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국무총리 지명은 많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했다. 평소 진보·개혁적 목소리를 내 온 정 전 총장의 ‘컬러’가 감세와 규제 완화를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 노선과는 경제철학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카고학파의 몰락과 케인스주의의 부상이라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경제 흐름에 비춰보면 ‘개혁적 케인스주의자’를 자처해 온 정 전 총장의 중용은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서강학파로 분류되면서도 정 전 총장의 정치적 멘토 역할을 해 온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은 “정 전 총장은 기본적으로 케인스주의자”라며 “현 정부의 정부 지출 확대 기조와 맞아떨어져 정책적으로 이질감이 적다”고 말하기도 했다. 1기 때와 판이하게 중도·실용을 전면에 내걸고 서민까지 아우르는 ‘MB노믹스 2.0’까지 나온 마당에 이런 간극은 더 좁혀질 수밖에 없다.많은 경제학자들은 한국에 ‘경제학파’가 존재하느냐에 대해 대부분 회의적이다. 흔히 등장하는 ‘서강학파’나 ‘학현학파’, ‘조순학파’ 등은 이론적 신념과 철학을 기반으로 한 집단이라기보다 친소 관계로 형성된 친목 집단에 가깝다는 냉혹한 평가다. 인맥 관계로 나누다 보니 인적 구성이 겹치거나 어느 한쪽에 넣기가 모호한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학파 구분이 전혀 설명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한국 경제의 현실 진단과 비전에 대한 논의의 일정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거칠기는 하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도식화가 가능하다. 압축 성장을 추구한 서강학파는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경제성장을 주도했다. 이들은 1997년 과거의 모순이 누적돼 터진 외환위기와 함께 역사의 중심 무대에서 밀려났다. 압축 성장의 폐해를 비판하며 균형 발전과 분배에 초점을 맞춘 학현학파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중첩된 위기와 혼선 속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이 막을 내리면서 이들의 이상도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이제 글로벌 금융 위기의 극복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을 중시하는 ‘한국의 케인스주의’ 조순학파가 새로운 주류로 등장하는 모양새다.역사를 보면 한 시대의 에너지가 특정한 시기, 특정한 장소에 응축돼 나타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1960년대 서강대 경제학과가 바로 그런 경우다. 1960년 문을 연 서강대학은 소수정예주의를 추구하며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스카우트했다. 이렇게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30~40대 초반의 남덕우 전 국무총리, 이승윤 김만제 전 부총리가 한곳에 모였다. 미국 유학 1세대인 이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공부한 학자가 주류이던 경제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1965년 미국 박사학위를 가진 경제학과 교수는 서강대 3명, 연세대 2명이 전부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들 미국파 3인방을 발탁해 중용했다.서강학파가 전성기를 누리던 1980년대 학현학파와 조순학파는 비주류에 머물렀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단에서 쫓겨난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는 제자들의 도움으로 광화문에 자신의 아호를 딴 ‘학현연구실’을 열었고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고전연구회’를 만들어 경제학 원전 읽기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몇 차례의 부침을 통해 이들은 서로 자리를 맞바꿨다. 최근 조순학파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고 학현학파는 권토중래를 꿈꾸며, 서강학파는 ‘한국의 시카고학파’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경제 인맥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훨씬 단순해진다. 이명박 정부에서 가장 각광을 받는 경제 인맥은 고려대 경영대 인맥이다. 최근 청와대 개편에서 정책실장과 경제수석비서관과 정책실장을 겸임하게 된 윤진식 실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고려대 총장을 지낸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도 빼놓을 수 없다.고려대 경영대는 그룹 오너 2~3세 출신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금융계에서는 옛 재무부 출신을 뜻하는 ‘모피아’ 인맥이 막강하다. ‘이헌재 사단’을 이끌고 ‘구조조정의 전도사’로 이름을 날린 이헌재 전 부총리가 모피아의 대부로 불린다.지금은 도이체방크에 합병된 미국계 투자은행 뱅커스트러스트 출신들도 최근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