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 리더, 펀 경영

IBM의 창설자인 톰 왓슨이 회장으로 있을 때 한 간부가 위험 부담이 큰 사업을 벌였다가 1000만 달러가 넘는 엄청난 손실을 냈다. 왓슨에게 불려 들어온 간부가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물었다.“물론 제 사표를 원하시겠죠?”그러자 왓슨이 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지금 농담하는 건가? IBM은 자네의 교육비로 무려 1000만 달러를 투자했다는 말일세.”충격적 보고를 받은 왓슨은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가 선택한 건 분노나 허탈이 아닌 유머였다. 유머를 통해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그 희망은 훗날 손해 본 수 배 이상의 성장과 이익으로 돌아왔다.“미국의 경제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은 세 가지다. 경기 침체(recession)는 이웃이 실직했을 때, 불황(depression)은 내가 실직했을 때, 경기 회복(recovery)은 카터가 물러났을 때.”이것은 1980년에 대통령 선거에 나선 레이건이 청중들 앞에서 했던 말이다. 이 한마디의 유머 속에는 실로 많은 내용들이 함축돼 있다.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 사람들의 자기중심적 기준, 그리고 ‘경기 침체는 카터의 무능함 때문’이라는 신랄한 비판. 그것이 카터에게 그 어떤 논문이나 웅변보다 날카로운 화살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왓슨에서와 마찬가지로 레이건도 고도의 자제력을 보여준다.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상대방은 물론 그걸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리더십의 손상을 가져온다. 유머형 리더들은 본능적으로 유머가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표출하면서도 후유증이 없는 효과적인 스피치 도구란 걸 안다.최근 대인 관계나 스피치 수준에 머무르던 유머가 조직 경영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적 기업 카운슬러인 데브라 밴턴은 최고경영자(CEO)들의 성공 비결을 분석한 ‘CEO처럼 생각하는 법(How to think like a CEO)’에서 ‘유머가 있다’는 것과 ‘이야기를 재미있게 한다’는 것을 성공하는 CEO들의 공통된 특징으로 꼽았다. 유쾌한 사람은 생산적인 노동력을 만들어내고 시무룩하거나 뚱한 사람은 비생산적인 노동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경영자의 권위란 현실에 대한 판단과 미래에 대한 비전, 그리고 과감한 결단력 등 경영적인 요소에 의해 확보되는 것이지 단순히 엄숙한 표정이나 행동을 보인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펀 경영을 이론화한 이는 로버트 레버팅 박사다. 그는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바로 종업원”이라는 가치를 확산시키며 유머 경영의 중요성을 알렸다. ‘훌륭한 일터’란 상사와 경영진을 신뢰(trust)하고 일에 자부심(pride)을 갖고 재미(fun)를 느낄 수 있는 기업을 말한다. 미국발 펀 경영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칭찬의 비타민’도 비슷한 프로그램이다. 업무와 관련된 것은 물론 동료의 남모르는 선행이나 자기 계발 노력도 칭찬할 수 있다. 칭찬 포인트가 쌓이면 꽃이나 상품권 등 다양한 선물이 해당 사원에게 전달된다. 말 그대로 일터의 활력소, 비타민이다. 현대택배는 수시로 웃음 사진 콘테스트를 열어 소중한 추억이 담긴 사진을 공유하고 칭찬하며 활기찬 직장 분위기를 만든다.펀 경영은 단순한 웃음 추구 그 이상의 결과를 가져온다. 이직률이 낮아지고 근무에 대한 몰입이 향상된다. 상사의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시간을 때우는 지겨운 일터가 아니라 소속감과 자아실현의 장으로서의 직장으로 변한다. 이러한 변화는 고객 측면에서도 일어난다. 과거 고객들이 단순히 상품이나 용역을 제공받았다면 이젠 즐거움까지도 받는다. 내부 고객(직원)과 외부 고객(소비자)의 펀 리더, 펀 경영에 대한 기대가 점차 높아지는 이유다.약력: 1958년생. 90년 연세대 신학과 졸업. 91년 유머경영연구소 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