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민영화, 어떻게 될까

“우정 민영화를 바로잡는 게 새 정치에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일본의 새 정부에서 연립정권 파트너로 우정·금융상을 맡은 가메이 시즈카 국민신당 대표는 9월 16일 기자회견에서 취임 일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원래 자민당 의원 출신이지만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우정 민영화 추진에 반발해 탈당한 인물이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도 총선 공약으로 우정 민영화의 수정을 약속했다.일본의 우정 민영화가 무산될 위기다. ‘메이지 유신’ 이후 최대 개혁이라던 우정 민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역방향의 개혁 대상이 됐다. 일본 국민들은 2005년 총선에선 고이즈미 전 총리의 우정 민영화에 환호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우정 민영화를 고쳐야 한다는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무엇이 우정 민영화를 향한 민심의 방향을 180도 돌려놓은 것일까. 앞으로 일본의 우정 민영화는 과연 백지화될 것인가.= 우정 민영화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시절 일본 공공 개혁의 핵심이었다.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민간에게’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작은 정부’와 ‘구조 개혁’을 추구한 고이즈미 전 총리는 개혁의 상징으로 우정공사 민영화를 내걸었다.당시 우정공사는 대표적인 비효율 공기업이었다. 직원 수만 27만 명으로 전체 공무원 수의 3분의 1에 달했다. 일본 개인금융자산의 4분의 1인 360조 엔을 보유한 ‘공룡’이었다. 민간으로 치면 일본 최대 회사다. 그러나 민간 기업에 비해 인건비는 높고, 이익은 적은 전형적인 국영기업이었다. 각종 사업 특혜에다 불공정 거래의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더 큰 문제는 우정공사가 금융시장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 우정공사는 우편배달뿐만 아니라 은행과 보험 등 금융사업도 함께 했다. 한국의 우체국 예금이나 우체국 보험과 같은 것이다. 전국적인 우체국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금융 부문에선 엄청난 민간자금을 빨아들일 수 있었다.2004년 3월 현재 우정공사의 우편 저금에 유입된 예금 잔액은 227조 엔으로 4대 민간은행 예금 잔액 총액 226조 엔과 맞먹었다. 간이보험 총자산도 121조9000억 엔으로 4대 생명보험사 총자산 121조3000억 엔을 넘었다. 그러나 이 막대한 돈의 90% 이상이 국채 매입을 통한 재정 적자 보충과 투·융자 기관 대출, 지방자치단체 자금 지원 등에 사용됐다.정부 입장에선 마음대로 갖다 쓸 수 있는 우정공사 자산이 쌓여 있다 보니 씀씀이가 커져 재정 적자를 키우는 원인이 됐다. 돈을 맡긴 사람들은 국채 매입 등이 안정적이긴 했지만 수익률은 낮아 불만이 많았다. 민간 금융사 입장에서도 우정공사는 불공정 경쟁 대상이었다. 우정공사는 원리금 상환에 대해 지급보증과 면세 혜택을 받았다. 또한 예금과 보험을 동시에 파는 방카슈랑스이기도 했다.고이즈미 전 총리는 이런 문제 덩어리를 깨는 지름길이 민영화라고 생각했다.야당은 물론 여당 내 상당수 의원들이 우정 민영화에 반대해 탈당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중의원 해산-총선거’라는 승부수를 던져 우정 민영화를 밀어붙였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우정 민영화를 낡은 일본을 개혁하고 새로운 일본을 여는 상징으로 포장했고 상당수 국민이 박수를 보냈다.이에 따라 우정공사는 2007년 10월 일본우정이라는 지주회사 밑에 우편국·우편사업·은행·보험 등 4개 회사 형태로 분리됐다. 현재 일본우정의 지분은 일본 정부가 100% 소유하고 있다. 산하 4개 자회사의 지분은 일본우정이 모두 갖고 있다. 지배구조상으로는 아직도 국영회사다. 그러나 우정민영화법은 2017년 9월까지 지주회사와 은행 보험 등 금융 2개사의 주식을 상장하고 정부는 지주회사의 지분율을 3분의 1까지 줄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 2개사의 주식은 전량 매각해 완전 민영화하도록 했다.= 그러나 막상 우정 민영화가 진행되자 현장에선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4개사로의 분사에 대한 불편이 불만의 핵심이다. 고품질 쌀 고시히카리의 주산지인 니가타 현의 한 우체국장은 “우편을 모으는 창구와 배달하는 회사가 별도로 분리되다 보니 우체국을 통해 쌀을 보내는 서비스가 사라졌다”며 “배달이 잘못되거나 지연되더라도 우체국 창구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류(우편사업 회사)와 창구(우체국 회사)의 분리에 대한 비판이다. 전국의 약 2만4000개 우체국을 운영하는 우편국 회사는 배달을 담당하는 우편사업 회사에 편지나 소포를 모아 전달하고 있다.일반 국민들로부터 우체국 이용이 오히려 불편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이즈미 정부가 “우체국을 민영화하면 국민은 편리해지고 국가는 살찌게 된다”고 했지만 실제 경험해 보니 공연히 우체국을 4개 회사로 쪼개 놓아 이용하는데 불편하다는 것이다.또 민영화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산간벽지의 우체국이 사라질 것이란 불안도 불만을 키웠다. 앞으로 우체국이 민영화되면 돈벌이가 안 되는 시골에선 철수할 수밖에 없다. 우체국은 지방의 고령자들이 쌈짓돈을 모아 예금하고 연금을 수령하는 사회적 인프라의 성격이 강하다. 단순한 금융회사나 기업으로 봐선 안 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우정 민영화의 역풍엔 지방 우체국장들의 조직적 반발도 큰 몫을 했다. 그동안 우정 민영화에 적극 반발한 세력은 옛 특정우체국장들이다. 특정우체국은 정부가 우체국을 세울 여력이 없던 시절에 지방 유지들이 자신의 재산으로 우체국을 설립·운영하게 한 우체국을 말한다. 한국의 별정우체국과 유사한 제도다. 한국엔 별정우체국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일본에는 민영화 이전에 전체의 70% 이상이 특정우체국이었다. 이들은 ‘전국대수회(大樹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그동안 자민당의 조직표 역할을 해 왔다.그러나 고이즈미 정부가 우정 민영화를 밀어붙이자 대수회를 현직 우체국장도 참가하는 ‘우정정책연구회’로 확대 개편하고 자민당에 맞서 왔다. 이 단체가 지난 8·30 총선거(중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의 승리의 숨은 공로자다. 우정정책연구회는 이번 총선을 ‘제2의 우정선거’라고 규정하고 ‘고이즈미에게 리벤지(복수)’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우정 민영화 방향을 어떻게 뒤집을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지주회사 밑에 우체국·우편사업·은행·보험 등 4개 자회사를 두는 체제를 바꾸고 민간에 대한 주식 매각도 대폭 축소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민영화는 아니라는 얘기다.민주당은 일단 은행과 보험은 자회사 형태로 두되 지주회사와 우체국·우편사업 회사는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결과적으로 우편·은행·보험 등 3개 회사 체제로 재편되는 셈이다. 그러나 연립정부의 한 축인 국민신당의 대표 가메이 우정·금융상은 현재 5개사 체제를 아예 1개사로 통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우편·은행·보험 등 3개 주요 사업을 한 회사로 묶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통합 회사는 정부가 소유한다. 과거의 우정공사 체제로 다시 돌아간다는 얘기다.민주당의 ‘3개사 안’과 국민신당의 ‘1개사 안’의 다른 점은 은행과 보험 등 금융 2개사를 우체국과 분리하느냐, 통합하느냐의 차이다. 민주당은 금융사와 우체국이 한 회사로 운영되면서 발생하는 자산운용의 비효율을 개선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신당은 우체국의 공공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금융사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사실 일본우정 중 돈을 버는 곳은 금융 부문이다. 작년에 일본우정의 순이익 4227억 엔 중 63%가 은행과 보험에서 나왔다. 그나마 돈을 버는 우편국 회사의 영업이익 약 1조3000억 엔 중 80%는 금융 2개사로부터 나오는 위탁 수수료 수입이다. 우편사업 회사는 수익성이 가장 낮다. 전국적으로 일률적인 우편배달 서비스가 의무화돼 있기 때문에 e메일 등의 보급으로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다.차병석·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