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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행복지수’라는 것이 있다. 최빈국 방글라데시가 높고 히말라야 언저리 고지대의 작은 특정 국가도 높다고 하는 일반적인 삶의 만족도 조사와는 다르다. 그런 일반적 행복도에서 한국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이와 달리 경제행복지수(Economic Happiness Index)는 현대경제연구원이 한국경제신문과 공동으로 벌이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스스로 느끼는 경제 행복도 조사다. 쉽게 말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지 지수를 통해 실증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조사는 5개 행복 구성 요소에 대한 질문으로 이뤄진다. 이런 식의 질문이 던져진다. ‘나(또는 가장)의 일자리와 소득은 비교적 안정적이다(경제적 안정)’, ‘최근 6개월간 경제적 열등감으로 마음 상한 경험이 있다(경제적 우위)’, ‘나의 소득, 자산 등 경제력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경제적 발전)’, ‘앞으로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평등해질 것이다(경제적 평등)’, ‘내가 느끼는 체감 물가는 나를 불안하게 한다(경제적 불안)’. 카테고리별로 이런 질문 외에 ‘나는 경제적으로 행복하다’, ‘앞으로 경제적으로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종합 판단까지 듣고 지수로 평가하는 식이다. 이 조사는 2007년 하반기 이후 매년 두 차례씩 진행돼 왔다. 2009년 12월 조사가 5번째다. 주목할 만한 점은 지난해 12월 가장 최근의 조사에서 경제행복지수가 다소 올라갔다는 점이다. 2년 만에 최고치다. 물론 경기 회복에 대한 높은 기대감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기대 심리가 올라갔다지만 체감경기는 여전히 낮게 나타나 일자리 창출이나 실질적인 임금 소득의 보전과 같은 우리 경제에서 주요한 정책 과제는 여전히 절실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국민들이 느끼는 실제 경제 행복도는 어느 수준일까.지난해 12월 기준의 경제행복지수는 42.5로 2009년 상반기보다 3.9포인트 올라갔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대체로 극복되어 감에 따라 앞으로 경제에 대한 낙관과 자신감을 가진 이들이 그 정도의 수치만큼이라도 늘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지수의 절대치다. 소폭 올랐다고는 하지만 절대치가 100(행복하다) 기준에서 40점대 초반이니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매우 험하다는 뜻이 된다.최근 실물경제의 지표가 개선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이 와중에도 경기 회복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국민이 87%에 달했다는 점은 분명 문제다. 체감경기가 여전히 한겨울로 받아들여지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일자리 부족(32%), 임금 소득 감소(25%), 가계 빚 증가(23%) 등이다. 지속적으로 지적돼 온 우리 경제의 당면 과제들인데 행복도 조사로 절박한 사정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소득(연간 2000만 원 미만 29.5, 1억 원 이상 69.6)과 자산(1억 원 미만 35.8, 10억 원 이상 73.3) 여건에 따라 행복지수의 격차가 현저하다는 점도 정책적으로 꾸준히 개선해 나가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저학력(중졸 32.5, 대학원졸 52.7), 자영사업자(34.6) 층에서 전반적으로 행복도가 낮고 공무원(54.8)을 비롯해 직업의 안정성이 높은 계층에서 행복도 높다는 사실도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됐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우리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본격 진입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나 언론 매체의 진단과 분석이 이런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인데,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어려울 때일수록 원론과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경제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400만을 넘어선 사실상의 백수들을 감안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도록 투자가 확대될 여건을 더 다듬는 것이 첫째 대응책일 것이다. 올해 출구전략이 본격 모색되더라도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이 악화되지 않게끔 하는 보완 대책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상황 개선이 어렵다면 국민들의 기대치를 낮추도록 유도하고,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해빙기까지 인내심을 더 갖도록 격려하는 일도 더욱 더 중요해진 것 같다. 이런 일도 전 국가적으로, 범사회적으로 이뤄져야 할 이 시대의 숙제다. 경제 관련 조사 통계는 다양하다. 그 와중에서도 딱딱한 수치보다 이처럼 주관적 심정과 판단이 작용하는 조사가 인간적으로 보인다. 한국민들의 경제행복도를 측정하고 트렌드를 재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지표로 활용할 만하다.허원순 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