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수면경제(sleeponomics)

최근 수면(sleep)과 경제(economy)의 합성어인 수면경제(sleeponomics)란 신조어가 생겨났다.국내에서도 주목을 받기 시작한 ‘수면과 경제의 관계’는 전반적으로 현대인들의 수면 시간이 줄어들면서 사회경제적으로 감당해야 할 비용이 크게 증대된다는 것이다. 수면 부족으로 노동력 저하뿐만 아니라 발병에 따른 약물학적 치료비, 그리고 늘어난 활동에 대한 지출 등 간접비용이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평범한 직장인 우형섭(45·가명) 씨는 잦은 야근과 술자리로 자주 밤 12시가 넘어 귀가한다. 그러나 집에서 1시간 거리의 직장까지 가기 위해서는 아침 7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평일에는 평균 5~6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출근길 지하철에서 서서 졸 때도 있고 점심을 먹고난 오후 2시쯤에는 책상으로 머리가 떨어지기 십상이다.우 씨의 부인도 보통 매일 밤 늦게까지 TV를 시청한다. 늦게 집에 오는 우 씨를 기다리며 TV 삼매경에 빠진다. 하지만 우 씨의 출근과 두 딸의 등교를 위해서는 늦어도 아침 6시에는 일어나야 아침밥을 준비할 수 있다. 오전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잠을 자곤 하지만 늘 머리가 멍하고 건망증도 최근 심해졌다.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첫째 딸은 벌써부터 명문 대학 입학을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학원에서 오후 10시까지 수업을 들은 후 자율학습을 마치고 밤 12시에 학원 버스를 타고 집에 온다. 씻고 잠을 청하지만 새벽 2시가 가까워져도 낮에 많이 마신 커피 탓인지 침대에서 뒤척인다.야식을 좋아하는 초등학생 둘째 딸은 밤마다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달라고 조른다. 아동 비만이 걱정되지만 사주지 않으면 짜증 섞인 볼멘소리를 견디기 힘들어 우 씨의 부인은 그냥 사주고 만다. 학교에서는 툭하면 짜증을 내고 친구와도 자주 다툰다고 해 걱정이다. 야식으로 속이 부대껴 밤잠을 설치고 신경이 늘 예민해져 있는 것 같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우 씨네 가족처럼 대부분 수면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늘 피곤하다. 그러다 보니 황금같은 주말을 부족한 잠을 자는데 다 써버리고 말지만 피곤은 가시지 않는다.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얼마나 될까. 통계청이 2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5년마다 실시하는 ‘생활시간조사’의 최근 결과(2004년)에 따르면 한국인의 수면 시간은 7시간 46분이었다. 그러나 하루 중 수면 시간이 6시간이 채 되지 않는 성인의 비중도(1998) 2005년 기준 16%나 돼 1998년 12%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1950년대 성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약 8시간 30분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30으로 약 2시간 줄었다. 최근 영국의 연구에 따르면 성인에게 필요한 수면 시간은 7시간 30분이다. 다시 말해 많은 현대인들은 수면 부족에 빠져 있는 것이다.한국은 세계에서 적게 자는 편인 나라다. 2009년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에 따르면 18개 조사 대상 회원국(평균 수면 시간 8시간 22분) 중 한국인의 수면 시간은 7시간 49분(영·유아 포함)으로 가장 적었다. 하루에 3~4시간만 자는 유명 인사를 칭송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잠 줄이기’를 근면성의 상징처럼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다.단순한 ‘수면 부족’을 넘어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도 크게 늘었다. 대한수면연구회가 20~69세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성인의 27.6%가 수면 장애라고 밝혔다. 10명 중 3명꼴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면 무호흡증, 불면증 등 ‘수면 장애 질환’의 실진료 환자 수가 2001년 5만1000명에서 2008년 22만8000명으로 나타나 최근 8년간 4.5배 증가했다. 연평균 23.8%씩 증가한 것이다. 특히 수면 장애를 보이는 20대 여성 환자의 증가가 두드러졌는데 2001년 대비 2008년 실진료 환자 수가 6.7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다른 연령대보다 그 증가 폭이 컸다.현대인의 수면 시간이 크게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정신과 박상진 전문의는 “최근 경제난과 취업난에 따른 장래에 대한 불안, 우울증·불안장애·스트레스와 같은 심리적 이유에 의한 정신질환 증가, 직업과 사회적 다변화에 따른 주야간 교대 근무, 그리고 바르지 못한 생활습관 등 다양한 원인에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즉,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할 일이 많아지고 스트레스도 늘어나면서 만성적 수면 부족이 생겨난 것이다. 또한 커피 등 카페인이 있는 음료를 더 많이 섭취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수면 부족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그리고 경제에 상당한 해를 끼치며 비용을 발생시킨다. 먼저 노동력에 미치는 영향이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주은연 교수는 수면 부족의 영향에 대해 “낮에 졸리고 피곤하며 집중력과 기억력이 저하되고 감정이 불안정해진다”며 “24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거나 하루 4~5시간씩 자며 1주일을 지내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와 비슷한 심각한 심신장애를 보인다”고 말한다.2005년 미국인 수면 조사에 따르면 수면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결근율은 1년에 15.8일로 건강한 사람의 1.6일과 비교해 장기 결근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업무상 실수도 잦은 것으로 보고돼 업무 실적 감소와도 큰 관련이 있었다. 또한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집중력·기억력 저하를 유발해 학습·업무 장애를 일으킨다. 역사적으로 1989년 엑손발데즈 기름 유출 사건,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등이 담당자의 수면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리고 수면 부족은 교통사고를 유발한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한국도로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9년 6월까지의 고속도로 교통사고 중 졸음운전이 원인이 된 사고가 전체 6114건 가운데 1415건을 차지해 23%로 가장 많았다. 특히 졸음운전은 사망사고의 큰 원인으로, 조사 기간 동안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 664명 가운데 210명(32%)이 졸음운전으로 생명을 잃었다. 참고로 과속으로 인한 사망자는 16%(106명)에 불과했다.수면 장애에 따른 직접 진료비도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수면 장애에 대한 건강보험 진료비는 2001년 44억 원이었던 것이 2008년 194억 원으로 나타나 4.4배 이상 증가했다. 보험공단이 부담한 수면 장애 급여비 총 137억 원 중 약국이 68억 원, 외래가 51억 원, 입원이 18억 원 순이었다. 진단을 아직 받지 않은 불면증 환자들도 많은 것을 감안하면 수면 장애에 대한 직접적 비용은 매우 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한편 이러한 수면 장애에 대한 증가세에 따라 전 세계 처방 수면제 시장도 2005년 37억 달러에서 2014년 55억 달러로 5.6% 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7년 170억 원대의 수면제 시장이 2008년 210억 원대로 23.5% 성장했다. 최근 주요 제약사의 전체 매출이 평균 15%가량 성장한 것에 비하면 제약 업계의 블루오션인 셈이다. 이와 함께 수면 관련 상품도 최근 인기를 얻어 수면 양말과 수면 잠옷은 온라인 유통 업체 G마켓에서만 지난해 20만 개가 판매된 히트 상품이다.수면 장애의 또 다른 간접적 영향은 당뇨병·심장질환·우울증·비만 등 질환의 발병률도 높인다는 것이다. 특히 비만과 관련해 수면 시간이 줄면 비만이 될 가능성도 23%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면 시간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그만큼 활동이 늘고 음식을 더 섭취하기 때문이다.호주의 수면 전문가인 사라 블런든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대학 교수는 초등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몸무게와 수면의 질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체질량지수(BMI)에서 과체중으로 분류된 어린이들은 정상 체중인 어린이들보다 평균 수면 시간이 45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야간 근무자의 경우 비만이 되기 쉽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생체학적으로도 “수면 부족은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leptin)의 농도를 떨어뜨리고 식욕을 촉진하는 그렐린(ghrelin)의 분비를 촉진해 비만을 유발한다”고 주 교수는 설명한다.그는 이와 함께 “수면 부족은 인슐린 저항성을 높이고 교감신경을 항진시켜 고혈압과 당뇨병에 취약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어린이 수면 부족이 문제가 돼 ‘어린이 9시간 잠재우기’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삼성서울병원 통합수면센터의 홍승봉 센터장은 “수면장애는 전 국민의 20~30%가 겪고 있는 유병률이 가장 높은 질환으로 국민건강에 가장 큰 적”이라고 말한다.미국에서는 불면증 자체 치료비와 야기하는 질병에 대한 비용, 그리고 노동력 손실비용, 교통사고 유발 등 부정적 사회경제적 총비용이 최대 930억 달러에서 1조80억 달러 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수면 부족에 대한 경제적 비용이 커지면서 미국에서는 미국수면연구재단(National Sleep Foundation)과 국립보건원 산하 국민수면질환연구센터(National Center On Sleep Disorders Research)가 활발히 수면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특히 국가적으로 수면 질환을 연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면 장애의 경제적 파급력이 이제는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현재 국내 국립보건원에는 수면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부서가 없다. 다만 수면의학을 전공한 신경과 의사들이 모여 만든 대한수면연구학회(회장 홍승봉)가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대한수면연구학회는 2002년 설립돼 현재 신경과·이비인후과·내과·구강치과 의사 약 500명을 회원으로 두고 활동하고 있다. 수면 부족 및 장애에 대한 직·간접적 사회경제적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비해 이에 대한 국내 연구는 아직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몸이 나른하고 피곤하다. 낮에 자주 존다. 졸음운전, 균형감각 저하. 독서·TV 시청 시 잠이 쏟아진다. 일·공부에 집중이 어렵고 효율성이 떨어진다. 기억력이 저하되고 반응이 둔해진다.감정조절이 안된다. 짜증을 잘 낸다. 실수를 많이 한다. 참지 못하고 화를 자주 낸다.① 낮잠을 피한다. 정말로 졸리는 경우는 아침 기상 5~8시간 후에 10~15분 정도로 낮잠을 제한한다.② 잠자리에 누워 있는 시간을 일정하게 한다(예를 들어 8시간으로 정하면, 그 이상 잠자리에 누워 있지 않는다).③ 잠자리에 들기 2시간 이내에 약 30분간 더운물에 목욕을 하며 체온을 2도가량 올린다. 따뜻한 물이나 보리차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④ 잠자기 위해 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한다. 저녁 7시 이후에는 담배를 피우지 말고 완전히 끊으면 더욱 좋다.⑤ 카페인이 들어 있는 커피나 홍차·콜라·초콜릿을 먹지 않는다.⑥ 술은 수면의 후반기에 자주 잠에서 깨게 하므로 가급적 삼간다.⑦ 잠자리에 들기 3시간 이내에는 많이 먹거나 마시지 않는다.⑧ 침실은 어둡고, 조용하고, 공기 소통이 잘되고 편안한 실내 온도가 유지되도록 한다. 귀마개나 눈가리개 등을 사용해도 좋다.⑨ 침대나 잠자리가 너무 딱딱하거나 푹신하지 않도록 한다. 침대는 반드시 잠자기 위해서만 사용하며 침대에서 일을 하거나 다른 생각에 골몰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베개는 적당한 높이와 견고성을 지닌 것을 사용한다.⑩ 수면 촉진제는 가급적 사용하지 말고, 꼭 필요할 때에는 주치의와 상담한 후 의사의 처방에 따라 작용 시간이 짧은 수면 촉진제를 가끔 복용한다.⑪ 침대는 잠을 자기 위해서만 사용한다(즉, 침대에서는 숙제·직장일·TV 시청 등 다른 활동을 삼간다).⑫ 잠자리에 누운 후 15~20분 이내에 잠이 들지 않으면 침대에서 내려와 독서나 TV 시청 등 편안한 다른 활동을 하다가 잠이 오면 다시 침실로 들어간다. 잠이 오지 않는데 침대에 억지로 누워 있는 것은 불면증을 악화시키므로 피해야 한다.⑬ 잠이 늦게 들더라도 아침에 기상하는 시간은 일정하게 한다.⑭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더라도 낮잠은 가급적 자지 않는다.주은연 대한수면연구학회 총무이사·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