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시장의 변화

상품은 소비자의 구매 행동에 따라 고관여 상품과 저관여 상품으로 나눌 수 있다. 자동차처럼 몇 달을 꼼꼼히 체크한 후 구매하는 상품도 있지만, 습관적으로 구매하는 상품도 많다. 하찮은 상품을 구매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껌이나 사탕처럼 값싸고 하찮은 상품일수록 한 번 구매했던 상품을 습관적으로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왜냐하면 처음 출시한 상품을 반복적으로 구매할 뿐만 아니라 그 상품이 시장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발 주자가 시장을 뚫기 위해서는 이미 길들여진 입맛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음 행사나 파격적인 가격 인하 등을 통해 사용 기회를 확대해야만 가능하다.자동차는 획기적인 성능이나 디자인을 통해 경쟁 제품과의 차별화가 가능하지만 식품은 획기적인 품질 차별화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도 자연식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유를 통해 이러한 소비 행동을 더 자세히 관찰해 보자. 대형 마트에 가면 주부들이 우유를 구매할 때 판매대의 제일 뒤쪽에 전시되어 있는 우유를 꺼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우유일수록 빨리 팔기 위해 앞에 전시하기 때문이다.이처럼 소비자는 우유를 선택할 때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브랜드가 가장 중요하고 다음으로 신선도, 가격, 사은품 등이 구매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습관적으로 지난주에 구입한 브랜드 우유를 반복적으로 구매한다. 하지만 일부 소비자는 브랜드 차이보다 신선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유를 구입한다. 최근 모 우유 회사가 실시하는 제조일자 표기 광고의 경우, 이러한 신선도를 기준으로 우유를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브랜드를 기준으로 우유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브랜드 판매대에 가서 판매대의 가장 뒤쪽에 있는 우유를 구입할 것이다. 하지만 브랜드보다 우유의 신선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여러 우유 제품의 유통기한을 비교해 볼 것이다. 그리고 가격이 유사하다면 유통기한이 가장 긴 우유를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그러면 유통기한이 소비자가 우유를 구입하는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까. 테스트 해 본 결과 동일한 상황에서 유통기한이 하루씩 짧아지면 판매량은 상품별로 7~11% 가까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유통기한이 더 짧다면 7~11%의 고객은 기존 우유 대신 더 신선한 경쟁사의 우유를 구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이러한 소비 행동은 우유 회사마다 유통기한이 같다는 전제하의 결과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제조일자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유통기한이 가장 긴 우유가 더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우유 회사마다 유통기한을 다르게 책정하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긴 우유가 반드시 더 신선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유통기한이 15일인 우유와 유통기한이 10일인 우유는 생산일자는 동일하지만 유통기한이 15일인 우유가 더 신선한 우유로 인식될 수 있다.소비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기반으로 상품을 구매한다. 제조일자 표시는 이러한 소비 행동에 또 다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시장에서의 소비자 행동을 바꾸려는 시도다. 기존의 유통기한 이외에 제조일자 정보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경쟁 제품과 비교해 봐야 무엇이 더 신선한지 알 수 있는데, 다른 회사의 경우 제조일자를 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사가 제조일자를 표기하지 않는다면 소비자는 무엇이 더 먼저 생산되었는지 알 수 없다.광고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신선한지 소비자가 구분할 수 있도록 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간접적인 효과도 있는데, 그것은 제조일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 그 자체가 식품의 신뢰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식품은 믿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한 선택 기준이다. 숨기는 것보다 공개하는 것이 상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판매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업은 수많은 방법을 통해 경쟁하고 그것을 심판하는 것은 소비자다. 과연 우유 시장에서는 어떤 심판이 내려질지 궁금해진다.황경남·컨슈머초이스(thechoice.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