이 하루에도 수십 장씩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광장을 향해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에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려는 동기 때문이다. 여기에 스마트폰이 굉장히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현재 이전에 볼 수 없던 엄청난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가 쌓이고 있다. 거기에는 위치 값이 다 붙어 있다. 이것들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다음 화두다. : 최근 아이패드가 공개됐다. 신문과 잡지 등 전통 미디어는 아이패드 발매 후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잡지의 경우 종이 잡지 레이아웃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고 킨들을 비롯한 ‘e리더’에 비해 사용하기가 훨씬 편리해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전통 미디어가 기대하는 것은 유료 서비스다. 잡지나 신문을 아이패드를 비롯한 태블릿 PC, 또는 킨들 등 e리더로 유료로 판매하는 것이다. 아이패드는 기존 e리더와도 경쟁하면서 시장의 판도 변화를 초래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본다. : 아이패드가 처음 선보인 아이북스토어가 아이튠스토어의 성공을 재현할지가 관심거리다. 스티브 잡스 회장은 아이튠스토어로 온라인 음악 유통의 새 장을 열었다. 하지만 출판은 음악에 비해 훨씬 문제가 복잡하다. 음악은 메이저 음반사 몇 곳만 잡으면 되지만 출판사는 수천 개가 넘는다. 게다가 권리 관계도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보면 어느 시점에는 작가들이 글을 써 직접 온라인 출판에 나설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그렇게 되면 출판사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이다. : 아이패드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일부 나오지만 성공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본다. 어찌 보면 아이폰은 수많은 역경을 헤쳐 왔다. 거기에 비하면 아이패드는 ‘황태자’다. 아이폰이 구축해 놓은 것을 그대로 다 이어받기 때문이다. 많은 전통 미디어들이 유료화를 고민하는데, 아이패드를 활용하면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열 수 있다. 전자책 단말기에 쓰는 ‘e잉크’는 흑백이고 반응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아이북스토어와 아이튠스토어도 국내에서 충분히 성공을 거둘 수 있다.정리= 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