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역설 ③

이 주의 명작노자, ‘도덕경’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리더의 공통점은 추종자가 있다는 것이다. 추종자들이 평전을 만든다는 소식이 들리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리더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하겠다.공자는 제자가 있어 그의 사상이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인 자하가 엮었다. 자하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공자의 어록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노자의 ‘도덕경’은 제자가 아닌 한 지방 관리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노자가 소를 타고 하남성 북서부 함곡관으로 들어서 세상과 떨어져 은둔의 길을 가려는데 이곳을 지키던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막아섰다. “선생님 어디로 가십니까? 진정 은둔하려 하십니까? 무슨 말씀이든 주시고 떠나가십시오. 언제 만나 뵙게 될지 모르는데 힘드시더라도 저를 위해 무슨 말씀인들 주시고 떠나가십시오.” “허허, 이런 변고가 있나. 나로서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데….”이때 노자는 윤희의 당부로 며칠 만에 5000자의 ‘도덕경’을 완성한다. 노자가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경계하는 ‘도덕경’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윤희와 같은 추종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자도 인간이기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상을 글로 남기고 싶었을 텐데 윤희가 스승의 마음을 알아챈 것은 아닐까. 도를 체득한 옛사람은 다듬어지지 않은 통나무처럼 소박하고, 흙탕물처럼 탁합니다.‘다듬어지지 않은 통나무처럼’은 도의 상징으로 자주 쓰이는 것으로 꾸밈이 없고 순박하고 진솔하고 분화되지 않은 전일(全一)의 상태를 의미한다. 흙탕물처럼 탁하다는 의미는 고고하게 자기 혼자만의 결백성을 주장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감싸 안아 어쩔 수 없이 탁해지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물들거나 탁한 채 그대로 남아있는 것만은 아니다. 탁함을 다시 맑게 하고 다시 움직여 결국은 생동하게 함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리더는 흙탕물을 뒤집어쓰고도 능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사람일 것이다.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 하고 칭찬하는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가장 좋지 못한 것은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다.지금 우리의 지도자들은 어디에 해당하는 것일까. 인터넷을 수놓고 있는 지도자에 대한 온갖 비난과 비속어들은 업신여김을 받는다는 항변일 것이다. 대도가 폐하면 인이니 의니 하는 것이 나서고, 지략이니 지모니 하는 것이 설치면 엄청난 위선이 만연하게 됩니다. 가족관계가 조화롭지 못하면 효니 자(慈)니 하는 것이 나서고,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충신이 생깁니다.이렇게 되면 국가나 사회, 가정이 혼란에 빠지고 서로 ‘네 탓’만 하게 된다. 공자 시대에도 도가 땅에 떨어졌다고 했다지만 지금 우리 시대의 자화상도 여기에 해당하는 것 같다. 언제나 욕심이 없으니 이름하여 ‘작음’이라 하겠습니다. 온갖 것 다 모여드나 주인노릇 하려 하지 않으니 이름하여 ‘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스스로 위대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노자는 어머니를 도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자식이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나 놀 때나 아플 때나 언제나 옆에서 그림자처럼 이슬처럼 사랑으로 덮어주고 적셔주는 존재가 어머니다. 자식이 아무리 성가시게 하더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식에게 무엇을 바라지 않으며 평생 자식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은 채 좌지우지하려 하지도 않는다.어머니는 이렇게 헌신적으로 자기를 비우며 자식만을 위해 존재한다.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런 욕심도 없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이런 비어 있는 상태를 묘사한다면 ‘작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어머니는 모든 자식의 모태요, 자식의 필요를 채워주는 끊임없는 공급원이요, 자식을 모두 감싸 안는 한없이 넓은 품이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묘사한다면 ‘크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를 알면, 그 자식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더할 수 없이 단단한 것을 이겨냅니다.이는 ‘그 자식을 보면 어머니를 알 수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란 물이다. 물은 자기를 내세우거나 자기주장을 고집하지 않는다. 길쭉한 그릇에 들어가면 길쭉해지고 동그란 그릇에 들어가면 동그래지고 추우면 굳고 더우면 풀어지고 뜨거우면 날아가고. 그러나 이 물이 가장 딱딱한 것, 바위나 쇠붙이 같은 것을 이긴다. 요즘 장맛비를 보면 물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잃음으로 얻기도 하고 얻음으로 잃는 일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좋아하면 그만큼 낭비가 크고 너무 많이 쌓아 두면 그만큼 크게 잃게 됩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아는 사람은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습니다.‘도덕경’에는 ‘고졸(古拙)’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도자기와 같이 고풍이 돌고 뭔가 서툰 듯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면에서 풍기는 어떤 멋 같은 것을 지니고 있음을 말한다. 어딘가 좀 모자란 듯하고 수줍은 듯한 데가 있어야 내면에서 먼저 나오는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합니다. 그러나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습니다. 완전히 가득 찬 것은 빈 듯합니다. 완전히 곧은 것은 굽은 듯합니다. 완전한 솜씨는 서투르게 보입니다. 완전한 웅변은 눌변으로 보입니다.역자 오강남은 함석헌 선생의 예를 든다. 함석헌 선생께 무슨 질문이든 던지면 첫마디가 “글쎄요”라는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동서고금(東西古今)의 거의 모든 사상에 통달하다시피 한 그분이 어찌 말을 잘 못하셨을까? 그분은 미리 짜인 각본 같은 대답이나 일차방정식처럼 직선적인 대답을 준비하고 다니지 않으셨다. 진정으로 속에서 우러나는 소견을 그때그때 듣는 사람의 사정에 알맞게 말씀하시려니 청산유수처럼 될 수가 없고 자연히 주저하는 듯, 더듬는 듯한 감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미리 꾸미고 다듬은 말이 아니라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말, 지극히 자연적인 마음 상태에서 나오는 말, 도에 입각한 말은 이렇게 눌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보다 듣는 사람의 심금을 움직이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정치가 맹맹하면 백성이 순박해지고, 정치가 똑똑하면 백성이 못되게 됩니다.요즘 정치와 정치가를 보면 백성을 못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입이 거칠어지고 본의 아니게 목소리를 높이게 만든다. 정치인에게 덕을 논하기가 되레 구차스럽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것과 같습니다.작은 생선은 통째로 구울 때는 잘 익을 때까지 가만히 두어야 한다. 즉, 가만히 두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생선을 구울 때는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익숙한 솜씨로 잘 익도록 다뤄야 한다.큰일은 언제나 대비하기 때문에 큰일로 비화되지 않는다. 큰일이 되어 낭패를 보게 되는 경우는 대부분 작은 일을 방치했을 때가 많다. 가볍게 수락하는 사람은 믿음성이 없는 법이고, 너무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어려운 일을 맞게 마련이다. 어려운 일을 하려면 그것이 쉬울 때 해야 하고 큰일을 하려면 그것이 작을 때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세상에서 제일 큰일도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q고졸미(古拙美)란 서툰 듯하면서 내면에서 풍기는 어떤 멋 같은 것을 지니고 있음을 말한다.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이 강한 카리스마보다 고졸미가 아닐까.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