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에세이

1990년대 중반, 경기가 한창 좋을 때 필자는 모 라디오 방송에서 틈새 사업 정보를 계속 소개한 적이 있었다. 방송이 나간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수많은 청취자들이 기존 사업 콘셉트와 다른 새로운 사업에 관심을 기울였고, 창업자들은 물론이고 규모가 있는 기업체 근무자들도 재미있어 했다.니치마켓은 숨어 있는 황금 시장이다. 니치마켓을 노리는 틈새 사업들은 대개 기존 사업의 불편함 단점 등을 해결하거나 기존 사업자가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시장, 혹은 세분화된 계층을 타깃으로 각을 세운 업종들이 대부분이다.틈새사업은 트랜드 변화가 극심할수록, 세대가 바뀌고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이뤄질 무렵, 산업 전반에 파급효과가 큰 기술이 확산될 무렵 더욱 많이 등장한다.최근 모바일 시장이 요동치고 미디어 융합 시대가 도래하면서 PDA를 이용해 각종 배송 배달 택배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 멀티 오더 사업이나 개인 방송국 사업 등이 등장하는 것도 그 예라고 할 수 있다.유사한 업종들이 난립하는 요즘 창업 시장에서 가장 필요한 게 바로 혁신을 통한 틈새 사업, 니치마켓과 혁신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현장에서 컨설팅을 할 때 컨설턴트의 고민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기본 경쟁력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의 문제다. 여기에는 품질과 가격, 종업원 역량, 업무 프로세스, 사업 환경 정비, 경영자의 마인드 등 모든 경영의 문제가 포함된다.또 하나는 어떻게 차별화를 이룰 것이냐다. 그 사업체만의 독특한 판매 포인트, 일명 USP(unique selling point), 즉 차별화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틈새 전략이란 차별화 요소, 독특한 판매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다.틈새 전략이라고 해서 꼭 거창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고객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으로 작은 차별화를 노려볼 수도 있다.IMF 직후 도서 대여에 방문 및 추천 도서 개념을 접목해 대히트를 기록한 아동도서 방문 대여업은 대표적인 틈새 전략의 사례로 꼽힐만하다.영어 감성 놀이 학교를 표방하는 젤리빈(www.jellybean.co.kr)은 기존 사업에 새로운 트렌드를 입혀 니치마켓을 노리는 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한동안 감성 놀이를 통한 사고력·창의력 함양이 어린이 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겨졌으나 영어 교육 붐에 밀려 다소 인기를 잃고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감성 놀이를 내세운 유치원이 인기를 얻기 전에는 영어 유치원이 인기를 끌면서 급속히 확산되기도 했다.젤리빈은 감성 놀이 교육을 시키고 싶은데 영어가 아쉽고, 영어 유치원에 보내자니 창의력과 사고력 개발이 아쉬운 학부모들의 마음을 노린 업종이다. 대개 어린이 감성 놀이 교육 센터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 브랜드는 기존 사업자나 창업자들의 이런 고충까지 노려 기존 감성 놀이 학교 운영 사업자들이 손쉽게 영어 감성 놀이 학교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교육 사업자들이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틈새를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주점만큼 경쟁이 치열한 분야도 드물다. 하지만 주점에서 대표적인 업종은 호프 전문점과 소주를 마시는 장소로 포지셔닝된 삼겹살 전문점일 것이다. 하지만 퓨전 주점 시대에 접어 들면서 이자카야를 비롯해 막걸리 주점 등 다양한 업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또 주점의 주요 고객층이라고 할 수 있는 20~30대 들의 경우 유행을 선도하고 빠른 트렌드를 추종하는 얼리어답터들이 많아 그 어느 분야보다 경쟁이 치열하다. 최근 2~3년간 확산됐던 퓨전 주점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안주 가짓수가 많지만 냉동 제품을 사용해 손쉽게 조리해서 내놓는다는 점. 편리할지는 모르지만 고객 입장에서 안주에 대한 만족도는 그만큼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인기를 얻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막걸리 전문점의 중요한 패인에는 형편없는 맛의 냉동 안주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이에 비해 최근에는 기존의 냉동 안주를 개선한 수작 요리점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단기간에 170개 이상의 가맹점을 확보한 호프 프랜차이즈 치어스의 가장 큰 성공 비결도 프레시 푸드다. 최근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야무야무(www.yamuyamu.co.kr)도 수작 요리를 내세운다. 야무야무는 수작 요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0~30대의 소비를 여성이 주도한다는 점에 착안, 여성 취향적인 타깃 마케팅으로 또 다른 관심을 끈다.여성 취향적 디자인 문양과 커튼, 감성적 칸막이 등으로 독립된 공간을 제공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연출할 뿐만 아니라 메뉴도 연어 고구마 등 여성 취향적 재료를 이용한 안주와 과일 탄산수를 혼합한 도수 낮은 칵테일 등 여성 취향 메뉴와 주류를 구비하고 있다. 이 덕분에 이 브랜드는 매장마다 여성 고객 비율이 60%가 넘는다.숨어 있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사업도 있다.명품 칼갈이를 내세운 칼의 부활(www.xn--or3b13px0fqwi.kt.io)이라는 회사는 주부들의 숨은 욕구를 달래주는 사업. 작은 차량에 탑을 장착해 칼갈이 기계와 다른 장비들을 설치해 고객을 찾아간다. 고객들은 방문한 차량에서 손쉽게 칼을 갈 수 있다. 요리의 핵심 도구인 칼끝이 무뎌져 고민하는 주부들의 고민을 시원하게 날린 업종이라고 할 수 있다.최근에 새로 등장한 이동야채상(www.freshchan.com)도 SSM(중대형 슈퍼마켓)의 등장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네 구멍가게 야채상들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상품을 냉장 탑차에 편의점처럼 깔끔하게 진열해 다품종 소량 포장으로 찾아가는 개념이다.핵가족화 시대를 맞아 대량 구매할 경우 먹지 못하고 버리는 찬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들의 냉장고를 정리해 주는 새로운 대안인 셈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공식적으로 이동차량 사업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 기존 구멍가게와의 마찰 등이 우려되는 문제점이기도 하다.차별화+경영능력=성공고객들의 욕구를 잘 살피면 크고 작은 틈새 전략은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다.최근에 인기를 끄는 국내 최초의 삼각김밥 카페 프랜차이즈 오니기리와 이규동(www.gyudong.com)은 삼각김밥 마니아 층이 두터워진 현실을 감안, 보다 업그레이드된 수제품의 맛을 제공하는 데서 틈새를 찾았다. 또 싱글족 증가로 나 홀로 식사족이 늘고 있는 점을 감안, 4인용 테이블 중심에서 탈피, 바 타입의 매장 구성과 테이크아웃에 비중을 뒀다. 결과는 대박으로 이어졌다.얼마 전 코엑스에서 개최된 창업 박람회를 둘러봤는데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사업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창업자들의 혁신적인 도전 정신을 보는 것 같아 반가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반짝 아이디어에 거쳤다가 사라진 수많은 사례들이 떠올라 안타깝기도 했다.틈새 전략은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는 차별화 전략일 뿐이다. 그것만으로 성공을 보장받는 건 아니다. 결국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차별화 전략에 더해 탄탄한 경영 능력이 필요하다.성숙기에 도달한 우리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혁신적인 신사업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더욱 많은 창업자들의 도전과 모험이 필요하며 이들을 성공으로 인도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도 시급히 갖춰져야 할 것이다.이경희·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 ksbi@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