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희 한국테디베어협회장

테디베어는 참 신기하다. 특별한 표정 없이 지극히 단순하게 표현된 눈·코·입을 가지고 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 수천·수만 가지의 표정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디베어는 성별을 초월하고 나이를 초월해 그 어떤 캐릭터로도 만들 수 있어요. 그만큼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무궁무진하고 표현도 자유롭죠. 영화나 드라마의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회화나 조각, 심지어 동양화도 테디베어로 표현할 수 있어요.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테디베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미대를 졸업하고 10여 년간 인형 디자이너로 일하던 원명희 씨가 테디베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 수없이 많은 가능성 때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이나 유럽 쪽에 인형을 수출하는 회사에 인형 디자이너로 입사한 것은 그저 인형이 좋아서였어요. 그야말로 취미가 직업이 된 거죠.” 인형 디자이너로 일하는 동안 해외출장이 잦았던 그녀는 우연히 보게 된 대형 전시회장에서 펼쳐지는 테디베어 컨벤션들을 통해 테디베어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됐다. 그리고 10년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홍대 앞에 테디베어 공방을 차리게 된다.“물론 당시 우리나라에도 테디베어는 있었어요. 하지만 단순히 개인적으로 소유하거나 사고파는 것에 그치고 있었죠. 테디베어를 만드는데 필요한 인형본이나 패턴도 전부 개인적으로만 알고 그칠 뿐 공유하려는 이들도 없었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테디베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특히 그녀가 주목한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이었다. 그 즐거움을 알리기 위해 백화점 등에서 ‘테디베어 만들기 강좌’를 시작했다. 1997년 우리나라 최초의 테디베어 만들기 강좌였다. 그리고 이후 그녀의 발걸음 하나하나는 우리나라 테디베어의 역사가 되었다.그녀가 테디베어 만들기 강좌를 시작한 이후 테디베어는 빠른 속도로 대중들 사이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테디베어 만들기의 즐거움을 알아줬으면 해서 인형본도 공개하고 패턴도 아낌없이 공개했어요. 그 때문인지 강좌를 시작한 후 100여 개가 넘는 워크숍이 열렸고 그만큼 많은 이들이 테디베어 만드는 즐거움에 빠지게 되었죠.” 물론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특히 테디베어는 그 원단이 모피만큼이나 비쌌기 때문에 재료 값 문제도 컸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어요. 아니 왜 만드는 게 사는 것보다 더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는 거죠.(웃음) 그런데 테디베어를 만드는 원단 재료며 일일이 손으로 만든 패턴들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안하면 비쌀 수밖에 없거든요.”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드는 즐거움이 인형을 샀을 때의 즐거움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똑같은 재료로 만들더라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저마다 다른 느낌이 나는 게 바로 테디베어거든요. 게다가 직접 솜을 채우고 눈을 붙이고 하다 보면 그냥 인형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여겨지니까 만드는 기쁨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죠.”1998년부터는 직접 만든 테디베어들을 가지고 해외 각국의 테디베어 컨벤션에도 매년 참가했다. 특히 맨 처음 참가했던 ‘독일 뮌스터 테디베어 컨베션’은 그녀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슈트케이스에 테디베어들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갔었죠. 사람들 앞에서 그 짐을 풀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해요.(웃음)” 그때 그녀가 선보인 건 마릴린 먼로를 패러디한 테디베어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던 많은 이들이 곧 그녀의 테디베어에 주목하게 됐다.“외국 사람들에게 테디베어는 하나의 미술품에 가까웠거든요. 그 테디베어에 캐릭터를 입히고 스토리를 접목하면서 보는 사람들에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던 것이 주목받게 된 이유인 것 같아요.” 테디베어에 스토리를 접목한 그녀의 시도는 이후로도 계속 되었다. 작품들을 만들어 가는 한편 한국테디베어협회를 창립하고 국내 최초로 테디베어 아티스트 과정을 개설, 많은 후배 작가들을 길러내기 시작했다.2001년부터는 테디베어를 테마로 한 테마파크 기획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제주 테디베어 뮤지엄, 분당 베어캐슬 등이 모두 그녀가 기획·제작·설치를 맡은 곳들이다. 2005년에는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어린이 박물관 내에 테디베어 박물관을 만들었고 플로리다 주 정부가 인정한 비영리 법인을 설립해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테디베어로 세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필요할 것 같아서 아예 테지움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상표등록도 했죠.”그 후로도 그녀의 거침없는 행보는 계속됐다. 제주에 인형 사파리인 ‘테지움사파리’를 개관한데 이어 현재 경주 보문단지와 중국 톈진과 인도네시아 발리 등에서 그녀의 테디베어에 대한 꿈과 열정이 담긴 테지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같은 테디베어 박물관이라고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각자 저마다의 스토리들로 꾸며지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특색이 다 다르죠. 그래서 그 지역의 역사적·예술적인 특징들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죠.”박물관이나 테마파크 기획에만 공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미실 테디베어, 김연아 테디베어 등 각종 캐릭터 패러디 테디베어를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한눈에 봐도 ‘아, 누구다’라고 떠올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 그 캐릭터의 특징을 캐치하고 잘 묘사하는 게 중요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 사람, 그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도 필요하고요.” 그 덕분에 캐릭터마다의 특징이 절묘하게 잘 살아 있는 그녀의 테디베어들은 대중에게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비즈니스 아이템으로도 잘 활용되는 편이다.“특히 2009년에는 가수 비와 마케팅 협업을 해서 많은 인기를 얻었어요. 무대나 영상 속에서 비의 모습을 패러디한 테디베어로 나름대로 외화 획득도 할 수 있었죠(웃음).” 2010년에는 (주)imbc와 전략적 제휴로 인기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 방송과 관련된 다양한 테마를 테디베어 미니어처 세트로 제작하는 전시 사업 ‘테디드라지움(테디베어+드라마+박물관)’에 진출한다. 드라마 ‘대장금’, ‘선덕여왕’의 주요 캐릭터뿐만 아니라 ‘무릎팍도사’, ‘뉴스데스크’, ‘무한도전’ 캐릭터 테디베어 등을 전시하게 되는 이번 사업은 2010년 상반기 내에 구체적인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이처럼 각종 테디베어 관련 사업만으로도 숨 가쁘게 바쁜 그녀이지만 직접 테디베어를 만들고 있을 때면 그 어떤 순간보다 더 행복하고 뿌듯하다고 한다. “일요일이면 하루 종일 테디베어만 만들고 있을 때도 있어요.(웃음) 그런데 그거 아세요? 테디베어는 만드는 사람의 기분과 표정을 닮게 된다는 걸?” 그래서 테디베어를 만들기 전에는 항상 즐겁고 행복한 기분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제 꿈은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테디베어 박물관, 전 세계 박물관에 우리나라 문화, 우리나라 캐릭터가 담긴 테디베어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에요. 그리고 언젠가는 외국에서 먼저 배우러 오는 체계적인 테디베어 학교도 만들고 싶습니다.” : 1963년생. 1986년 홍익대 미대 공예과 졸업. 99년 한국테디베어협회 창립. (주)테디베어 대표이사. 홍익대 미술교육원 교수. 천안 나사렛대 객원교수. 미국 비영리법인 Q-테디베어 플로리다 재단 회장. 캐릭터디자이너협회 이사.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