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 엘프링크 시스코 부회장

윔 엘프링크(55) 시스코 부회장은 ‘세계화책임자(CGO:Chief Globalization Officer)’라는 이색적인 직책을 겸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요즘 그리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것 같은 자리다. 하지만 엘프링크 부회장은 “경기 침체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며 “세계화라는 장기 흐름은 지속될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 회사는 특히 도시화 현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다.급격한 인구 증가로 아시아 지역에만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 100개가 새로 탄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로 인터넷의 물리적 기반을 이루는 네트워크 장비 세계 1위 업체가 탐내는 신시장이며, 그 모델 격으로 선택된 곳이 인천 송도신도시다. 지난 9월 18일 인천도시축전이 열리고 있는 송도에서 엘프링크 부회장을 만났다.CGO는 새로운 직책입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이 ‘타이틀’을 단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CGO로서 제 임무는 세계화라는 메가트렌드 속에서 시스코의 성장 동력을 찾고 인재를 발굴하며 새로운 혁신 기회를 모색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향후 10년 동안 대대적인 인구 변화가 예상됩니다. 미국 인구의 고령화, 유럽 인구의 축소, 아시아·태평양, 그리고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인구 폭발이 큰 흐름이지요.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에도 변화가 생길 겁니다. 2030년에는 미국·인도·중국이 세계 3대 경제 대국으로 꼽힐 거예요. 인도네시아·브라질·멕시코도 10대 국가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해요. 이런 변화에 대응해 성장 접근성을 높이는 게 첫 번째 임무죠.앞으로 20년, 30년 후 어떤 지역에 가장 많은 젊은이들이 집중되고, 어디서 우수한 대학 졸업생들이 나올 것인지 생각해야 해요. IT 기업인 시스코는 이공계 계열의 훌륭한 인재들을 필요로 해요. 아무래도 아시아 지역에서 많은 인재를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시아는 전통적으로 이공계, 특히 수학에 관심이 많고 경쟁력도 뛰어나지요.아시아·태평양에서 약 5억 명의 인구가 도시지역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해요. 다시말해 그만큼의 새로운 도시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죠. 1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도시 100개가 탄생할 것으로 봐요. 또 전 세계 30억 인구는 인터넷으로 연결됩니다. 농촌지역도 이제는 인터넷을 사용해요. 이러한 도시화 현상과 모바일 인터넷을 통한 이동성의 확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완전히 새로운 산업이 창출되는 기회를 제공할 겁니다. 앞으로 2년 동안 인도에서만 6000만 명의 신규 고객이 탄생합니다. 정말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지요.세계화나 가상화 개념은 장기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이런 전략을 구현하는 데는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이 걸려요. 글로벌 금융 위기나 경기 침체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합니다.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인구 통계학적 변화는 계속 일어나고 있지요. 실제로 중국과 인도는 위기를 딛고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높은 성장을 구가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장기적인 시각에서 변한 것은 없습니다. 시스코의 세계화 전략은 1~2년을 보고 짠 전략이 아니라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마련한 장기 전략이에요. IT 업계에서 35년 동안 일하면서 세계경제의 붕괴를 5번 겪었지요. 이번이 여섯 번째예요. 물론 경제 위기로 장기 전략에서 우선순위는 재설정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요소는 변함이 없어요.세계화·가상화·분산화를 추진하려면 과거처럼 본사가 한곳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전 세계에 여러 개의 본사가 필요한 거죠. 시스코는 이러한 비전을 갖고 3년 전 인도에 두 번째 본사를 설립해 동쪽 지역을 담당하도록 했지요. 그동안 벵갈루루에 새로운 ‘캠퍼스’를 짓고 신사업인 ‘스마트 앤드 커넥티드 커뮤니티(SCC)’를 체험할 수 있는 전시 시설을 구축했어요. 이제는 다음 단계로 이동하려고 해요. SCC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혁신센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가장 적절한 지역을 고민하다가 인천 송도로 눈을 돌리게 됐어요. 앞으로 송도에서 SCC를 구현할 겁니다. 벵갈루루에 있던 직원들이 송도로 와 혁신센터 건립을 준비하고 있어요.지난 2년 동안 시스코는 도시 개발 분야에 많은 경험을 축적해 왔어요. 우리 삶에서 기술이 담당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과 인터넷의 산업화, 또 이를 통해 가능한 여러 서비스들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작업을 해 왔지요. 하지만 이들은 개별적인 사업에 국한된 수직적인 형태였어요. 반면 송도는 그린필드 시티, 즉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도시이기 때문에 종합적인 접근이 가능해요. 인천시와 송도에서 제공될 수 있는 20여 개 서비스군을 파악했어요. 교육·교통·유틸리티·에너지·의료 등 각각이 하나의 수직 산업을 형성하는 것들이죠. 송도는 이들을 수평적으로 모아 종합적인 비전을 갖고 건설될 겁니다.SCC는 완전히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겁니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재현 가능한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세계적 개발 사업자인 게일인터내셔널과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 게일은 앞으로 유사한 도시를 20개 이상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죠. 이제까지 도시 건설은 항상 개별적·독립적 차원에서만 진행됐어요. 반복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하지 못한 거죠. IT·환경·산업·건설·시공 분야의 여러 파트너들과 협업을 통해 과거 도시를 기획해 실제로 짓고 활성화하는데 걸린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7년까지 단축할 수 있을 겁니다.현재 우리가 쓰는 에너지와 상수도, 가스 등은 각자 따로따로예요. 하나로 연결해 주는 시스템이 없는 거죠. 첫 단계는 이들 기존의 유틸리티 간에 연결성을 구축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쉽게 접근 가능하고 한눈에 볼 수 있는 통합 대시보드(Dashboard)를 제공하지요. 현재 각 가정에서 에너지 소비 현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러니 에너지 소비를 절감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질 수 없어요. 앞으로 통합 대시보드가 개인들에게 제공되면 에너지 소비를 10%까지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이를테면 송도에 시범적으로 만든 ‘파운더스 클럽’에서는 에너지 소비 현황을 온라인으로 바로 볼 수 있어요. 창문 블라인드를 닫으면 이산화탄소 몇 톤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구체적인 정보도 함께 제공되지요. 바로 연결성에서 정보력과 분석력이 나오는 겁니다.모빌리티, 즉 이동성 개념이 우리의 실제 거주와 근무 현태에도 적용됩니다.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이 직장에 물리적으로 출퇴근하지 않고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거나 ‘스마트 워크센터’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거죠. 이렇게 되면 직장의 출퇴근 문화가 변하고, 사용하는 자동차 유형이 바뀌고, 궁극적으로 대중교통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도시 전반에 환경 친화적 요소를 가미하고 연결성을 확대하면 향후 10년 내에 에너지 효율성을 30%까지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봐요.구체적인 사항은 말씀드리지 못합니다.(웃음) 존 챔버스 회장님이 지난 4월 밝힌 것처럼 앞으로 5년 동안 한국에 20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지요. 투자는 여러 단계로 나누어 진행됩니다. 현재 건설되고 있는 동북아트레이드타워 내의 몇 개 층을 시스코가 쓸 거예요. 여기에 혁신센터가 들어가지요. 벵갈루루의 최고 인재들도 송도로 이동하고 있어요. 미국 내 직원들도 가족과 함께 송도로 옮겨오고 있어요. 9월 말 1단계 직원 이동이 완료되면 국내 시장에서 인재 채용을 진행할 거예요. 2010년 1~2월 50명 정도 직원이 송도로 추가 이동할 예정이죠. 이 밖에도 앞으로 5년 동안 연구소 건립, 파이낸싱 등 다양한 형태로 투자가 진행될 겁니다.약력: 1954년생. 제록스, 휴렛팩커드(HP) 근무.1997년 시스코 합류, 유럽지역 고객지원 부문 부사장. 시스코 부회장 겸 세계화책임자(현).송도= 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