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경영대·한경비즈니스 공동기획 - 시장 생태계에서 윤리를 묻다 ⑧
세계의 기업들이 점점 글로벌화되면서 만일 어느 기업이 제조업을 하고 있다면 중국에 공장 설립을 고려해야 하고소프트웨어 사업을 하고 있다면 인도의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각국 정부들은 국경을 넘어 무역과 투자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경제 블록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세계가 글로벌화될수록 소비자와 생산자가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할 윤리 문제도 점점 가까이 다가오게 마련이다.① 소비자 윤리(기업 윤리에서 시장 윤리로)② 경영자 윤리(윤리 경영에서 경영자의 한계)③ 경영 프로세스 윤리④ 지식 경영과 윤리 경영⑤ 경영 윤리와 사회 윤리⑥ 윤리 경영을 위한 IT의 역할⑦ 기업 내부 통제 시스템을 활용한 윤리 경영 강화 글로벌 경영을 하고 있는 의류 제조업체 주식회사 국동은 문화·인종·법규·환경이 다른 곳에서 정도(正道)를 걷지 않으면 즉각적인 피해를 보기 때문에 윤리 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국동은 개발도상국을 생산 거점으로 하고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에 제품을 납품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국동은 멕시코·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에 해외 공장을 두고 약 70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총매출이 2000억 원에 이르는 거대 의류 제조업체다. 그리고 아디다스·나이키·컬럼비아·포에버21 등 세계 유명 브랜드사에 의류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 납품한다.1980~90년대 국내 노동 단가가 높아지면서 경쟁력을 잃은 의류 제조업은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수밖에 없었다. 국동은 지난 1989년부터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며 현지 정부로부터 인·허가를 받고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 택한 전략은 ‘정면돌파’였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관리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고 부정부패가 만연해 약점이 잡히면 두고두고 먹잇감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인·허가를 위한 뇌물을 요구하는 정부 관료의 요청에 응한다면 이른 시간 내에 승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관리 말을 100% 신뢰할 수도 없고 사업을 진행할수록 요구 사항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란 것을 예감했다. 물론 3개 국가에서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터득한 부분이 크다.그래서 국동은 시간이 오래 걸려도 혹시 몰라 위반할 수 있는 규정까지 찾아서 검토한 후 공장 설립과 운영을 진행했다. 김정규 전무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법이 있어도 구속력이 약하고 공무원의 뇌물 수수가 만연하다”며 “현지 토착 기업은 정부 인맥을 통해 단속 등 여러 정보를 입수하지만 외국 기업은 경쟁에서 토착 기업을 따라갈 수 없으므로 처음부터 철저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부 국가의 경우 공장 철수도 쉽지 않다. 철수를 통보하면 처음 진출할 때부터 현지 국가나 지역 정부로부터 받았던 면세 혜택에 대해 일시불로 모두 환불할 것을 요구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지 공장에 투자했던 기계 설비도 다시 갖고 나오지 못하게 막는 정부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야반도주하는 외국계 기업도 속출하는 것이다.한편 선진국 소속 글로벌 기업에 납품하기 위해 역시 윤리적 준수 규정(compliance)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개발도상국의 공장에 대해 8시간 근무, 소방 설비, 화장실 수, 화장지나 비누 비치 여부, 폐수처리 등 노동·보건·환경에 대한 선진국 기준에 따라야 한다. 만일 하나라도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 있으면 나이키 등 대기업은 즉시 주문을 끊기 때문에 하청업체는 큰 타격을 입는다.만일 하청업체가 현지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합리한 대우를 했을 경우 현지 비정부기구(NGO)와 국제 NGO가 연계해 문제화하고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나면 글로벌 브랜드의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이와 함께 최근에는 글로벌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라 오염물질의 절감 방안을 스스로 마련해 나가야 한다. 지난해 국동은 주문받은 대로 의류를 생산했지만 미국 통관에서 걸려 납품하지 못했다. 문제는 의류에 달린 구슬에 포함된 납 성분 때문이었는데 생산되고 있는 시기에 미국에서 이에 대한 규제가 입법 예고된 것이었다.김 전무는 “기업 손실을 막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잘 알지 못하는 법까지 찾아서 준수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국동은 해외 공장에는 각 공정마다 글로벌 기업의 준수 규정에 대해 위반인지, 아닌지를 검증하는 담당자를 두고 있다. 일반 노동자가 아닌 현지 고급 인력으로, 공장당 4~5명씩 글로벌 기업이 제시하는 규정과 선진국의 법을 조사해 생산 과정에서 준수하도록 관리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대졸이면서 법학 등을 전공하고 외국어에 능통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임금은 때로는 현지 정부의 장관보다 비쌀 때도 있다고 한다. 김 전무는 “현지 공장 설립의 초창기에는 이러한 인력이 부대적이라고 생각해 막대한 추가비용으로 여겼으나, 해외 사업을 10년가량 하면서 당연히 있어야 하는 고정비로 포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국동은 글로벌 기업들이 제시하는 자체 준수 규정에 모두 맞추기 위해 세계 공인 인증 기관인 WRAP(Worldwide Responsible Accredited Production)으로부터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는다. 한번 WRAP의 감사를 받을 때마다 비용이 꽤 들지만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이 WRAP으로부터 받은 평가서를 요구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이행해야 한다.WRAP의 감사단은 모든 노동자의 임금 내역을 꼼꼼히 조사해 현지 최저임금법을 준수하는지, 노동자 중에 미성년자가 없는지, 초과 근무수당을 적절히 지급하고 있는지 등을 점검한다. 심지어 공장 1층 창문에 화재 시 노동자가 탈출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방범 창살이 설치돼 있지는 않은지까지 점검한다.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윤리 규정을 준수하는 것은 기본이고 사회 공헌 또한 중요하다. 국동은 1997년 인도네시아 민주화 폭동 때 종업원과 가족들에게 한국에서 공수해 온 설탕과 쌀을 지급하며 신변을 보호해 줬다. 또한 방글라데시 공장에서는 수재 의연금을 기부했고 멕시코 공장에서는 지역사회와 친해지기 위해 문화 공연을 열기도 했다. 김 전무는 “삼성·LG와 같이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갖고 정기적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지는 못하지만, 현지에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동참하고 현지인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해외 진출 기업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사회 공헌과 관련한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것은 현지 사회의 기부 요청인데 때로는 너무나 많아 곤란하지만 한마디로 거절하기도 힘들다. 개발도상국에서는 현물로 기부할 경우 제대로 사용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되도록 물품 등으로 직접 지원한다고 전문 기업들은 밝힌다. 멕시코 공장의 경우 현지 지역사회에서 공장을 드나드는 큰 트럭이 도로를 손실시킨다는 이유로 보상할 것을 요구받았다. 국동은 현물로 지역사회에 지급하는 대신 직접 도로와 인도를 분리하는 구조물을 세우고 도로를 보수하기도 했다.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해 공장을 세우든 시장을 개척하든 성공하기까지는 전혀 다른 법규·환경·문화 때문에 애로 사항이 많다. 하지만 현지에서 발생하는 예측하지 못한 수많은 문제에 대해 윤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이 해외 진출 기업의 목소리다.김 전무는 “글로벌 경영에서 윤리는 법”이라며 “쿼터제 등 다른 것보다 가장 어려운 장벽이 윤리이며 만일 윤리 경영에서 벗어날 경우 경제적 불이익과 현지 사회의 비난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라비 쿠마르 카이스트 경영대 학장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