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구름이 하나 둘 모여들면 언젠가 비가 내리게 마련이다. 미리 우산을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출구전략이 똑같은 경우다.아직도 책임 있는 당국자는 출구전략 실행이 성급하다고 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월 14일 “출구전략에 대한 준비는 해야 할 단계지만 금리 인상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경기 회복 정도가 금리 인상을 감당할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 역시 금리 인상에 신중론을 폈다. 이 대통령은 “세계가 다시 출구전략을 써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등 얘기를 하고 있지만 올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까지는 그래도 신중하게 임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하지만 이런 발언들의 행간을 잘 살펴보면 출구전략이 임박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와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이뤄져 왔고 국내 경기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특히 그렇다. 발언이 나오는 것 자체가 향후 비가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일기예보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실제 지난 9월 10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공개적으로 금리 인상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이 총재는 “지금 상태는 금융 완화의 강도가 상당히 강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일부 인상되더라도 여전히 완화 상태”라고 말했다. 역사상 최저 수준인 2.0%의 기준금리가 증권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단기 과열로 이끌면서 유동성 버블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는 게 한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표면적으로 보면 한국은행이 정부와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시장에 양 갈래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출구전략을 본격적으로 가시화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출구전략 자체의 필요성을 계속 암시함으로써 민간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것이다.시중금리는 상승세로 방향 틀어따라서 “출구전략이 시기상조”라는 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믿다가는 나중에 ‘장대비’를 맞을 공산이 큰 상황이다. 정부가 현 상태에서 금리 인상을 주저하고 있는 이유는 기업 투자와 구조조정이라는 두 가지 변수 때문이다.우선 경기가 본격적으로 살아나려면 △기업 투자 △민간 소비 △재정지출 등의 3각축이 튼튼하게 굴러가야 하는데, 기업 투자가 여전히 살아나지 않고 있는 게 부담이다. 지난 2분기의 경우 설비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15.9%나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국내 총투자율은 23.3%로 1977년 1분기의 21.3% 이후 가장 낮았다.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이 완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 역시 정부가 적잖이 신경을 쓰고 있다. 전자·자동차 업종 등이 상대적으로 호황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조선·해운 등은 여전히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폭의 금리 인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한계상황에 도달해 있는 중견·중소기업들도 적지 않다.하지만 기업 투자 부진이나 구조조정 부담을 이유로 금리 인상을 마냥 늦출 수만은 없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저금리에 따른 부작용이 커질수록, 민간 소비와 고용시장 여건이 호전될수록 금리 인상 압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시중금리는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됐던 지난 6월 금통위 이후 상승세로 방향을 틀었다.국고채 3, 5년 금리는 이미 기준금리보다 2.5%포인트 이상 높은 4% 중반대로 올라섰다. 기준금리를 두세 번 인상할 것을 미리 반영한 셈이다.미시적인 차원에서의 출구전략도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지난 4월까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형태로 지원한 27조 원 중 16조8000억 원을 회수한데 이어 외국환 평형기금과 한·미 통화스와프 자금을 활용해 은행 등에 공급한 외화유동성 270억 달러 중 220억 달러 정도를 회수했다.비가 내리기를 기다려 대책을 마련한다면 늦다. 당국자들은 앞으로도 알쏭달쏭한 말들을 계속 내보내겠지만 그 뜻을 헤아리는 시간에 미리 우산을 준비하는 것이 훨씬 현명해 보인다.박신영·한국경제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