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의 매직’ 트위터

2010년 1월 12일 오후 5시(현지 시각, 한국 시각 1월 13일 오전 8시) 서인도제도의 작은 나라 아이티는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다. 리히터 규모 7.0의 강진이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다. 건물들은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통신과 교통, 수도와 전기가 모두 끊겼다.무인도처럼 세상과 단절돼 있던 아이티의 참상은 뜻밖의 소식망을 타고 세상에 조금씩 흘러나왔다. 트위터(twitter.com)였다. 대지진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트위터에 올라온 15장의 사진은 삽시간에 네트워크를 타고 전 세계로 퍼졌다. 내로라하는 언론들도 트위터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트위터로 현지인들과 대화하며 참상을 기록했다. 그 순간, 달리 할 수 있는 취재 방법은 없었다. 트위터로, 블로그로 소식을 받아쓰는 일 밖에는.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트위터의 가볍고 편리한 소통법, 언제 어디서든 정보를 얻고 퍼뜨리는 실시간성, 독특한 소통 구조 등이 상호작용한 덕분이다.트위터는 ‘마이크로 블로그’, ‘꼬마 블로그’ 등으로 불리는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Social Network Service)다. 짧은 글로 자기 생각과 느낌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공간이다. 한글이든 영문이든, 한 번에 140자 안에서 글을 올리면 된다. 웹에 직접 접속하지 않아도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전용 소프트웨어(SW), 스마트폰 같은 휴대 기기로 글을 올리거나 읽을 수 있다.영어 ‘트위터(twitter)’는 ‘재잘거리다’, ‘지저귀다’란 뜻이다. 트위터도 말 그대로 재잘거리고 수다 떠는 공간이다. 그런데 ‘수다 떠는’ 방식이 꽤나 독특하다. ‘팔로(follow)’란 독특한 소통 구조 때문이다. ‘팔로’는 말 그대로 트위터 안에서 듣고 싶은 이용자의 글을 ‘따르는’ 기능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구독’쯤 되겠다. 상대방이 나를 따르지 않아도 마음에 드는 사람의 글을 일방적으로 구독할 수 있다. 이는 트위터가 다른 SNS와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라디오를 떠올려 보자. 청취자는 여러 채널들을 돌려가며 원하는 방송을 듣는다. 아침엔 영어 방송에 채널을 고정하고 정오엔 음악 방송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라디오 방송을 듣기 위해 디스크자키(DJ)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 듣고 싶은 채널을 고정해 뒀다가 싫증나면 다른 채널로 돌리면 된다.트위터도 마찬가지다. 트위터에서 듣고 싶은 채널을 ‘팔로’하면 된다. 김주하 앵커(@kimjuha)의 얘기를 듣고 싶으면 즉시 ‘팔로’해 보자. 이제부터 김주하 앵커가 하는 ‘수다’가 내 트위터에도 똑같이 뜬다. 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팔로하면 내가 하는 얘기가 상대방 트위터에 뜬다. 이렇게 뒤쫓고 쫓으며 트위터에서 상대방 얘길 듣고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 싸이월드 창업자인 이동형 나우프로필 대표는 트위터를 가리켜 ‘거대한 비동기 메신저’라고 정의한다. 물론 서로 팔로하면 일대일 대화도 문제없다.트위터의 가장 큰 매력은 ‘속도’다.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가장 널리 정보가 퍼지는 공간이 트위터다. 지난 2009년 1월 5일 미국 허드슨강에 비행기가 불시착했을 때도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 사람은 구조선에 타고 있던 트위터 이용자였다. 제니스 크럼스(@jkrums)가 휴대전화로 올린 짧은 글, ‘지금 허드슨강에 비행기가 불시착했다(There’s a plane in the Hudson)’는 순식간에 트위터 이용자 손을 거쳐 지구촌에 실시간 타전됐다. 주요 신문과 방송사가 이 사건을 보도한 것은 이미 트위터로 소식이 알려진 지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개방성’도 트위터 이용자들을 불러 모으는데 한몫했다. 트위터는 핵심 기능들을 조건 없이 공개하고 있다. 전문 용어로 API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응용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개발 환경이라고 보면 된다. 약간의 개발 지식만 있다면 누구나 트위터가 제공하는 API를 가져다 이를 활용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트위터에서 곁가지를 뻗은 서비스는 지구촌에 수없이 많다.핵심 기능을 개방했다고 해서 트위터가 서비스 경쟁력을 잃거나 금전적 손실을 볼까. 정반대다. 트위터는 핵심 기능을 공개한 덕분에 전 세계에 트위터 이용자들을 삽시간에 확보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응용 서비스들이 이를테면 트위터란 거대한 나무에 달린 수많은 가지들이다. 이른바 ‘트위터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다.트위터는 또한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도구다. 노회찬(@hcroh) 진보신당 대표를 만나고 싶다면 어떡해야 할까. 지금까지는 대개 연락처를 수소문하고→ 보좌관이나 비서관에게 연락해→ 만남 여부를 허락받고→ 시간과 장소를 정해→ 약속 장소로 찾아가 만나곤 한다. 만나기까지 발품도 많이 팔 뿐더러 시간이나 비용도 적잖이 든다.트위터에선 모든 과정이 단축된다. 노회찬 대표에게 직접 말을 걸면 십중팔구 친절한 답변이 돌아온다. 굳이 약속 장소를 정하고 만날 필요도 없다. 실시간 대화로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조언도 구할 수 있으니까. 이처럼 유명인 또는 평소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과 손쉽게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또 있던가. 트위터 붐을 타고 국내에서도 지난 2009년부터 이용자가 가파르게 치솟는 분위기다. 유명인들의 가세도 한몫했다. 김주하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영화배우 박중훈(@moviejyp), 소설가 이외수(@oisoo), 개그맨 정종철(@OkdongjaU) 씨 등이 트위터에서 한창 ‘소통 맛’에 빠져 있는 모양새다. 정치인 가운데는 노회찬 의원을 포함해 심상정(@sangjungsim), 정동영(@coreacdy), 이계안(@seoul_KeyAhnLee) 의원 등이 친숙한 트위터 이용자로 꼽힌다. IT 분야에선 이찬진(@chanjin) 드림위즈 대표, 허진호(@hur) 네오위즈인터넷 대표 등이 ‘입담’을 과시하고 있다. 경제인으로는 박용만(@Solarplanet) (주)두산 회장이 재간 넘치는 말솜씨로 트위터 인기 스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트위터 인기 덕분일까. 국내에도 트위터와 비슷한 꼬마 블로그를 표방한 서비스들이 지난해부터 부쩍 늘었다. 대표적인 서비스는 미투데이(me2day.net)다. 미투데이는 트위터보다 7개월여 늦은 2007년 2월 처음 문을 열었다. 150자 안에 생각과 감정을 휴대전화나 PC로 공유하는 공간이다. 미투데이는 ‘미친’이란 친구 기반으로 서로 소통한다는 점에서 ‘팔로’란 ‘일방적 소통’을 지향하는 트위터와 구분된다. 2008년 12월 NHN에 인수됐으며 2009년 7월에는 트위터처럼 서로 친구를 맺지 않고도 관심 있는 미투데이 글을 열람할 수 있는 ‘구독미투’ 기능을 덧붙였다.이 밖에 지역 정보 중심으로 트위터식 비동기 소통 서비스를 제공하는 런파이프(runpipe.com), 이용자 글과 글을 이으며 소통하는 잇글링(itgling.com), 블로그와 트위터, 플리커와 유튜브 등 다양한 사회 관계망 서비스 글들을 모아 볼 수 있는 스푼(sfoon.com) 등이 트위터와 비슷한 토종 서비스로 꼽힌다.‘잡담의 바다’처럼 보이는 트위터의 그물망식 소통은 때로 큰 힘을 발휘한다. 지난해엔 트위터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아나바다 장터’를 열고 수익금을 이웃 돕기에 내놓은 바 있다. 올해 초 폭설로 서울 시내 교통이 마비됐을 때 도심 곳곳 상황과 교통정보를 재빨리 공유하고 알린 곳은 트위터와 미투데이같은 SNS였다.트위터는 휴화산이다. 그물망 소통은 일상 속에 거대한 에너지를 꾹꾹 눌러 담는 작업이다. 에너지를 축적하는 힘은 평범한 이웃들의 참여와 소통이다. 이 에너지는 기쁘거나 슬플 때, 분노하고 행동해야 할 때 거대한 용암으로 분출된다. 블로그와 트위터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정지훈 우리들생명과학기술연구소장(@hiconcep)의 정의는 오롯이 옳다. “트위터는 거대한 휴먼 에너지 플랫폼이다.”이희욱 블로터닷넷 기자 asadal@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