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오바마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전후 사방으로 길이 막막하다. 경제면 경제, 정치면 정치, 외교면 외교 되는 게 없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오바마 재선은 이미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성급한 얘기까지 나온다.오바마 사면초가론은 지난 1월 19일 민주당이 매사추세츠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공화당에 참패하면서 본격화되고 있다. 매사추세츠는 주지사를 비롯한 2명의 연방 상원, 10명의 연방 하원, 그리고 주 하원 전원이 민주당 소속이었던 그야말로 민주당의 텃밭으로 불리던 곳이다. 특히 상원의원 자리는 1954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획득해 그의 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가 이어받아 타계할 때까지 거의 50년 동안 수성한 전국 민주당의 상징적인 자리였다. 이런 자리를 공화당에 넘겨줬다는 것은 민심이 오바마를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오바마로서는 이러다간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지고 나머지 재임 기간 내내 ‘식물 대통령’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상황으로는 재선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위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오바마는 상황 반전을 위해 발에 땀이 나게 뛰고 있다. 백악관에 중간선거 대책팀을 꾸리고 곧바로 이슈를 바꿨다. 오바마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건강보험 개혁’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리는 분위기다. 민주당 내에서도 건강보험 개혁 이슈로는 중간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건강보험 이슈가 앞으로 미국의 장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치지만 당장 중산층이 세금을 더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선거에는 결정적으로 불리하다고 지적한다.매사추세츠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마사 코클리 후보는 투표 2주 전까지 두 자릿수로 공화당 후보를 앞질렀지만 끝까지 건강보험 개혁을 외치다 참패를 당했다. 공화당의 신예 스콧 브라운 후보는 ‘건강보험 개혁 때문에 경제문제는 뒷전’이라는 구호로 순식간에 부동층 표를 긁어모아 선거 판세를 역전시켰다.오바마의 새로운 이슈는 중산층과 일자리다. 중산층 결집 전략과 관련, 오바마는 지난 1월 26일 국정 연설에서 중산층을 ‘샌드위치 세대(sandwich generation)’로 표현하면서 이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을 약속했다. 앞서 1월 25일 백악관에서도 ‘중산층 가정을 위한 투자’라는 주제로 특별 태스크포스 회의를 열고 대규모 세금 감면을 포함한 가계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어린이 육아 비용과 노후 생활 저축, 친인척 노인을 돌보는 가정에 세금 혜택을 늘리는 방안 등이 포함됐다.오바마가 중산층 지원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바로 일자리 창출과 실업률 감축이다. 기실 오바마는 그동안 경제정책과 관련해 돈만 쓰고 한 일이 없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지난해부터 천문학적인 규모로 돈을 썼지만 결과적으로 제너럴모터스(GM)나 크라이슬러 같은 거대 회사와 월가의 살찐 고양이를 살린 것을 빼놓고는 일자리를 만들지도, 실업률을 떨어뜨리지도 못했다는 지적이다. 경제 침체기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이 같은 비난을 듣는 것은 사실상 치명타나 다름없다. 그러나 실업률은 올해도 두 자릿수 밑으로 떨어지기 힘들다는 것이 모든 경제 예측 기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오바마도 일자리가 가장 중요한 이슈라는 것은 알지만 마땅한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재정 투입 방안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현재 중소기업들에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800억 달러 규모의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원에서 올려 보낸 1500억 달러 규모의 지원 방안보다 축소된 것이지만 오바마에게는 그나마 시급한 앰풀 주사나 다름없다. 여기에는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일자리를 계속 유지하게 하거나 새로운 고용을 창출한 기업에 그만한 규모의 세금을 감면해 주는 안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밖에 수백억 달러 규모의 실업수당 확대안도 별개 법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오바마는 이러한 일련의 물질적 지원뿐만 아니라 부유층과의 대척점을 넓히는 전략으로 중산층의 민심을 달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부유층과의 대척점 전략의 일환이 월가에 대한 일련의 공격이다. 오바마는 실업률이 비등하는 가운데 월가 금융회사들이 보너스 잔치를 벌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각종 규제 정책을 발표했다.대형 은행 50여 곳에 은행세를 부과해 앞으로 최소 10년간 1170억 달러에 달하는 경기 부양 자금 손실액을 환수하는 방안이나, 전통적인 상업 은행 업무와 투자은행 업무를 분리하는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 Act)을 재도입하는 방안 등이 그런 것들이다. 1년 전 월가를 긴급 지원할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미 금융업계를 고사시킬 수 있는 ‘악의적인 정책(?)’들이 하루걸러 하나씩 발표되고 있는 셈이다.미 언론들은 오바마가 이런 정책들을 발표하면서 전에 없이 강력한 톤으로 월가 금융인들을 비난한 것은 자신도 고액의 보너스에 분노하는 일반 시민과 같은 입장에 있다는 연대감을 주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인 수사(修辭)라고 분석했다.문제는 오바마가 ‘포퓰리스트’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추진하는 이런 일련의 정책들이 중간선거에서 표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인지 하는 점이다.오는 11월 치러질 중간선거에서는 대부분의 주지사들과 상원의원 중 3분의 1 이상, 하원의원 전원(435명)이 새로 선출된다. 오바마에게는 사실상 중간 신임 투표나 다름없다. 그 결과에 따라 그의 정치 생명이 좌우된다. 상·하 의원에서 공화당에 다수석을 내줄 경우 건강보험 개혁 등 그의 이슈들은 그대로 사장될 수밖에 없다.오바마는 중간선거 참패를 막기 위해 2007년 대선 때 자신의 대통령 당선을 이끈 1등 공신으로 꼽히는 데이비드 플러프 전 대선본부장(캠페인 매니저)을 다시 불렸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가 매사추세츠 주 보궐선거가 끝나기 몇 시간 전에 민주당 후보의 패색이 짙어지자 플러프를 백악관 집무실로 불러 중간선거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새로운 역할을 맡겼다고 보도했다.플러프 중간선거 대책팀은 앞으로 전반적인 선거 전략을 마련한 후 전략 지역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 직접 전략팀을 파견하는 한편 자체 여론조사를 통해 지지율이 밀리는 민주당 후보에 대해서는 조기 경보와 지원 방안을 내놓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중간선거에 앞서 주목받는 일정이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프라이머리(예비 경선)다. 일리노이 주에서는 2월 2일 상원의원 선거에 나갈 공화당 주자를 뽑는 예비 경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중간선거 일정이 시작된다.이곳은 미 전역에서 첫 번째로 주 단위 예비 경선을 치른다는 점에서 11월 중간선거의 민심 향방을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의 창’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현재 그동안 일리노이 주는 주지사를 비롯해 상·하원직 모두 민주당 출신이다. 그러나 올해는 이를 장담하기 힘들게 됐다. 우선 주지사였던 로드 블라고예비치는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후 공석이 된 상원의원 자리를 매관매직하려다 적발돼 불명예 퇴진했다.상원의원 자리는 블라고예비치가 퇴임 전 임명한 롤랜드 버리스가 차지하고 있지만 그는 이미 11월 선거 불출마를 공표한 상황이다. 상원의원직을 두고 공화당은 사실상 후보를 정해 놓은 상태이지만 민주당은 이에 대적할 인물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가장 강력한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 중 한 명이자 오바마의 친구인 알렉시 지아눌리아스 재정관도 “유권자들은 우리 경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특히 일자리 부족에 분노하고 있다”고 흉흉한 민심을 전했다.미 언론들은 매사추세츠나 일리노이에서의 불리한 상황들이 오바마에게 독이 아니라 약(藥)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오바마가 그동안 높은 인기만 믿고 너무 오랫동안 민심을 읽지 못하고 건강보험 이슈에 매달렸는데, 그나마 이번 상황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그가 트레이드마크인 건강보험 개혁 카드를 사장시키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경제 이슈를 활용해 중간선거를 준비해 나갈지는 우리 여당 정치인들에게도 흥미 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채플힐(미 노스캐롤라이나 주)= 박수진 한국경제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