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티크 금융사들의 파이팅

금융 업계에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명제가 통하는 것일까. 요즘 미국 금융계에선 전문가들이 모여 차린 소형 ‘부티크(boutique)’ 금융사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대형 투자은행들이 제 몸을 추스르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이들 부티크 금융사들이 틈새를 공략하며 약진하고 있는 것이다.파이낸셜타임스(FT)가 금융 정보 제공 업체 딜로직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7월 현재 부티크 은행들의 인수·합병(M&A) 자문 시장 점유율은 자문 수수료 기준으로 14%다. 부티크 은행의 시장점유율은 2000년대 초 ‘닷컴 버블’때만 하더라도 8%에 머물렀으나 2007년 12%로 올라섰고, 올 상반기엔 역대 최고 수준인 14%까지 늘어났다.그동안 금융 업계가 호경기일 때 대형 투자은행들은 M&A 자문 업무보다 수익이 많이 나는 대형 주식이나 채권 딜에 집중했다. 그 틈새를 비집고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에서 명성을 쌓은 은행가들이 ‘부티크 은행’을 차렸다. 대형 은행들이 전략적 자문을 필요로 하는 고객들을 소외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모건스탠리의 M&A 사업부문 총책임자였던 조지프 페렐라는 2006년 ‘페렐라와인버그’를, UBS의 미국 시장 진출을 주도했던 켄 모엘리스 전 사장은 2007년 ‘모엘리스앤드컴퍼니’를 설립하며 ‘그린힐앤코’ ‘에버코어’ ‘라자드’ 등 기존 부티크 은행 대열에 합류했다. 이 밖에 또 다른 UBS 뱅커 출신 블레어 에프론도 ‘센터뷰’를 세웠다. 7월 현재 M&A 자문 수수료 기준으로 본 부티크 은행들의 랭킹은 1위가 라자드(3억1100만 달러)이고 △2위 로스차일드(1억9100만 달러) △3위 그린힐앤코(6100만 달러) 등이다.M&A 자문 외에 신사업 영역 확대부티크 은행들의 주된 수입원은 M&A 자문 수수료다. 이는 시장 환경에 따라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다. 한 건만 제대로 잡으면 1년 치 수입이 나오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빈손으로 지내야 한다. 실제로 올 상반기 에버코어가 자문한 775억 달러의 M&A 딜 중 681억 달러가 화이자의 와이어스 인수 1건에서 나왔다. 이처럼 심한 기복 때문에 과거 활동하던 부티크 은행들의 상당수는 사업을 길게 끌어가지 못했다. 자본 확충 필요성 등의 이유로 대형 금융사에 매각됐거나 아니면 해체됐다.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활동 중인 부티크 은행들은 M&A 자문 외에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확대를 꾀하고 있다. 에버코어와 페렐라와인버그는 자산관리 부문을 추가했다. 자산관리 부문에서 나오는 안정적인 수수료 수입이 M&A 자문 수입의 굴곡을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그린힐과 센터뷰 등은 사모 투자 영업 부문을 신설했다. 그린힐의 사모 펀드 부문은 자문 업무 부문이 상대하는 기업보다 규모가 작은 회사들에 투자한다. 이에 비해 센터뷰는 고객들과 함께 대형 딜에 참여하는 전략을 쓴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러한 사업 확대 때문에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질 경우 인력의 높은 생산성이나 고부가가치 창출 등 부티크 은행만의 특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한편 미 자산운용 업계에서도 규모가 작은 부티크 운용사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 부티크 자산운용사는 소수의 매니저들로만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시카고 소재 ‘브루스 펀드’의 경우 아버지와 아들 단 둘이서만 운용하고 있다. 비즈니스위크 최신호(9월 28일자)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0년간 투자자들에게 연 17%의 수익을 안겨줬다. 비즈니스위크는 브루스 펀드가 전형적인 ‘부티크 펀드 효과’를 보여준다고 소개했다.특히 이들 대부분의 부티크 펀드엔 펀드매니저와 가족들의 돈이 많이 투자돼 있다. 브루스 펀드의 경우 아버지 로버트 브루스 매니저가 최대 지분을 갖고 있다. 이들 부티크 펀드는 소위 ‘절대 수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특정 섹터에 얽매이거나 벤치마크지수 이상의 수익률을 목표로 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벌고 손실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부티크 펀드지만 블루칩에만 투자하거나 소형주에만 투자하는 특화된 펀드들도 있다. 규모가 작은 부티크 펀드의 경우 잘못된 베팅으로 큰 손실이 났을 때 회복 기회를 갖지 못하고 청산될 수도 있다는 것은 약점으로 꼽힌다.박성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