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역설 ④
이 주의 명작· 마셜 맥루언, ‘미디어의 이해’최근 ‘미디어법’으로 홍역을 앓았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미디어(매체)는 디지털로의 이행으로 새롭고도 거대한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힘입어 매체는 ‘개념의 해체’ 시대라고 할 정도로 다양하게 사용된다.흔히 우리는 매체라고 하면 거의 자동으로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와 같은 대중매체를 연상하곤 한다. 그런데 전통적이고 통상적인 개념 규정과 달리 매체를 폭넓게 이해하기도 한다. 마셜 맥루언은 인간의 힘과 감각 및 육체적 기능을 기술적으로 확산, 보완해 주는 모든 것을 매체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맥루언은 1964년에 쓴 ‘미디어의 이해’에서 라디오 TV 사진 영화 광고 등 전통적인 의미의 매체뿐만 아니라 철도 주택 돈 시계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 무기 자동화 게임 전신 타자기 등 도구나 수단을 포함하고 있다. 즉, 이 책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매개하는 모든 것은 미디어로 이해한다. 맥루언은 특히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고 주장한다. 피부의 확장으로서의 의복은 열 제어 메커니즘으로서뿐만 아니라 자아를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장 보들리야르가 ‘소비의 사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옷은 자신의 위세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명품 브랜드 옷을 구매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차이 나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자아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대로 된다.’ ‘우리는 우리의 도구를 만든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우리의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맥루언은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면서 두 가지 혁명적인 기술의 발전, 즉 15세기 중반의 인쇄술 발명과 19세기 후반 이후 전기의 새로운 이용 방식 때문에 생겨난 인간의 변화를 진단한다. 인간이 도구를 만들었지만 그 도구를 이용하면서 새로운 인간의 문화를 창조해 낸다는 것이다.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맥루언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통해 기존의 미디어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시켰다. 즉, 미디어들이 인간의 감각을 확장해 왔다는 새로운 미디어 개념을 정립했다. 이 명제의 의미는 단순히 미디어가 메시지, 즉 내용을 전달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흔히 특정 물질을 어떤 그릇에 담든지 간에 그 물질은 변함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미디어도 마찬가지였다. 미디어는 형식적인 도구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맥루언은 이런 통념을 전면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어두운 방에 앉아서 말하면, 말은 갑자기 새로운 의미와 함께 전과는 다른 결을 가지게 된다.엄밀한 의미에서 TV에서 방영되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어두운 극장에서 보는 것과 감동이 다를 수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느냐에 따라 메시지도 달라지고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커뮤니케이이션의 내용(메시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을 실어 나르는데 이용되는 미디어와 도구의 속성에 의해 사회가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맥루언의 명제는 미디어가 메시지인 ‘내용’을 전달하는 도구라는 기존의 개념과 전혀 다르게 정의한 것이다. 즉, 같은 내용이라도 신문으로 보도하느냐, 방송으로 보도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감각이 달리 반응하면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면, 지난해 우리 사회를 뒤흔들게 한 광우병 보도에서 경험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광우병 보도에서 만약 ‘PD수첩’의 보도가 없었다면 결코 광우병 이슈가 사회를 뒤흔들 수 없었을 것이다. 각각의 수송 형태는 무언가를 운반할 뿐만 아니라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메시지 이 모두의 위치와 형태를 바꾼다.맥루언은 매체에 따라 내용의 의미조차 변한다고 말한다. 미디어가 내용을 전달하는 도구 역할을 하되 그 도구가 어떤 도구냐에 따라 달리 전달되고 인간의 감각기관도 미디어에 따라 달리 확장된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춘향전’을 볼 때 소설책으로 읽을 때와 영화나 연극으로 볼 때, 뮤지컬이나 마당극으로 볼 때 각기 다르게 다가온다. 영화 춘향전은 춘향이의 절개에 성적 도취적 색깔 등 에로적 성격이 크게 부각될 것이다. 뮤지컬 춘향전은 커다란 무대와 극적인 사건을 강조하는 뮤지컬의 특성 때문에 이도령과 춘향이의 사랑보다 변학도와 춘향이의 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사랑이나 의리보다 남녀 간의 삼각관계가 주요 테마로 부각될 것이다. 또 마당극이나 판소리 등으로 전달할 때에는 또 다른 의미가 부각되면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감동이 다를 것이다.“모든 로마인들은 노예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노예와 노예들의 심리가 고대 이탈리아에 흘러 넘쳤고 로마인은 부지불식간이긴 하지만 내면적으로 노예가 되어버렸다. 언제나 노예들의 분위기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무의식을 통해 노예의 심리에 젖어든 것이다.”맥루언에 따르면 문자와 인쇄술이 시각 중심적인 인간을 형성했다면, 현대의 전기 전파 미디어들은 인간 감각의 배치와 강도를 변화시켜 촉각적인 인간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생활문화뿐만 아니라 의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미디어에 의해 확장된 감각들이 바로 개인들의 의식과 경험을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맥루언은 칼 융의 ‘분석심리학 논고’를 인용, 비유하는데 “노예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노예근성에 젖게 된다”고 강조한다. 요즘에는 책을 멀리하고 전자 매체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인간은 수많은 욕망에 자극받는 ‘촉각의 노예’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인쇄는 16세기에 개인주의와 민족주의를 만들어냈다.맥루언은 또 다른 책인 ‘구텐베르크 은하계’에서 인쇄술의 개발과 확산을 구술 사회에서 문자 사회로의 변화라는 장기적인 과정의 일환으로 파악하면서, 그러한 변화가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 미친 표준화·획일화·개인주의화와 같은 요소들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속도의 증가는 일부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중심-주변’ 구조를 만들어 낸다. 철도는 그것이 등장하기 전까지 있던 각종 기능들의 규모를 가속화하고 확대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도시들과 노동, 여가 생활을 창출해 냈다.철도라는 매체는 단순히 화물이나 승객을 운반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철도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도시들(베드타운, 관광도시, 탄광도시 등)과 노동, 여가를 창출했다. 철도가 단순히 사람이나 사물을 수송하는 기능을 하지만 나아가 도시인들의 전원생활을 가능하게 했고 여가 생활을 촉진한 것이다.이 같은 현상은 지하철 9호선의 개통에서 알 수 있다. 9호선의 개통은 단순히 지하철의 개통에 머무르지 않고 강남 학군, 강남 여가 문화 등의 공유로 사회 문화적 변화를 낳고 있다.다른 한편으로 맥루언은 기업체의 경우 자신이 관여하고 있는 일을 미디어의 성격으로 잘 파악한다면 비전 있는 기업으로 운영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IBM은 자신들이 사무 장비나 기기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명확한 비전 속에서 운영해 나갈 수 있었다.반면에 제너럴일렉트릭(GE)은 전구와 전기 시설을 판매해 상당한 이윤을 올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미국전신전화회사 AT&T와 마찬가지로 정보를 이동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맥루언이 이 책을 출간한 시점이 1964년이었는데 그 후 GE의 성공은 아마도 맥루언의 이 조언을 귀담아 들은 덕분이 아니었을까.이 책은 단순한 미디어 관련 책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문명 비평에 가깝다.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