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솔리스트 유지연
“연중 53일이 휴가예요. 1주일에 4~5회, 많을 때는 9회씩 공연하는 데다 1년의 절반을 해외 공연으로 돌아다니니 체력적으로 무척 힘이 들기 때문에 무용수들에게 휴가를 한꺼번에 쓰게 해요. 휴가 중 단장이 8월 초에 런던 공연이 있다고 연락해 왔는데 못가겠다고 했더니 ‘너 없으면 공연하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설득 끝에 돌아가진 않았는데 서울에서도 쉴 수만은 없네요.”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솔리스트 유지연(33) 씨는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휴가의 꿀맛을 만끽하기엔 너무 바빠 보였다. 그의 귀국 소식을 듣고 각처에서 공연 요청이 쇄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예원학교의 발레 꿈나무들을 위한 레슨 등으로 빡빡한 일정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나 한국에서나 여전히 “사람 만날 시간이 없다”는 그는, 그래서 아직 싱글이다.발레리나 ‘유지연’은 사실 화려한 프로필에 비해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무용수다. 유럽 유학파 출신 발레리나들의 빈번한 언론 노출에 비해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러시아 발레단의 무용수로 어쩌면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그가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은 러시아가 자랑하는 3대 발레단 가운데 정통 클래식 발레를 고수하는 곳으로 그 역사만도 300여 년을 바라본다. ‘마린스키’라고 했을 때 생경한 느낌을 받았다면, ‘키로프’라고 바꿔 말하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현재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러시아의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극장장으로 있는 마린스키 극장 소속 발레단인 ‘마린스키 발레단’은 러시아 황실극장으로 애초에 ‘마린스키’로 불렸으나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키로프’라고 개명됐다가 1990년대 러시아 혁명과 함께 예전 이름인 ‘마린스키’를 되찾는 과정을 겪었다. 300여 명의 무용수 가운데 외국인 무용수는 단 2명. 한 명은 우크라이나계 오스트리아인인 남자 무용수라고 하니 순수한 외국 혈통의 무용수는 유지연 씨가 유일하다.“다섯 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는데 예원학교 다닐 때까지 언제나 최고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콩쿠르마다 1등을 했죠. 초등학생이 그 정도로 했으니 얼마나 질렸겠어요.(웃음) 발레가 지겨워 초등 3~5학년까지 리틀앤젤스무용단에서 한국무용을 했는데 6학년 때 발레에 관한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죠. 다시 발레를 시작해 예원학교 입학 때 실기에서 1등을 했어요. 당시 예원학교에 러시아 바가노바 아카데미에서 오신 에프게니 세르바코프라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분의 눈에 띄어 꿈에도 그리던 유학을 떠나게 됐어요.”바가노바 아카데미는 키로프 발레단의 부속 발레학교다. 당시 만 열네 살이던 유 씨는 바가노바 입학 규정상 입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만 17세부터 입학이 허락되기 때문. 하지만 “17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던 러시아 선생님은 6개월 뒤 부인을 직접 한국으로 보냈다. 초청장을 들고 온 사모(師母)를 따라 떠난 것이 14년 전이다.“그때가 공산주의 체제였거든요. 생필품을 배급받아 쓰니 돈만 있다고 다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처음 러시아로 갈 때 짐 무게가 200kg이었어요. 화장실용 휴지까지 들고 갔거든요.(웃음) 돈을 들고 가게를 가도 살만한 물건이 없었어요. 쌀과 밀가루 등을 배급받으면서 살았죠.”180도 달라진 사회 시스템도 힘들었지만 러시아인 교사에게 러시아어로 배우는 러시아어 수업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다. 동기들보다 나이도 어렸으니 남들이 놀거나 자는 시간조차 연습해야 하는 것은 물어보나마나 한 일이었다.그러나 바가노바 아카데미 역사상 최연소, 최초 동양인이었던 그의 피나는 노력은 졸업 즈음 빛을 발했다. 1995년 바가노바 국제 콩쿠르 예술상을 수상하면서 바가노바 아카데미를 전 과목 만점 수석으로 졸업한 것. 같은 해 드디어 꿈에 그리던 ‘키로프’ 발레단에 드 미 솔리스트(솔로를 추기도 하지만 주로 앙상블을 추는 무용수)로 입단하게 된다.발레단에서 유 씨의 위치는 솔리스트. 10여 명의 주역 무용수 다음의 실력자들로 각각의 레퍼토리에서 독무를 추는 무용수로 ‘마린스키’ 발레단은 현재 20여 명의 솔리스트를 확보하고 있다. 유 씨는 솔리스트로 ‘마린스키’의 대표작이기도 한 ‘백조의 호수’ 중 ‘스페인 공주’, ‘지젤’ 중 ‘미르타’, 현대 발레 ‘카르멘’ 등의 작품으로 클래식과 모던 발레 양쪽을 오가며 역량을 키웠다.“동양인이라서 신체적으로 불리한 것은 없었어요. 단, 한국의 발레 교육 시스템이 얼마나 부실한지 깨닫게 됐죠. 제가 발레를 배울 때만 해도 주로 외국의 공연 비디오를 보고 따라하는 식이었거든요. 또 기본기보다 테크닉 교육에 주력했고요. 아이로니컬하게도 바가노바 동기생 중에 테크닉은 제가 최고였지만 기본기가 덜 되어 있어 고생했어요. ‘마린스키’는 러시아 발레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발레의 자존심이에요.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지만 입단한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인 평가를 받고 등급이 정해지기 때문에 결코 나태해질 수 없어요.”셀 수 없을 만큼의 공연과 레퍼토리가 그의 지난 14년을 대변해 준다지만 유 씨 스스로 자신의 프로필에서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난 2003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1903~2003 발레 역사 사전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 사실이다.외국인으로 당당히 발레의 최강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음이 증명 것이다. 특히 그는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라인과 풍부한 감정 표현이 강점이라는 평을 받아왔다.“이번 제30회 서울무용제 개막 초청 공연에 오르게 됐어요. ‘여인에 관한 습작(Etude About The Woman)’이란 독무인데 안무가 기릴 시모노프가 저만이 그 춤을 출 수 있다고 해서 제게 준 작품이에요. 안무가도 만족해 했고요.”‘여인에 관한 습작’은 국내 팬들에게 발레리나 유지연을 각인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마린스키 극장 무대를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스웨덴 한국 등 세계 각지를 돌며 해외 무대에서 ‘마린스키’의 유일한 동양인 무용수로 진가를 발휘하는 그에게 모국인 한국에서의 ‘러브콜’이 없다면 거짓말일 터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무용수 집단인 ‘마린스키’ 솔리스트를 포기한다는 것 또한 쉽지만은 않은 선택일 테다.“한국에서 관심을 보인 곳이 있긴 해요. ‘마린스키’는 입단 후 20년이 지나면 정년이에요. 저도 한 6년 남은 셈인데 체력이 허락하는 한 ‘마린스키’에 남고 나중엔 한국에서 발레를 가르치고 싶어요. 마린스키 출신들이 주로 바가노바 아카데미에서 지도를 하지만 러시아인들에게 굳이 한국인인 제가 발레를 가르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저는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고,한국인이니 한국 학생들을 가르쳐야죠.(웃음) 체계화된 마린스키의 발레 교육 시스템을 한국 발레 교육에 접목한다면 한국 발레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러시아에 있으면 발레단과 기숙사만 오가니 사람 만날 시간도 없어요. 저도 (한국에서) 결혼해야죠.(웃음)” 약력: 1976년 서울 출생. 1991년 예원학교 재학 중 러시아 국립 키로프 발레단 부속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로 유학. 1995년 키로프(현 마린스키) 발레단 입단, 솔리스트 무용수로 활동 중. ‘호두까기 인형’ 중 ‘마샤’, ‘지젤’ 중 ‘미르타’, ‘백조의 호수’ 중 ‘스페인 공주’, ‘해적’ 중 ‘폴리스틴스키’를 비롯해 현대 발레 ‘카르멘’, ‘여인에 관한 습작(Etude About The Woman)’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장헌주·객원기자 hannah315@naver.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