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카길’을 꿈꾸는 농업 기업들

한국에서도 미국 카길(Cargill)사처럼 농업 메이저가 탄생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한국에는 아직 경작을 직접 하는 대기업은 없다. 노동집약적 산업이어서 대기업이 직접 진출하기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예외적으로 현대건설에서 분리된 서산농장이 서산 간척지 2600만㎡ 규모의 농장에서 연간 15만 가마(1만 2000톤)의 쌀을 직접 생산하고 있다. 또 2800두 규모의 한우를 사육하고 있다. 서산 간척지는 1979년 매립 허가를 받은 뒤 1984년 물막이 공사를 끝내 1999년 매립이 완료됐다. 당시 초대형 선박으로 파도를 막고 물막이 공사를 진행한 정주영 회장의 뚝심으로 유명한 곳이다. 매립이 진행되고 있던 1986년 시험 영농이 개시돼 쌀이 생산되기 시작했다.2005년 현대건설 직원들이 지분을 사들여 서산농장 법인이 설립됐다. 항공기 등 기계화 농법으로 대규모 경작이 가능하고 친환경 공법도 자체적으로 개발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현재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큰 영농법인이지만 규모를 더 늘릴 계획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만한 대규모 농지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다.영농 기업은 아니지만 경작을 하고 있는 경우로는 아모레퍼시픽의 제주도 녹차 농장이 있다. 제주도 내 4개의 농장에서 총 190만㎡ 규모로 차를 경작하고 있다. 처음 시작은 창업자가 한국을 대표하는 차 문화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한 것이지만, 현재 이 농장에서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연간 2만8500톤으로 이 회사의 생산·물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을 뛰어넘는다. 탄소배출권이 본격적으로 거래되면 농업에 진출할 기업이 늘 것으로 예견되는 부분이다.실제로 현대중공업은 올해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여의도 33배 넓이(1억㎡)로 경작을 하고 있는 영농법인 ‘하를 제르노’의 지분 67.6%를 인수하기로 합의하고 최종 계약 단계에 있다. 현대중공업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이어받는 동시에 식량안보와 녹생성장 차원에서 인수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차세대 다목적 사업으로 농업이 제격이라는 얘기다.그 외에도 남양 알로에로 잘 알려진 유니베라는 해외 4곳(미국 텍사스, 멕시코 탐피코, 중국 하이난, 러시아 연해주)에서 3500만㎡ 규모로 알로에와 황금(약용식물), 에크네시아(약용식물)를 재배하고 있다. 중국에서 두부용 콩을 재배하던 풀무원은 현재는 재배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대기업 계열 중 농업 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는 곳은 동부그룹 계열의 동부하이텍이 유일하다. 동부하이텍은 비료·농약·종묘·동물약품 등의 농재료 생산 기업이다. 동부하이텍 농업부문의 지난해 매출액은 6456억 원으로 국내 농약 시장점유율 1위다. 1953년 한국농약으로 시작해 (주)한농을 거쳐 1995년 동부그룹에 인수된 후 2007년 동부한농과 동부아남반도체와 합병해 동부하이텍이 됐다. 동부하이텍 측은 농업과 정보기술(IT)을 접목하기 위해서라고 합병 이유를 설명했다.동부하이텍은 앞으로 직접 경작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지난 4월 농림수산식품부가 새만금 간척지의 660만㎡ 규모 농지에 들어설 대규모 농어업 회사 3곳을 선정했는데 동부하이텍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동부하이텍은 전체 부지의 절반인 330만㎡ 규모로 파프리카와 토마토 등의 시설 원예작물과 한우 사육과 동시에 배설물을 이용해 사료로 키우는 경축순환농법을 이용할 계획이다. 서산농장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수익성이 높은 작물과 동물을 키워 수출 전문 업체로 육성할 계획이다.또 하나의 새만금 간척지 사업자 농산무역은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영농조합이 출자자로, 사업자로 선정되면 파프리카를 키울 계획이다. 또 다른 선정 업체인 새만금초록마을은 유통 업체 한겨레플러스가 참여한 컨소시엄으로 경축순환농법으로 한우를 사육해 유통 업체에서 농업 기업으로 거듭날 예정이다.이명박 정부 이전까지의 농업 정책은 농민에게 직접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이뤄졌지만 현 정부에서는 직접 보조금을 점차 줄이고 부족한 후생은 복지를 늘리는 것을 정책 목표로 하고 있다. 또 기업의 농업 진출 규제를 완화해 기업형 농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농업에도 경쟁적 요소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요지다.대기업에서 파생된 농업 기업 외에 자생적으로 성장한 기업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일단 코스닥에 상장된 농업 기업들로 위에서 언급한 동부하이텍 외에 하림·농우바이오·세실이 있다.하림은 잘 알려진 닭고기 가공 업체로 지난해 매출 4453억 원으로 국내 육계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직접 양계하는 것은 아니고 양계 농가로부터 납품을 받아 가공해 상품화하고 있다. 2010년 매출 5700억 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종묘 업체인 농우바이오는 2008년 매출 410억 원으로 호박·고추·무·수박의 씨앗과 상토(床土:모판흙)를 생산하고 있다. 국내 점유율은 21%로 업계 1위다.세실은 천적 농업 전문 업체로 2008년 매출 184억 원이지만 당기순이익은 68억 원이다. 주요 제품은 천적류가 86%, 수정벌이 8.75%다.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 농산물이 늘어나면서 세실의 매출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세실의 제품은 곤충병원성선충·굴파리좀벌·무당벌레·진디혹파리 등으로 22가지에 달한다. 시장점유율 80% 이상으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 매출 대비 순이익률이 높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생명공학기술(BT) 업체로 불리기도 한다.대기업과 상장 업체를 살펴본 뒤 눈여겨볼 곳은 한국농업CEO연합회 소속의 기업들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역사를 자랑하는 업체들도 꽤 많은 편이다. 한국농업CEO연합회는 일단 농업 기업일 것, 매출 10억 원 이상일 것, 법인이어야 할 것, 설립 2년 뒤 가입 가능하다는 것이 타 사회단체와 다른 점이다. 물론 가입 자격이 되는 모든 농업 기업이 가입한 것은 아니다.눈여겨볼 기업은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설립해 운영했던 참다래 유통사업단이다. 전남 해남군 화산면 키위단지는 농업에 ‘이건희식 경영’을 접목한 기업형 영농으로 연간 350억 원대 매출을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600여 곳의 농가가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참다래유통사업단은 농업 경영의 성공 모델로 알려지면서 정 전 장관이 입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학사농장은 농과대학을 졸업한 젊은 사람들이 모여 전라남도 장성군에 만든 농장으로, 이름도 젊음과 전문성을 상징하는 학사농장이라고 붙였다. 1992년 66㎡ 규모로 출발한 학사농장은 농업에 경영 마인드를 도입해 농촌에 희망을 불러 오겠다는 취지로 세워졌다. 13만2200㎡(4만 평)의 농장에서 상추 치커리 신선초 무 감자 수박 등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농산물 40여 종을 유통, 판매하고 있다. 호남 지역 유기농 농장으로는 최대 규모로 2004년 2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생산 작물 대부분은 품질 검사가 까다로운 백화점이나 대형 유통점에 납품됐다.2001년 설립된 경기도 안성의 머쉬하트는 새송이버섯을 상품화한 업체로 6개 농장 1만2000㎡에서 연 2500톤 규모의 새송이버섯과 1400만 병의 병배지를 생산해 유럽 미국 캐나다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판매하고 있다.경기도 칠곡군의 금종농산은 전통적인 벼농사 자영농으로 출발해 50만㎡의 기업농으로 큰 사례다. 1978년 귀향 후 10년 동안 부인과 함께 소규모로 농사를 짓다가 본격적인 쌀농사를 시작한 지 불과 6, 7년 만에 최고의 쌀 경작농이 됐다. 현재 금종농산 인근 2~3km 내 50만㎡의 평야가 모두 이 회사 김종기 대표의 일터다. 금종농산의 특징은 조기 재배, 조기 수확, 조·중·만생종의 분산 농사가 성공의 비결이다.= 개인 소유의 다국적기업으로 미국 미네소타 주에 있다. 1865년에 설립됐으며 미국의 개인 기업 중 두 번째로 큰 기업으로 피고용인이 약 15만8000명이고 매출은 약 880억 달러다. 만약 이 기업이 기업공개를 했다면 포천 500대 기업 10위 안에 들었을 것이다. 사업 형태는 농산물, 즉 곡식의 구입·가공·배포이며 닭과 같은 식용 조류 모이와 약 재료다. 설립자인 카길과 맥밀란 가족의 자손이 회사의 지분 85%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회사의 성장이 자본 공개가 아닌 회사의 재투자를 통해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