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학장, ‘대학 지배 구조’에 쓴소리

“경영대 교수는 학자가 아니라 경영자다. 경영대학과 대학본부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다.”지난 8월 20일 강원도 용평리조트에서 열린 경영학 교육 인증 심포지엄에서 전국 대학의 경영학과 학장 및 교수들은 이 말에 모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했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이 경영학 인증식 및 인증 기준 연구 발표에 앞서 ‘경영대학의 지배 구조’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장 학장은 경영학은 특성상 타 학문보다 수행해야 할 역할이 많고 국제적으로 더 치열한 경쟁적 환경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학은 학부·MBA·산학협동에서 사회과학·응용학문·실용학문이 얽혀 있고 각 과정별로 교육 목적이 서로 다르게 수행되고 있다.또한 경쟁적 환경에서도 경영학 교수와 연구 시장, MBA 교육 시장은 가장 치열한 교육 시장으로 국내외 가리지 않고 통합된 경쟁 시장이라고 밝혔다. 장 학장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경영대학은 모두 1만1833개이고 아시아에만 5349개의 대학이 있다. 경영대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으로 1602개였고 한국은 240개였다.장 학장은 이렇게 경영대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대학별·학과별로 차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부와 대학본부의 지배 구조가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각 대학의 경영대들조차 여러 가지 규제가 교육부 규제인지 내부 규제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따라서 경영대학들은 우선 대학본부와의 소통을 통해 내부 규제부터 철폐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장 학장은 일단 경영대를 총괄 책임지고 있는 학장에 대해 “학장은 교수의 수장이 아닌 교육행정의 수장으로 학문을 이해하고 지원할 수 있는 경영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경영대학에 전문 학장이 없어 모두 아마추어로 시작해 경영대 경영을 배워가며 학장직을 수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이러한 경영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학자로서 우수한 사람이 학장직에 올라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따라서 학장을 서열대로 돌아가며 맡는 현 상황을 개혁하기 위해 일부 대학에서는 직선제를 폐지하거나 외국에서 학장을 모시기도 한다. 경영에 아마추어인 학장은 이제 치열한 경쟁에 놓인 경영대의 발전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따라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장 학장은 ‘딘스 마켓’, 즉 우수한 경영대학장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 시장이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학장에 대한 평가와 보상 체계를 마련하고 지금의 2년 임기를 늘려야 한다고 진단했다.한편 행정 직원에 대한 아마추어리즘도 지적됐다. 일반적으로 대학의 행정 직원은 순환직이기 때문에 전문성과 연속성이 결여된다는 것이다. 이제 교수 1명당 학생 수 개념이 아니라 행정 직원 1명당 학생 수를 평가해야 할 시점으로 교육 서비스의 품질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국내 경영대와 선진국 경영대를 단적으로 비교할 때 강의의 수준은 별반 차이가 없지만 교육 서비스의 품질은 큰 차이가 있다. 장 학장은 “우리 학생들이 미국 와튼스쿨에서 1주일 교육받고 온 후 그 학교의 여러 배려와 서비스에 감동했고, 우리 대학과 차이가 크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국내 대학의 행정 서비스의 품질 향상에 신경 쓸 것을 촉구했다.이와 함께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도 국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행정이 아직 이를 따르지 못해 국제 교류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행정 서비스에서 영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부족해 외국인 학생 및 교수에 대한 행정 서비스와 해외 대학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장 학장은 MBA 채용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국내 현실을 통탄했다. 그는 “우리는 현재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MBA를 하고 있지 않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먼저 우리 경영대들이 지배 구조를 개선하고 발전을 도모해 국내 기업들이 국내 MBA 출신을 채용하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내 기업이 해외 MBA 출신만 선호할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국내 MBA 출신을 1년에 1명씩만 채용해 달라고 요청했다.경영대협의회 차원에서 국내 선도 경영대가 앞장서서 아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경영대를 위해 경험을 공유하자는 분위기가 이번 회의를 통해 형성됐다.이어진 한국경영교육인증원의 통합 기준 연구 발표에서 연구팀 소속 신만수 고려대 교수는 경영학 석·박사의 커리큘럼이 각각 차별화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경영학 석사의 커리큘럼이 박사과정에서도 80~90% 유지돼 박사학위를 받은 학생이 경영학 교육을 충분하게 받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이와 관련해 현재 학부 경영학뿐만 아니라 경영대학원, 경영전문대학원(MBA), 유사 경영대학원, 글로벌 MBA 등이 구별없이 난립하고 있어 최소한의 경영 교육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인증 기준의 틀이 보다 분명해져야 한다고 신 교수는 강조했다.따라서 한국경영교육인증원은 소속이 어떻든 전공명·학위명에 경영이 들어간다면 이 과정은 모두 인증을 신청해야 하고 경영학의 인접 학문인 무역통상·관광경영 등도 포괄적으로 인증 대상이라고 밝혔다.경영학 인증을 위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비전·미션 및 목표 △학습 성과 및 평가 △교육과정과 수업(전공 교과과정, 인턴십 프로그램, 수업 분반, 강의 계획서, 새로운 강의 기법 등) △학생(학생 지원 및 장학금, 취업 및 졸업생 관리 등) △교수(인원, 자격, 최소 연구 기준 등) △시설 및 교육 환경(연구 공간, 행정 지원 및 보조) △교육 개선 사항 등이다.국내 경영대학은 우수한 인재를 교육시킬 환경이 충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경영대 내부에서 짚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여러 가지 규제로 인한 제약 조건 때문에 대학 스스로 안주해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재원이다. 재원만 확충되면 국내 10개 대학 정도는 세계적 대학이 될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경영대학은 경영학의 특성상 독립적으로 시장 상황에 맞게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대학 내부의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장 학장은 “오늘 전국 경영대가 모여 이러한 대학 내 문제에 공감하고 뜻을 모았다는 데 의의가 있지만, 본부와 재단이 왜곡된 지배 구조를 수용하고 함께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정리했다. 이러한 경영대의 노력이 성공할 때 하나의 모범 사례로서 획일주의에서 벗어나 공대나 인문대 등도 각자의 특성에 맞게 발전해 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평창=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