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우 디아지오코리아 사장

“주류 시장에서 한국은 테스트 마켓이 돼 버린 지 오래입니다. 전 세계 모든 주류 업체들이 주력 시장에서 한국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소비량도 그렇지만 트렌드가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한국형 위스키 윈저(17년산)를 지난 5월부터 중국과 일본에 수출하고 있는데 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디아지오코리아 김종우 대표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차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라 소비 위축으로 전반적인 경영 지표는 악화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으로 볼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앞서 설명한 윈저 수출이 대표적인 예다. 국내 최대 판매량을 자랑하는 윈저는 한국인의 취향에 맞춰 디아지오사가 개발한 한국형 위스키의 대표작이다. 특정 국가를 겨냥해 별도로 위스키를 개발한 사례는 전 세계를 통틀어 윈저가 유일하다.이 때문에 디아지오사가 윈저에 들이는 공은 상당하다. 지난 5월 리뉴얼 작업을 통해 12, 17년산의 맛을 보증하는 마스터 블렌더를 둔 것이 이를 입증한다. 마스터 블렌더는 다양한 원액을 적절히 사용해 최상의 맛을 위스키를 배합하는 기술자로 윈저의 마스터 블렌더인 더글러스 머레이는 디아지오 그룹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윈저는 처음부터 철저히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만든 제품이었습니다. 한국은 테스트 마켓인 셈이었죠. 일반적으로 유럽과 미국 사람들은 훈연(燻煙)향이 짙은 스카치위스키를 좋아하는데 아시아 사람들은 목 넘김이 편한 위스키들을 선호하는 것이 차이입니다.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마셔봤을 정도로 수년째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윈저의 매력은 바로 이 부드러움에 있습니다.”윈저는 전 세계 생산되는 17년산 스카치위스키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이 판매되고 있다. 17년 이상 슈퍼 프리미엄급에서도 단일 판매량으로는 지난 7년간 1위다. 디아지오 회계연도상 2009년(2008년 7월~2009년 6월) 판매량만 36만9013상자(9리터 기준)다. 500ml 병으로 환산하면 1년에 664만2234병이 판매된다.다소 껄끄러웠던 정부와의 관계도 개선될 조짐이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지난해 12월 관세청으로부터 단일 추징 세액으로는 최대인 2064억 원의 세금을 부과 받았으나 최근 ‘재조사’ 결정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관세청이 과세전적부심위원회까지 열어 기존 조사를 정면으로 뒤집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재조사 여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지만 자칫 국제 분쟁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었던 것이 한 고비를 넘겼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최근 위스키 업계는 환율 상승과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매출이 급감하는 등 이중, 삼중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전반적인 경영 환경이 어려워졌다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도 매출이 약 6% 감소했으니까요. 그러나 시장점유율은 다소 늘어났습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 회사 위스키의 시장점유율은 43.4%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나 성장했습니다.”정작 김 사장의 고민은 따로 있다. 글로벌 불황으로 저도주가 강세를 띠고 있으며 일명 ‘소맥(소주와 맥주를 혼합) 폭탄주’가 인기를 끌면서 새로운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김 사장은 이런 난국을 저도수 알코올성 음료 RTD(Ready To Drink)로 돌파할 생각이다. RTD는 위스키, 보드카 등에 커피나 차, 야채 음료, 과일 음료 등을 혼합해 만든 저알코올 혼합 음료다. 최근 디아지오코리아는 스미노프 아이스와 뮬 등 RTD를 새롭게 선보였다. 스미노프 아이스는 보드카인 스미노프(No.21)에 레몬 향을 가미, 맥주와 비슷한 도수(4.5~5%)에 청량감을 높인 게 특징이다. 스미노프는 단일 주류 판매량으로 우리나라 소주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보드카 종류의 술이다.김 대표는 “저도화, 다양화로 예상되는 주류 소비문화를 선도하기 위해 신제품을 대거 출시할 계획이다. 이들을 통해 기존 시장에서의 경쟁보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할 생각”이라며 “RTD는 새로운 시장 개척, 기네스는 아직 걸음마 단계인 국내 흑맥주 시장의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자신했다. 윈저 시리즈의 최고급 제품인 ‘윈저XR’를 9월 초 출시해 국내는 물론 아시아 주요 면세점에 배치한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조니워커 블루가 조니워커 시리즈를 대표하듯 윈저XR를 윈저의 간판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본고장 스코틀랜드에서 숙성된 원액(몰트)으로 만드는 윈저XR는 조니워커 블루처럼 별도의 연산 표시가 없다.그는 저도주뿐만 아니라 보드카의 강세도 예상했다.“이미 강남, 홍대 등 젊은 층들에게 보드카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금은 칵테일 혼합용으로 많이 애용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국내 주류 시장의 한 축으로까지 성장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스미노프는 그런 면에서 볼 때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큰 브랜드죠.”이천 공장 생산량도 늘릴 계획이다. 현재 이천 공장에서는 일본으로 수출되는 럼, 보드카 등을 생산하고 있다. 그는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시장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천 공장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다.“한국에서 아예 위스키를 생산해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경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별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이 때문에 윈저 등 프리미엄 위스키 생산보다 일본과 중국에서 인기를 끌 신제품 개발, 생산 등에 포커스를 맞출 생각입니다.”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라 FTA 효과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결론부터 말하면 위스키 부문의 영향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위스키에서 관세가 차지하는 부분은 10%에 불과합니다. 이것도 단계적으로 철폐한다고 하니 가격 인하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대신 와인은 당장 관세가 철폐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됩니다. 칠레 와인이 FTA로 수혜를 본 만큼 구대륙 와인도 이번 한·EU FTA 체결에 기대를 걸만 하다고 봅니다.”최근 위스키 시장의 각축전으로 부상하고 있는 싱글 몰트위스키 시장 공략에도 적극 대응한다는 내부 계획을 수립했다. 현재 디아지오는 ‘싱글톤’이라는 싱글 몰트위스키를 판매하고 있다. 앞으로는 신제품 개발보다 스코틀랜드에서 이미 시판 중인 제품을 국내로 들여와 판매에 나설 계획이며 조니워커 그린 라벨 출시도 검토하고 있다.국내 주류 업체 인수·합병(M&A)에 나설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한 기업을 인수한다는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면서 “구체적으로 조사를 벌이지는 않고 있지만 늘 관심을 갖고 한국 업체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복분자 등 한국 전통주는 세계 그 어느 곳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주류”라면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주류 업체에 대한 투자 매력이 크다”고 설명했다.1961년생. 1980년 연세대 경영학과 입학. 84년 미국 뉴욕대 졸업. 86년 미시간대 MBA 졸업. 86년 씨티은행 입사. 2005년 필립모리스 대만지부 대표. 2006년 디아지오코리아 대표이사(현). 디아지오 아시아퍼시픽 영업총괄 사장(현).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