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서 주목받는 그룹들

금융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인맥을 고르라면 아마도 ‘모피아(MOF:Ministry of Finance + Mafia)’ 라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모피아는 가장 좁게는 옛 재무부 이재국 및 그 후신인 재정경제원과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실(국) 출신 관료들을 지칭한다. 넓게는 재무부와 경제기획원, 두 부처를 통합한 재정경제원, 금융감독위원회, 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출신 관료들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옛 재무부 출신 관료를 가리킨다.물론 모피아라는 말에는 옛 재무부 출신 인사들이 정계 금융계 등으로 진출해 지나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비판도 담겨 있다. 하지만 1970~80년대 한국의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신입 시절부터 정교하게 컨트롤하는 것을 몸으로 익혀 온 그들의 경험은 현재도 매우 유용하다는 평이다.실제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 겸 경제수석, 강만수 경제특보 등 정부의 경제 ‘삼두마차’들이 모두 옛 재무부 관료 출신, 즉 모피아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마찬가지다.여기에 최근에는 ‘영 모피아’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전의 모피아들은 국·실장 이상 고위직을 마친 후 50대 들어 금융 기관장으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의 젊은 모피아들은 서기관 또는 부이사관 때 민간 부문, 특히 증권사 상무나 전무로 진출하는 게 대부분이다.김범석 더커자산운용 사장, 곽상용 삼성생명 전무, 방영민 삼성증권 전무와 전병조NH투자증권 전무 등이 대표적 모피아다. 또 서기관 출신인 이형승 IBK증권 사장과 이현승 SK증권 사장도 비슷한 예다.모피아의 뿌리는 옛 재무부 이재국장 출신인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모피아라는 말이 가장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건 이헌재 임창열 전 경제부총리 등의 2세대들이 활약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특히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모피아의 대부’로 꼽힌다.이 전 부총리는 1968년 행시에 합격해 재무부 이재국 사무관, 금융정책과장, 재정금융심의관 등을 거쳐 공무원 생활 10년 만인 1979년 민간으로 갔다. 이후 1998년 금감위원장으로 복귀해 ‘구조조정 전도사’로 이름을 날렸다. 은행 및 기업구조조정의 큰 틀을 짜고 ‘저승사자’로 불릴 만큼 단호하게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여세를 몰아 2000년 재정경제부 장관, 2004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등으로 승승장구했다.이때 탄생한 게 바로 ‘이헌재 사단’이다. 이헌재 사단이란 이 전 부총리가 1998년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으면서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일한 관료들과 각계 전문가 그룹, 그리고 서울대 법대와 경기고 인맥 등을 일컫는다. 이들은 당시 기업 구조조정 및 후속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결과 당시 이헌재 전 부총리가 사소한 인연을 들며 스스로를 ‘이헌재 사단 중 하나’라고 강조하는 게 금융가에서 유행할 정도였다.하지만 2004년 이후 이헌재 전 부총리가 힘을 잃으며 전과는 반대로 ‘이헌재 사단이 아님’을 강조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현재도 금융인들은 ‘이헌재 사단’의 일원으로 ‘공식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꺼리는 편이다.김석동 농협경제연구소 소장, 이성규 하나금융지주 부사장, 서근우 전 하나금융지주 부사장, 진동수 금융위원장 등은 이헌재 사단의 주요 멤버로 거론된다. 특히 외환위기 당시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낸 이성규 부사장은 지난 9월 3일 시중은행 중심의 부실채권 처리 기관인 민간 배드뱅크의 첫 사장으로 발탁됐다.또 세간에서 모피아는 아니지만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도 이헌재 사단의 멤버로 꼽힌다. 황 회장은 2004년 이 전 부총리가 재경부 장관이던 시절 직접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발탁했다.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헌재 사단으로까지는 분류되지 않지만 2004년 필리핀의 아시아개발은행 이사로 재직 중이던 그를 금융감독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이 이 전 부총리였다. 특히 그는 이 전 부총리를 이은 ‘제3대 모피아 대부’로 거론되고 있다.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금융권에서 전문성을 무기로 조용히 세를 넓힌 인맥이 또 있다. 바로 현재는 도이체방크에 합병된 미국계 투자은행 뱅커스트러스트(BTC) 출신들이다. ‘파생 상품 분야의 사관학교’로 불렸던 이곳은 한때 100여 명에 달하는 한국지사를 꾸렸었다.BTC가 한국에 사무실을 연 건 지난 1974년이다. 특히 이건삼 전 대표가 1984년 제2대 서울지점장에 취임한 후 1997년까지 조직을 이끌며 본격적인 BTC 전성시대를 열었다. 그는 능력 있는 신예들을 대거 발탁해 치열한 내부 경쟁을 유도했다. 또 젊은 직원들에게 멘토를 붙여 도제식으로 업무를 배우도록 했다. 지금 BTC 출신들이 국내 금융계에서 쟁쟁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원동력이다.최근 주목받는 BTC 출신 인물은 임기영 대우증권 사장이다. 임 사장은 1982년부터 약 10년간 BTC에서 기업금융 분야를 담당했다.임 사장과 함께 IBK증권에서 대우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박동영 전무 역시 BTC에서 활약했던 투자 전문가며 IB부문을 맡고 있는 이건표 대우증권 전무도 BTC 인사다.이 외에도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 아시아 지역 대표 홍기명 회장도 BTC 출신이며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강정원 KB국민은행장도 한때 BTC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또 박상용 골드만삭스 한국 증권부문 대표, 트러스톤자산운용 싱가포르 현지법인의 대표를 맡고 있는 권태길 대표, 신동기 노무라증권 전무, 박장호 씨티글로벌마켓증권 공동대표, 손석우 한국투자증권 투자금융 본부장 등이 있다.지금은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로버트 팰런 전 외환은행장, 이원기 전 KB자산운용 사장 등도 BTC 출신이다.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