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착’ 금호아시아나 어디로 날까

무리한 몸집 불리기로 덩치를 키워온 금호아시아나그룹이 2009년 12월 30일 결국 주력 계열사 2곳에 대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재계 서열 10위권 내 국내 대기업이 워크아웃을 신청하기는 1999년 대우그룹 이후 처음이다.채권단과 금호아시아나는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의 워크아웃을 추진하면서 유동성 위기가 계열사 전체로 번지는 것을 막고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 등은 자율 협약을 통해 그룹을 정상 궤도로 되돌리겠다는 계획이다. ‘투트랙’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셈이다.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날 워크아웃 신청으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부채 3조6000억 원이 출자 전환되면서 일단 급한 불은 끄게 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앞으로 인력과 조직 구조조정 등 혹독한 시련이 있겠지만 유동성 위기가 계열사 전체로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쟁점이던 금호석화와 아시아나를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하지 않고 경영권을 보장하면서 자율적인 구조조정에 맡기기로 함에 따라 금호 측은 한시름 놓게 됐다.그러나 금호그룹은 워크아웃 신청을 계기로 재계에서의 위상이 급속도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호는 2006년 11월 프라임과 유진그룹을 제치고 6조4000억 원에 대우건설을 인수했고 2008년에는 대한통운까지 인수하면서 재계 서열 8위로 도약했다. 하지만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거쳐 매각되면 재계 순위에서도 10위권 밖으로 밀려날 전망이다.박삼구 명예회장 등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도 휘청거리게 됐다. 부실 경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금호석화 주식(48.5%) 등 계열사 주식과 자산을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하고 처분도 위임하기로 한 만큼 채권단은 향후 구조조정에 차질이 발생하면 계열사 주식과 경영권을 언제든지 처분할 수 있는 상황이다.재계 관계자는 “채권단은 금호아시아나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당근책을 제시하면서 계열사의 워크아웃에 대한 협의를 이끌어 낸 것으로 안다”며 “채권단은 가능한 한 빨리 결론을 내겠다는 생각인 만큼 박 명예회장의 결정에 그룹의 향배가 달린 셈”이라고 말했다.직원들도 불안감을 가추지 못하고 있다. 한 계열사 직원은 “대우건설 매각이 잘 안 된다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그래도 한 가닥 기대를 걸어왔는데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금호 그룹 위상이 하락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를 나타냈다.계열사 노동조합 홈페이지 게시판도 워크아웃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하는 글이 잇따랐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직원은 노조 게시판에 “그룹 전체가 존폐의 기로에 몰렸다”며 “대우그룹과 같은 최악의 사태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얼마나 많은 시련이 닥쳐올지 걱정”이라고 적었다.한 금호타이어 직원은 “2009년 임·단협에서 708명의 구조조정을 막았지만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708명 플러스알파가 구조조정될 것”이라며 “현장에선 많은 사람이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돈다”고 전했다.재계는 금호의 워크아웃 신청에 대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경련 관계자는 “원만하게 대우건설 매각이 진행됐으면 잘 해결될 일인데 전체적인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금호가 결국 어려움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아쉬워했다.국내 대기업의 한 임원은 “선제적 구조조정 실패가 워크아웃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가져왔다”며 “채권단도 금호의 워크아웃이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금호아시아나그룹 일부 계열사들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향후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금호 계열사 일부에 대한 경영권을 위임받게 될 전망이다. 워크아웃 및 출자 전환이 이뤄지면 산은 등 채권단 주도의 강력한 구조조정 작업이 이어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금호 채권단이 워크아웃 개시에 동의하면 회사의 채무 상환은 1개월에서 최장 4개월까지 유예되면서 채무 조정을 통한 본격적인 회생 절차가 시작될 전망이다.워크아웃 계획에는 박삼구 명예회장 일가의 사재 출연 방안도 포함됐다. 사재 출연 규모는 약 3000억 원이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산은을 포함한 채권단이 금호 계열사에 대해 2조~3조 원가량을 출자 전환할 경우 이들 회사의 부채비율은 약 500%대에서 300%대로 낮아진다. 이 과정에서 박 명예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분도 줄어들어 금호산업·금호타이어 등에 대한 경영권은 채권단 손에 넘어간다.현재 박 명예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은 지주회사 격인 금호석유화학 지분 48.46%,금호산업 지분 15.03%를 보유하고 있다.금호의 출자 구조는 박 명예회장 등 특수관계인을 정점으로 금호석유화학→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대한통운 등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금호산업이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됨에 따라 자회사 일부는 채권단 관리 아래 들어가게 된다.이렇게 되면 금호산업·금호타이어 등은 채권단의 직접 관리를 받는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금호 대부분의 계열사에 대한 지배구조가 바뀌면서 채권단이 자금관리단을 파견하겠지만 실제 경영은 기존 전문 경영인을 포함한 경영진에 위임할 가능성이 커 경영 시스템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와 함께 출자 전환 후 채권단 주도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되 경영 정상화 이후 박 명예회장 등 오너 일가에 주식 우선매수청구권을 통해 경영권을 되돌려 주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워크아웃을 통해 이들 기업을 정상화한 뒤 경영권을 되돌려 주는 바이백(buy-back) 옵션을 주거나 대주주의 사재 출연 등을 전제로 경영권을 보장해 주는 식이다.자율 협약 체결로 한숨을 돌린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의 발판을 적극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채권단 관계자는 “금호석유화학은 자회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자본잠식에 따른 지분법 평가 손실로 재무구조가 극도로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비록 채무 상환을 유예 받더라도 자력으로 수익을 창출해 생존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금호석유화학의 자구 계획이 성공할 경우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통운을 통해 그룹이 재기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금호 관계자는 “대우건설·금호생명 등 이외에 추가 매각을 통한 자금 확보 방안은 아직 논의된 게 없다”며 “워크아웃 추진 계열사들이 조기 회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재무구조가 악화된 기업에 대해 채권금융회사들이 모든 채권 행사를 일시적으로 유보하고 회사를 공동 관리하면서 출자 전환, 채무 탕감 등의 방식을 통해 기업을 회생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금융권에 대한 총채무가 500억 원 이상인 기업이 대상이다.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금호아시아나 여신을 보유한 금융회사에 채권금융기관협의회 소집을 통보하게 된다. 이후 채권금융회사들은 기업 실사를 거쳐 채권금융기관협의회 소집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워크아웃 계획을 수립, 확정한다. 워크아웃 계획은 채권단의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워크아웃이 끝나기까지는 일반적으로 3~5년이 걸린다.김선명 기자 kim069@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