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풍된 오자와 리스크

일본 정계의 최대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을 둘러싼 정치자금 의혹이 눈덩이처럼 증폭되고 있다. 오자와 간사장은 의혹을 털어내기 위해 검찰 조사를 받고, 대국민 해명에 적극 나섰지만 민주당 정권의 ‘오자와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일본 정국은 오자와 간사장에 대한 도쿄지검 특수부의 수사 결과에 좌우될 전망이다. 오자와 간사장의 무혐의로 결론 난다면 이를 근거로 하토야마 정부는 국면 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오자와 간사장이 입건되거나 구속될 경우 그의 퇴진은 불가피하고 정국은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반세기 만에 여야 정권 교체를 이루고 출범한 지 6개월도 안된 민주당 정권으로선 오자와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이다. = 오자와 간사장을 둘러싼 정치자금 의혹의 초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2004년 10월 오자와 간사장의 정치자금 관리 단체인 리쿠잔카이가 도쿄 세타가야 구의 토지(3억5000만 엔)를 구입했을 당시 오자와 간사장으로부터 빌린 토지 구입 자금 4억 엔을 정치자금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사실을 오자와 간사장이 인지했거나 지시했는지 여부다. 다른 하나는 리쿠잔카이가 토지 구입 대금으로 오자와 간사장에게 빌린 4억 엔의 출처다. 오자와 간사장은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 중 일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검찰은 업체로부터 받은 불법 정치자금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리쿠잔카이가 토지를 구입할 당시 오자와 간사장이 영향력을 행사한 이와테 현 이자와댐 건설 공사의 하청업체인 미즈타니건설이 오자와 간사장 측에 1억 엔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미 구속 중인 오자와 간사장의 전·현직 비서 3명의 구속 기간을 2월 초까지 연장했다. 검찰은 오자와 간사장의 지난 1월 23일 진술과 관련해 구속 중인 전·현직 비서 3명에 대한 수사 내용을 토대로 진술의 정합성(整合性)을 중점 검증하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내부 협의를 거쳐 오자와 간사장에 대한 입건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오자와 간사장과 비서들의 진술상의 차이나 건설 업체 등에 대한 주변 조사에서 추가 혐의점 등이 나올 경우 오자와 간사장을 재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오자와 간사장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건설 업체로부터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으며 비서들로부터 정치자금수지보고서상의 기재 누락과 관련한 사전 보고를 받거나 상의·지시한 바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이와 관련, 마이니치신문은 리쿠잔카이가 오자와 간사장의 지역구인 이와테 현의 다코댐 공사를 수주했던 한 건설 업체에 매년 2000만 엔의 정치자금을 요구했다며 새로운 자금 수수 의혹을 제기했다. 요미우리신문은 검찰이 이시카와 도모히로 중의원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해 입수한 수첩에서 미즈타니건설이 5000만 엔을 오자와 간사장의 측근인 이시카와 의원에게 건넸다고 진술한 날(2004년 10월 15일)의 난에 수수 장소로 보이는 호텔명이 기재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몸 낮춘 오자와 간사장= 한때 검찰과의 전쟁을 선언했던 오자와 간사장이 최근 부쩍 몸을 낮춘 모습을 보이면서 구구한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오자와 간사장은 1월 25일 기자회견에서 체포된 비서들에 대한 ‘감독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또 “검찰의 수사가 공정성을 잃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수사에 협력하겠다”며 검찰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는 한편 국민들에게도 재차 ‘사죄’했다. 필요할 때마다 정례 회견을 열어 설명 책임을 다하겠다는 자세도 강조했다. 평소 기자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퉁명스럽던 오자와 간사장은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조곤조곤하게 답변하기도 했다. 오쿠보 다카노리 공설제1비서 등 전·현직 비서 3명이 정치자금 관리 단체 리쿠잔카이의 정치자금규정법 위반(허위 기재) 혐의로 전격 체포된 다음날인 1월 16일 민주당 대회에서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언하는 등 격앙된 모습을 보였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오자와 간사장이 갑자기 몸을 낮추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 쪽에서는 오자와 간사장이 자신의 정치자금 문제가 증폭되면서 7월의 참의원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에게 쏠린 의혹에 대해 국민과 언론에 소상히 설명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여론의 화살을 피하고 추락하는 내각 지지율 하락을 제어해 보자는 의도라는 것이다.하지만 일각에서는 오자와 간사장이 이제야 자신의 목을 직접 겨냥한 검찰 수사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자와 간사장은 당초 검찰이 리쿠잔카이가 2004년 자신의 돈 4억 엔을 빌려 택지를 구입하고 이를 정치자금수지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사실만을 문제 삼아 관련 비서를 불구속 입건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게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 정보가 변호사를 통해 자신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을 기대했지만 그것도 무산됐다. = 오자와 간사장의 정치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되자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도 서서히 발을 빼고 있다. 1월 16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언한 오자와 간사장을 “믿고 있다. 잘 싸워 달라”고 격려하고 1월 22일에는 오자와 간사장의 비서 출신인 이시카와 중의원의 “불기소를 희망한다”고까지 했던 하토야마 총리지만 이후 신중한 발언으로 일관하고 있다.하토야마 총리는 오자와 간사장이 검찰 조사를 받기 하루 전인 1월 22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오자와 씨를 동지로서 믿는다는 것과 이치렌타쿠쇼(一蓮托生)는 별개다”고 말했다. 이치렌타쿠쇼는 불교에서 쓰는 말로 죽은 뒤 극락정토에서 같은 연꽃에 태어난다는 의미다. 즉 운명 공동체를 뜻한다. 하토야마 총리의 발언은 검찰 수사 결과 만약 오자와 간사장이 형사책임을 져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총리 자신까지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1월 25일엔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오자와 간사장이) 간사장직을 수행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이는 오자와 간사장의 정치자금 의혹이 터진 이후 하토야마 내각 지지율 하락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교도통신이 1월 17∼18일 이틀간 전국 여론 조사를 벌인 결과 하토야마 내각에 대한 불(不)지지율이 지지율을 웃돌았다. 하토야마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41.5%, 불지지율은 44.1%였다. 직전 조사인 1월 10∼11일 조사에 비해 지지율은 9.3%포인트 급락했고 불지지율은 10.9%포인트 상승했다. 작년 9월 하토야마 내각이 출범한 이후 불지지율이 지지율을 앞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민주당에 대한 정당 지지율도 32.1%로 직전 조사 때에 비해 6.6%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자민당의 지지율은 22.7%로 5.4%포인트 높아졌다. 내각 지지율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추락한 것은 정권의 실력자인 오자와 간사장의 전·현 비서 3명이 정치자금 문제로 검찰에 체포되고 오자와 간사장이 검찰과 대결을 선언하면서 여론이 악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하토야마 총리로선 계속 오자와 간사장을 지원할 수 없는 처지다.차병석 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