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지난해 말 이명박 대통령 측근 중의 측근으로 꼽히는 류우익 주중 대사와 인터뷰를 했을 때다. 대사 부임을 며칠 앞두고 있던 그에게 집중적으로 던진 질문은 남북 정상회담에 관한 것이었다. 지난해 10월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 간 싱가포르 비밀 접촉설이 불거진 후 남북 정상회담이 초미의 관심거리였기 때문이었다.현 정부 초기 대통령 실장을 지내는 등 이 대통령의 복심 중 복심인 류 대사가 중국으로 가는 것 자체가 “모종의 중요한 임무를 띤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돌았었다. 류 대사도 의욕을 보였다. “대사는 항상 통치자의 특명을 갖고 간다. 지금처럼 급변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당부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북한도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명박 대통령도 민족 공영에 도움이 되면 언제라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말해 회담 성사 기대감이 높다”는 등이 그가 한 말의 요지다. 그는 “베이징은 북한으로 가는 길목”이라고까지 말했다.당시엔 상당히 민감한 발언이었지만 한 달 정도 지난 1월 말부터 정상회담 추진은 기정사실화돼 버렸다. 청와대 참모나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은 이를 숨기지 않고 있다.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최근 “주변국들과 남북 정상회담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고 했고,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이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볼은 북한의 코트에 가 있고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남북 정상회담)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고 밝혔다. 남측에서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시기적인 급박성 때문이다. 무엇보다 올해를 넘겨 집권 후반기로 가면 정상회담 동력이 상실된다.북한도 정상회담에 대해 지난해 중반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특사조의사절단으로 서울에 온 김기남 조선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이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남측 여러 관계자들을 만났다. 김 비서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적극적인 뜻을 밝혔다는 게 정설이다. 북한은 당면한 경제난과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선 남북 정상회담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화폐개혁으로 인한 심각한 내부 동요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도 남측의 경제적 도움이 절실하다. 요컨대 남북 모두 남북 정상회담을 가져야 하는 각기의 내부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다만 남측은 몇 가지 확고한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우리 정부는 정상회담을 통해 이번만큼은 북핵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만남을 위한 만남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어떻게 하든 북핵을 의제에 올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의 대가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국군 포로, 납북자 등 인권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게 이 대통령의 강력한 뜻이다. 결국은 이 세 가지 원칙을 놓고 남북 간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만 장소와 관련해선 우리 정부는 개성이든 금강산이든 문제될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이 북핵을 포함시키겠다는 것은 2000년과 2007년 두 번의 정상회담이 교훈이 되고 있다.10년 전인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양에서 ‘주적’ 북한 인민군의 분열과 신고를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남으로 돌아온 뒤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렇지만 북한은 2년 후인 2002년 6월 2차 연평해전에 이어 10월 2차 북핵 위기를 일으켰다. 2006년 9월엔 1차 핵실험을 실시, 엄청난 폭풍을 불러왔다.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으로 갔지만 북한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역시 핵실험과 3차 서해교전,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였다. 두 번의 정상회담은 ‘우리 민족끼리’ ‘화해협력’에 바탕을 둔 공동 선언을 내놨지만 정작 북핵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데는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결과적으로 만남 자체가 강조된 회담이 돼 버린 셈이다.이번엔 이전 두 정상회담의 전철을 절대로 밟지 않겠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북한이 우리의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지 여부가 3차 남북 정상회담 성사의 관건이다.홍영식 한국경제 기자 yshong@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