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업원·한경비즈니스 공동기획-③금난새 (주)유라시안 코퍼레이션 대표

모두가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을 때 그는 자립형 벤처 오케스트라를 설립했고 그로부터 10년 후 이제는 다른 오케스트라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마에스트로 금난새(62)는 어렵고 딱딱하다는 클래식 음악을 청중의 눈높이에 맞춘 신선한 프로젝트로 대중화하며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 받는 지휘자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던 오케스트라를 기업으로 일궈내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가 지휘하는 유라시안 오케스트라는 국내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연 100회 공연의 신화를 써냈다. 타성을 부정하며 늘 창의적인 뭔가를 추구하는 지휘자이자 경영인인 금난새는 청중과 교류할 수 있는 곳이라면 산업 현장, 학교, 군부대, 도서벽지까지 찾아 나선다.현실에 안주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음악계는 제도권의 지원을 받는 것에 인이 박인 것이 현실입니다. 서울시향은 연간 150억 원, KBS시향은 100억 원가량을 지원받아요. 이러한 지원금 수준으로 오케스트라의 카테고리가 나눠집니다. 그리고 단원들은 좋은 데 들어가면 안주합니다. 우리나라 음악계에는 도전 정신이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저는 거꾸로 독립적인 오케스트라를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1998년 창립한 유라시안 코퍼레이션은 정부의 지원 없이 성장했고 최근 4년간 매년 100회 이상의 연주를 해냈습니다.기존 관습을 부정한 새로운 아이디어일 겁니다. 자본은 없었지만 제도를 바꿨습니다. 연주를 많이 할수록 인센티브를 받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연주를 잘해야 하니까 당연히 생산성이 올라가더군요. 아주 간단합니다. 이는 일반 기업의 구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게 마련이죠. 이전에는 정부의 지원 없는 오케스트라를 상상하지 못했지만 유라시안 코퍼레이션이 정부 지원 없이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 않습니까.좋아하는 말은 ‘유니크(Unique:독특한)’입니다. 저는 보통 음악가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남과 다른 것이 다른 이를 거북하게 하거나 하면 안 됩니다. 부드럽게 남과 다른 생각을 하면서 이를 증명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 것이죠.KBS교향악단에서 수원시향으로 옮기자 연봉이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만일 수원시향에 더 많은 연봉을 요구했다면 받을 수 있었겠지만 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는 존경심을 얻을 수 있었죠.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위해 수원시향을 맡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이죠. 연봉을 그전보다 10배 더 받으면서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면 전 노예에 불과합니다. 이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내 주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기존 카테고리에 머무르는 금난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악가의 브랜드는 스스로의 브랜드가 돼야지 소속 브랜드에 묻혀 버리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내가 있기 때문에 그 조직의 브랜드가 높아지도록 해야 합니다.요즘 여러 오케스트라들이 제가 시도했던 것들을 많이 벤치마킹합니다. 일단 해설이 있는 연주와 브런치 콘서트, 그리고 연주장 개념의 파격 등입니다. 우리는 맨 처음 유라시안 오케스트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벤트 기획도 하게 됐습니다. 지난 2007년부터 시작한 ‘무주 페스티벌 & 아카데미’는 오케스트라 여럿이 모여 서로 배우는 캠프이자 페스티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주 챔버뮤직페스티벌’은 지난 2005년 이후 우리 사회의 여론 주도층이 세계 저명 음악가들과 실내악의 향기 속에서 예술과 우정을 나누는 신개념의 음악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새롭게 개척했습니다. 그래서 사명을 유라시안 코퍼레이션으로 변경하고 주식회사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이벤트를 통해 기존에 없던 청중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음악에서 청중은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입니다.사람들은 제 음악회에 오면 모두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이 행복해 합니다. 다음 곡목 소개를 한마디 하더라도 이런 점에서 청중의 니즈가 자꾸 생기는 것입니다. 연주회 각각의 상황에 따라 상대의 눈높이가 있습니다. 이를 생각하면서 프로그램을 짭니다. ‘청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게 있는데 어떻게 그들에게 전할까’ 고민합니다. 해설이라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음악은 판타지입니다. 그 안에 대화가 있고 작곡자의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작곡자들은 음악 속 어디에 보물이 숨겨져 있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연주자가 그것을 찾아 청중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지휘자 해석을 연주 때 단원들에게 설명하면 단원들도 이야기를 들으며 판타지에 빠지고 선명하게 작품 세계로 들어갑니다. 연주자도 청중도 이를 즐기고 기대하게 되는 것이지요.일본인은 식당을 시작할 때 붓글씨를 배운다고 합니다. 자기 직업에 대한 품격과 애정으로 메뉴판을 정성스레 쓰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6개월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일식당이 존재하게 됐다고 봅니다. 고객으로 하여금 그러한 음식과 서비스를 꼭 받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감동을 줘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청중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단원 모두의 일거수일투족이 하나의 작품이 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등장에서부터 세밀한 모든 것에 신경을 씁니다. 이것은 우리 사업 비밀인데…. (웃음)9월 동안에만 15회의 연주가 있습니다. 공연 주문이 많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입니까. 이번 연주를 잘하면 또 새로운 요청이 들어오고 매번 연주가 새로운 시작입니다.지난해 중랑교 부근 창동에서 오전 11시에 브런치 콘서트를 2번 했습니다. 개천가의 천막으로 된 800석 공연장이었죠. 티켓도 1만 원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연주해 보니 청중의 수준이 매우 높았습니다. 청중의 이야기나 반응의 크기를 보면 알 수 있죠. 2번의 공연 후 인터넷 등을 통해 수많은 재공연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그래서 공연을 주최했던 서울문화재단으로부터 올해 6번의 공연을 제안 받았습니다. 올해 1월 다시 그곳을 찾아 청중에게 “다시 공연으로 뵐 수 있도록 많은 요청을 해줘서 고맙다”, “청중의 수준은 천막과는 관계없다”고 말씀드리자 모두 큰 박수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올 연말 공연 때는 풀 오케스트라로 베토벤 심포니 9번으로 하고 싶다고 말하자 모두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청중과 애정을 나눌 수 있는 게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점점 더 큰 꿈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 공연 때는 “베토벤 심포니 9번을 여기서 공연할 수 있게 후원 기업을 구했다”고 말하자 모두 날아갈 듯 기뻐했습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입니다. ‘꿈은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12월에 창동에서 펼쳐질 베토벤 심포니 9번을 느끼고 싶다면 빨리 표를 사셔야 합니다.(웃음)전 개인 레슨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아카데미를 통해 후배를 양성하려고 합니다. 후배 양성은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돈이 되는 것이 비즈니스가 아니고 보람된 것이 비즈니스고, 계속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비즈니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희대 교수를 휴직하고 서울예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머리 좋은 학생만 뽑으면 안 되고 창의력을 가진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그리고 선진사회일수록 ‘사회가 나를 키웠구나’라는 마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수입이 적어도 각자의 꿈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시해야 합니다. 일례로 서울대 재학 시절 도서관에서 보고 싶었던 악보를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미국 재단에서 선물로 받은 악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악보가 찢어지거나 잃어버릴 수 있더라도 학생들에게 빌려줘야 한다고 제가 크게 항의한 적이 있습니다. 반대로 독일 유학 때 빈손으로 갔지만 보고 싶은 악보를 마음껏 빌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일 것입니다.최고 수준이라는 것보다 투자한다면 결실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클래식 음악이 필요하거나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스포츠에 투자하는 것만큼 클래식에도 한다면 더 빨리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눈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음악계도 변해야 합니다.1947년생. 70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74년 독일 베를린음대 유학. 77년 카라얀 국제지휘콩쿠르 입상. 80년 KBS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92년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98년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및 대표(현). 2006년 경기필하모닉 예술감독 취임. 경희대 음대 교수(현).정리= 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