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정신으로 성공한 저장성 기업

저장성 사람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머가 있다. ‘외계인이 나타나면 베이징 사람들은 외계인 가족 중에 고급 관료가 있는지 물은 뒤 고위 관료가 없다면 더 이상 상대하지 않는다. 광둥성 사람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살펴본 뒤 어느 부위가 가장 맛있을까 분석한다. 저장성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하며 친구로 삼은 뒤 외계인이 사는 지역의 땅을 개발해 장사를 하자고 권유한다.’그만큼 저장성 사람들은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다. 저장성 출신으로 성공한 기업인들은 수없이 많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기업을 살펴보자.리수푸(李書福·46) 지리(吉利)그룹 회장은 길거리 사진사, 폐가전제품의 금속 추출업, 냉장고 부품, 오토바이 생산을 거쳐 자동차를 생산하는 도전적인 기업인이다.그는 18세 때 길거리 사진사로 밥벌이를 시작했다. 그 뒤 사진관을 설립했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 길거리에 버려진 가전제품이 많은 것을 보고 여기에서 쓸 만한 금속을 분리해 냈다. 이를 토대로 냉장고 부품을 만들었다. 그 뒤 어려움에 처한 회사를 인수해 냉장고 생산을 시작했다. 이후 알루미늄 곡선 판을 연구·개발한 뒤 오토바이를 생산했다. 중국 최초로 페달식 오토바이를 개발했다.오토바이를 만드니 욕심이 생겼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다를 게 뭐 있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1997년 합작으로 자동차를 생산했다. 자기 고향인 타이저우(台州)에 설립했다. 주위에선 ‘미쳤다’고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그는 “바퀴 4개에 의자 2개만 있으면 자동차지 자동차가 뭐가 그리 대단한가”라며 주위의 의혹에 찬 시선을 물리쳤다.1998년에 신차 발표회를 하는데 4만 명을 초청했다. 그러나 전날까지 참석 희망자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중국 정부의 고위 관리가 참석하고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 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2008년에 지리자동차 판매 대수는 20만 대에 달했다. 2009년 상반기에는 이미 14만 대를 팔아 작년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란 지리자동차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리 회장은 “서민들을 위해 중국에서 가장 값싼 자동차를 만들어 팔겠다”고 말한다. 그는 끝없이 문제점을 개선해 가며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켰다. 이제 중국 땅에선 어디서나 지리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지리자동차는 현재 란저우 상하이 항저우 등 6개 지역에 생산 단지를 갖고 있고 생산량은 연간 30만 대에 이른다. 지리자동차는 ‘중국의 자가용 시대를 10년 앞당기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이 회사의 천원밍 부사장은 “2015년 생산 목표는 200만 대이며 이 중 3분의 2를 수출할 계획”이라고 밝힌다.중국 항저우 장간(江干)경제단지에 자리 잡은 시지오티스에 가면 높이 65m에 달하는 타워가 있다. 이 탑은 엘리베이터를 테스트하는 설비다. 시지오티스는 엘리베이터 업체다. 이 회사는 2008년에 51억 위안(약 9000억 원)의 매출을 올려 저장성에선 ‘세금을 많이 내는 업체’로 선정됐다. 가내공업으로 시작한 시지가 어떻게 저장성 굴지의 기업으로 컸을까.시지그룹의 창업자인 왕쉬푸 회장은 원래 공장 근로자였다. 그는 10명을 데리고 1981년 엘리베이터 부품 업체를 만들었다. 당시 명칭은 항저우시지엘리베이터로 화유엔촌이라는 마을에 속한 기업이었다.처음엔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공장 면적이 400㎡에 불과할 정도로 협소했고 기계 설비가 부족해 주로 손으로 가공했다. 상하이엘리베이터 공장에서 정년퇴직한 근로자를 데려와 직원들에게 기술 지도를 시켰다.1989년부터 대학생들을 채용했다. 초창기 시지 기술은 상하이엘리베이터로부터 배워 온 것이다. 기술 수준이 낮아 처음에는 화물용, 그 다음엔 고객용 엘리베이터 부품을 만들었다. 1981년부터 1987년은 기초를 다지는 단계였고 1987년에 엘리베이터 생산 허가를 받았다. 왕쉬푸 회장이 생산, 디자인, 설계, 판매를 모두 담당했다.1987년부터 자동엘리베이터를 생산했고 1989년에 항저우백화점에 처음 납품했다. 1987년부터 1995년 사이에 백화점이 많이 생기면서 엘리베이터 수요가 늘었다. 오티스와 제휴하기 전에 이미 저장성에서 1위 엘리베이터 업체가 됐다.시지오티스의 진라이성 기술책임자(CTO)는 “왕 회장은 유럽 표준을 채택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 엘리베이터 생산 시 유럽 표준을 따랐고 이게 오티스와 제휴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오티스가 시지의 기술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합작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1991년 시지는 미국의 오티스와 합작법인으로 전환해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합작법인인 시지엘리베이터의 전체 직원은 약 2500명이다. 모기업인 시지UHC그룹은 전체 직원이 약 1만 명에 달하며 민영기업 가운데 경쟁력이 13위 정도에 이른다. 산하에 엘리베이터, 금융 등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합작회사의 성적을 보면 1997년에 1680대를 내수 시장에 팔았으나 작년엔 2만6000대를 중국에서 판매했다. 4000대는 외국에 수출했다. 중국 내 엘리베이터 시장점유율은 13%로 3위를 기록하고 있다.이 회사는 요즘 절전형 제품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기본적으로 30% 정도 전기를 절약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시지오티스의 자랑거리는 경영이나 생산 제품이 다른 오티스 합작법인과 비슷하지만 중국 내 시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생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알리바바는 세계 최대 기업 간(B2B) 전자상거래 업체다. 기업과 상인들을 위한 편리한 인터넷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회사의 목표로 삼고 있다.대학교 영어 강사이면서 번역일도 했던 마윈(馬雲) 알리바바그룹 회장은 1995년 초 인터넷에 처음으로 눈을 떴다. 미국 방문 중 우연히 인터넷을 접한 그는 인터넷에 중국 관련 내용이 거의 뜨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호기심에 자신의 번역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어 올렸다. 그 뒤 3시간 만에 4개의 e메일을 받고 앞으로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란 점을 확신했다.마 회장은 1999년 알리바바를 설립했다. 알리바바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이름이고 주문을 외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중소기업들의 판매난 등 어려움을 해결해 주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마 회장은 창업 전에 이미 중국 대외경제무역부의 초청을 받아 대외경제무역부 사이트와 중국 상품 교역시장 사이트, 중국 기술교역회 사이트를 만드는 등 이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2000년에는 소프트뱅크와 골드만삭스로부터 무려 2500만 달러를 융자받았다.올해 9월 10일로 창업 10주년을 맞은 알리바바는 전 세계 200여 곳의 600여만 개 기업과 상인들을 위한 인터넷 전자상거래 업체로 성장했다. 또한 전 세계 국제 상거래 및 무역 사이트 분야에서 인터넷 조회 수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경영학석사(MBA) 교육용 사례로 두 차례나 선정됐다.마 회장은 무협지를 좋아하고, 특히 무협 작가인 진용(金庸)의 작품을 즐겨 읽어 회의실 이름을 무협지에 나오는 지명으로 정하고 임직원이 지켜야 할 6개의 가치 기준도 ‘6개의 신검’이라고 부른다.양샤오제 알리바바 고객센터 주관은 “이들 가치 기준은 고객 제일, 변화무쌍, 협력, 신용, 전심전력, 정열이며 고용 승진을 평가할 때도 이를 토대로 평가한다”고 밝힌다. ‘온라인에서 장사를 할 때 상인들이 아무런 걱정이 없도록 만들겠다’는 마 회장의 꿈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