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에세이

잘나가는 세일즈맨이었던 김모(44) 씨는 본인의 영업 능력이 탁월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세상살이에 자신 있던 그는 우연히 보험 영업을 했던 지인으로부터 496㎡(150평) 규모의 호프집을 운영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월세가 비싸서 부담이 됐지만 나름대로 시설도 좋았고 권리금·보증금·시설비 등은 벌어서 달라는 말만 믿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한편에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대형 점포를 운영한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점포를 운영해 보니 규모가 커서 시설을 조금만 손을 대도 비용이 적지 않게 들었다. 또 넓은 매장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로 필요한 인건비도 만만치 않았다.마케팅을 통해 고객을 끌어 모아도 워낙 매장이 넓어 좀처럼 친근하고 푸근하고 장사가 잘되는 가게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어려웠다. 게다가 월세까지 비싸 삼중고를 앓았다. 결국 6개월간 버티다 손을 든 그가 손해 본 금액은 운영자금 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규모가 큰 점포라 1억 원이 넘었다.김 씨는 아는 사람이 거의 공짜로 가게를 빌려주는 것이라고 해서 일단 손익분기점만 넘어서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던 게 잘못이라는 걸 깨달았다. 규모가 클수록 정상 궤도에 올리기까지 갈 길이 너무 멀고 모든 게 투자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말했다.사업 경험이 없던 나모 씨는 장사 베테랑인 친구의 투자 제휴를 받아 2층 규모 대형 음식점 운영에 동참하게 됐다. 고깃집이었는데 영업이 잘되면 한 달에 2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솔깃했다. 총투자비는 8억 원. 그중 나 씨가 투자한 금액은 3억 원이었다.그런데 나 씨가 사업을 시작한 후 곧바로 여러 가지 식품 안전이 이슈가 되면서 매출이 급락했다. ‘고정 경비 부담이 무서운 줄 몰랐다’고 말하는 나 씨는 매달 엄청난 적자가 나는 걸 견디지 못해 1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최근 들어 기업형 창업이 늘어나면서 점포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사업 경험이 없는 초보자들이 이런 대형점 운영에 뛰어드는 건 주의해야 한다. 특히 주변에 믿을 수 있는 경험자만 믿고 투자하는 경우나 점포 양도 조건이 좋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대형 점포 운영을 덥석 결정해 버리는 경우는 매우 위험하다.많은 사람들이 창업할 때 얼마를 벌 수 있느냐에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하면 투자비 회수나 감가상각비는 계산에 넣지 않고 덜컥 계약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속 있는 창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게 효율성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투자 대비 수익성은 물론 투자비 회수, 감가상각, 운영 가능한 연한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음식점은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가 대부분 정해져 있다. 규모가 큰 점포는 성공할 경우 한계 매출액이 높기 때문에 큰돈을 벌 가능성이 있지만 손익분기점이 높아 적자를 보지 않는 수준까지 매출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앞서 언급한 김 씨나 나 씨와 달리 지난해 12월부터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서 테이크아웃 도시락 전문점을 운영하는 신승원(39·한솥도시락 종암점, www.hansot.co. kr) 씨는 오랫동안 편의점을 운영하다가 폐점하고 업종을 전환했지만 33㎡(10평) 규모의 작은 점포를 선택해 재기에 성공한 케이스다.편의점은 매출이 높았지만 주변에 대형 마트가 들어서 발전 가능성이 없어 보여 폐점을 결정했던 그의 점포 규모는 33㎡. 주방 13㎡(4평), 홀과 계산대 쪽은 20㎡(6평)다. 매장에는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는 공간처럼 서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두었다. 7명 정도 수용이 가능한데 가져가서 먹기 어려운 고객들이 자주 이용한다고.이곳의 영업시간은 아침 7시부터 밤 9시. 장사 준비에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신 씨는 매장 운영을 전담할 수 있는 정직원 1명을 따로 채용하고 나머지 인력은 아르바이트 2명을 활용하기 때문에 인건비에 대한 부담이 없다.하루 매출은 90만 원 선. 점포 구입비 3600만 원과 개설비용 5400만 원이 들었는데 순수익은 700만 원대가 넘어선다.협성대학교 앞에서 동일한 업종을 운영하는 김대환(한솥도시락 협성대점) 씨도 놀라운 기록을 갖고 있다. 1일 최고 매출 330만 원대를 기록한 적이 있는 것. 학교를 다니면서 직장생활을 병행했던 김 씨는 일찌감치 창업에 뜻을 두고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창업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간접적으로 사업을 배우는 기회를 가졌다.초보 창업자인 그는 얼마를 버느냐보다 얼마를 투자해 얼마를 버느냐, 즉 투자 수익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작은 점포에서 크게 벌자는 목표를 세웠다.김 씨는 협성대학교와 장안대학교는 물론 중고등학교, 인근 기업체들까지 적극 공략, 1일 평균 110만 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도시락 전문점의 경우 단체 주문이 많아 뜻밖의 무더기 주문이 들어오면 작은 점포라도 놀라운 매출을 기록하는 날들이 있다’는 게 김 씨의 말. 실제로 1일 매출 300만 원대는 330㎡(100평) 규모 점포에서도 쉽게 올리기 힘든 매출이다. 그러나 작은 점포라도 판매 방식을 다양화하면 놀라운 기록을 세울 수 있다. 김 씨의 사례가 그것이다.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삼각김밥, 덮밥 전문점인 ‘오니기리’와 ‘이규동’의 가맹점 중에는 평균 규모가 26㎡(8평)에서 33㎡ 내외인데도 불구하고 1일 100만 원대 매출을 거뜬히 넘어서는 점포가 많다. 특히 선릉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매출이 늘어나 오픈 직후 1일 80만 원대로 시작했던 점포가 최근에는 130만 원대까지 올랐다.외식업에서 작은 점포는 테이블 숫자가 한계 매출을 좌우한다. 즉, 규모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테이블 수가 정해져 있는데 테이블 4~6개로는 아무리 해도 벌 수 있는 돈이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판매 채널을 다양화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작은 점포에서도 매장 판매는 기본이고 테이크아웃이나 배달, 단체 주문, 케이터링 등을 잘 활용하면 큰 점포 부럽지 않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서울의 한 주택 밀집가에서 독립점으로 김밥 전문점을 운영했던 양모 씨는 33㎡가 조금 넘는 점포에서 월 1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양 씨의 매출 비결은 상권 특성상 하루 종일 고객들이 이어지는 입지여서 보통 점심과 저녁 시간에만 고객이 몰리는 다른 음식점과 달리 끊임없이 고객들이 매장에 들어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또 인근의 단체 수요를 잘 개발해 김밥을 단체 주문으로 많이 남품했고, 배달을 결합해 다양한 분식류를 추가했다. 양 씨는 그렇게 작은 점포에서 높은 매출을 올리자면 점포는 공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하지만 작은 점포라고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33㎡ 안팎의 점포는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하고 왠지 큰 점포에 비해 운영이 쉬워 보여 사업 초보자, 특히 경험 없는 주부들이 준비 없이 겉만 보고 뛰어들었다가 실패하는 사례도 많다.대표적인 예가 생과일 아이스크림 전문점이다. 2000년대 초 전국적으로 열풍이 불어 가장 인기 있는 창업 아이템이었지만 지금까지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사례는 거의 없다. 매장 내 위생 등의 문제도 있었지만 기호성 식품으로 시장 규모가 협소한 동네 상권으로 입점한 점포가 많았다는 게 가장 큰 실패 요인이었다. 게다가 계절적인 매출 등락 폭이 컸고 테이크아웃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데다 매장 매출에만 기댄 점포가 많았다. 배달이나 테이크아웃 없이 매장 판매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판매 단가가 낮은데 지나치게 비싼 소형 점포에 입점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케이스는 적당한 수준의 고정비가 들어가는 구조에서 매장 판매, 테이크아웃, 배달, 단체 주문 등을 모두 흡수하는 것이다. 그러면 작은 점포라고 하더라도 대형점 못지않은 매출에 도전해 볼 수 있다. 이경희·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 ksbi@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