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남성의 스타일링

사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남성의 옷장엔 계절이 없다. 코트가 있느냐 없느냐로 여름과 겨울을 겨우 구별할 정도다. 여름이 오면 여성들은 하늘하늘한 옷감에 아찔하고 시원한 프린트가 가득한 옷차림으로 여름을 만끽하며 특히 반짝거리고 존재감 있는 귀고리, 뱅글(bangle:팔찌나 발찌), 목걸이 등 각종 액세서리로 한껏 멋을 낸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성들의 ‘여름’ 스타일링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컬러감이나 무늬도 밋밋할뿐더러 좀처럼 멋을 낼 수 있는 아이템이 한정돼 있다. 아니, 안타깝게도 우리 남성들 스스로 한정 짓고 있는 듯하다.그렇다면 여름철, 남성들이 과하지 않게 멋을 낼 수 있는 센스 있는 스타일링 법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심한 더위를 먹은 것처럼 거부반응부터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는 이러한 추상적인 질문보다 조금은 반칙이지만 다른 방법을 이번 주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올여름 가장 하고 싶은 액세서리를 하나 먼저 선택하자.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스타일링을 맞춰보는 식으로 하면 어떨까. 좋은 스타일링 연습도 되고 특별한 기분이 들 수도 있을지 모른다. 우선 손쉽게 어떤 남성이라도 가지고 있는 시계를 가지고 시작해 보자. 센스 있는 시계 하나로도 남자는 멋지게 변신할 수 있다.그러면 시계를 하나 고르기 전에, 잠시 올여름 남성 시계의 경향을 조금 짚어보자. 올여름에도 지난해에 이어 40mm 이상의 빅 사이즈, 화려한 디자인의 시계가 유행할 전망이다. 브랜드마다 고온에서도 변화가 없는 초경질 소재 세라믹이나 가벼운 티타늄 등 기능성 소재 채택에 나섰고 여름 레저 활동에 적합한 고무로 된 스트랩 시계들을 선보였다. 그리고 여름엔 블랙·브라운 등 어두운 톤보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함을 선사하는 화이트·블루 계열이, 가죽 스트랩보다 땀이 잘 차지 않는 고무와 메탈 스트랩이 강세를 보인다.필자의 예를 들어보겠다. 지난봄 지인으로부터 스위스 바젤 페어 때 출시된 ‘스와로브스키’의 하얀 고무 스트랩의 ‘옥티아 스포츠(OCtea Sport)’를 생일 선물로 받았다. ‘바젤 월드 페어’는 스와치그룹 주도로 스위스 소도시 바젤에서 열리는 세계 45개국 2000여 개 시계·보석 업체가 참가하는 명실 공히 세계 최대 규모의 시계 박람회다. 이때 받은 선물은 이 박람회에 출시된 아이템 중 하나여서 그 시계를 선물 받고는 무척이나 애착이 갔지만 시계의 색상이 화이트라 선뜻 개시하지 못하고 박스에 고이고이 모셔 두고 있었다.그러다 최근 날씨가 더워지면서 시원한 스트라이프 머린 룩과 함께 ‘옥티아 스포츠’ 시계를 근사하게 차게 된 것이다.많은 남성들의 로망, ‘소녀시대’도 올여름 한층 성숙해진 머린 룩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해마다 바캉스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머린 룩이란 흔히 해군이나 선원의 복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스타일로 흰색과 블랙의 깔끔한 줄무늬 셔츠 또는 재킷과 심플한 흰 바지를 매치함으로써 남성들도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다. 남성의 머린 룩은 정장과 캐주얼을 두루 넘나들며 연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필자는 올여름 순전히 선물 받은 ‘스와로브스키’ 화이트 시계를 차기 위해 머린 룩을 역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란 말이다. 그러면 또 해군복을 어디서 얻어다 입을 수도 없고 어떻게 그 부담스럽고 어려운 ‘머린 룩’을 입어야 한단 말인가. 그 해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우선 머린 룩의 상징인 스프라이프 패턴을 적극 이용하자. 적당히 가는 간격의 세로 스트라이프 셔츠는 손쉽게 머린 룩의 분위기를 만들어 줄뿐더러 직장 내에서도 입을 수 있을 만큼 무난하다. 티셔츠를 선택했다면 라운드 넥 가로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머린 룩의 분위기를 살리기에 적당하다. 컬러는 역시 채도 높은 블루 계열이 좋다. 그에 맞는 팬츠는 화이트 팬츠가 베스트지만 활동성을 생각한다면 인디고 진도 좋다. 여기에 요팅 슈즈를 매치한다면 그야말로 머린 룩의 완성이라고 할 만하다. 이 아이템들은 화이트 컬러의 시계와 만났을 때 제대로 빛을 발할 것이다.참고로 이번 시즌 돌체앤가바나(D&G)가 제안하는 머린 룩은 그야말로 머린 룩의 정석이라고 할 만하다. 왼쪽 가슴에 머린 룩을 상징하는 큼직한 와펜(Wappen:문장)이 돋보이는 화이트 컬러의 피케 셔츠 시리즈는 이번 여름 강추 아이템이다. 특히 화이트, 네이비, 레드 컬러를 이용한 비대칭 스트라이프 패턴의 피케 셔츠는 베스트 아이템이라고 할 만하다.올여름 빌딩 숲 속에서나, 뜨겁게 태양빛이 내리쬐는 해변에서도 이렇게 입고 ‘스와로브스키’의 화이트 ‘옥티아 스포츠’를 찬다면 당신은 소녀시대의 멋진 오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꼭 화이트 시계가 아니어도 좋다. 올여름 스포티하지만 한층 세련된 ‘테크노 마린’의 ‘로얄 마린(RoyalMarine)’ 블루 컬러 시계를 포인트 아이템으로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강렬하고 심플한 블루 컬러 고무 스트랩과 같은 컬러의 시계판, 게다가 영화 ‘트랜스포머’의 로봇이 연상되는 각이 뚜렷한 스틸 베젤까지 남성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시계이다.그러나 젊음과 명예, 남성다움을 연상시키는 블루 컬러가 아무리 유행이라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남자들이 선뜻 블루 컬러 의상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 강렬한 블루 컬러 고무 스트랩 시계에는 어떤 의상을 스타일링할지 살펴보자. 우선 고가의 시계라고 해서 꼭 부담스럽게 옷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친절한 가격대의 브랜드에서 고급스럽게 보이는 룩을 만들어 훌륭한 시계로 마무리해 준다면 전체의 스타일링이 매우 고급스럽게 살아나는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남성 셔츠와 타이를 전문으로 파는 브랜드인 ‘더 클래스(The class)’에 가면 잔잔한 하늘색 체크 셔츠(3만9900원)와 진 하늘색 면 팬츠(4만9900원)를 올여름 건질 수 있을 것이다.쿨해 보이면서도 댄디한 룩을 어렵지 않게 연출할 수 있으며 주머니 사정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흰 가죽 벨트나 아니면 블루 컬러의 시계에 맞게 블루 색상의 천으로 짠 위빙 벨트를 매치하고 경쾌하게 캔버스 흰색 운동화를 신자. 그리고 블루 컬러의 ‘로얄 마린’ 시계로 스타일링의 화룡점정을 찍어보라.마지막으로 이번에는 그야말로 가장 흔한 실버 메탈의 시계로 한 번 패션 스타일링을 역으로 맞추어 보자. 반소매 셔츠 아래로 드러나는 팔목에 차가운 느낌의 메탈 시계는 언제나 시원함과 깔끔함을 느낄 수 있다. 필자는 ‘폴 스미스’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파이브 아이즈 크로노그래프(Five eyes chronograph)’를 조심스레 올여름 실버 메탈 시계로 우선 추천해 본다. 흔히 볼 수 있는 유광 메탈이 아닌, 세련된 무광 메탈 브레이슬릿은 보는 이로 하여금 청량감마저 느끼게 해주며 베이지 시계판에 오렌지 바탕의 크로노그래프가 어우러져 고급스러움을 더한다.이 경우에는 조금은 포멀하지만 캐주얼함을 잃지 않는 아이템들과 매치하는 것이 좋다. 특히 재킷 스타일과 궁합이 좋다. 덥다고 해서 재킷 스타일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여름이면 다양한 브랜드가 리넨 소재나 시어서커(seersucker: 물결무늬가 있는 인도산 직물) 소재 등의 여름 재킷들이 선보이니 참고하도록 하자.특히 아메리칸 클래식 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룩스 브라더스’는 ‘폴 스미스’의 위트 넘치는 영국적 이미지와 만나면서 환상적인 궁합을 보여준다. ‘브룩스 브라더스’가 이번 시즌 선보인 블루 컬러 시어서커 슈트에 ‘폴 스미스’의 메탈 브레이슬릿 시계를 매치한다면 포멀한 룩과 캐주얼 룩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전천후 룩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이 칼럼을 쓰면서 소싯적 필자가 기억이 난다. 외출하러 나가다가 향수 뿌리는 것을 깜박 잊었더라면 아무리 멀리 나갔더라도 기어코 다시 집으로 돌아가 향수를 뿌리고 외출해야만 했다.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 나에게 향수는 스타일링의 완성이었고 구두, 가방이 그러했다. 하지만 올여름은 외출 전 거울을 보며 스타일을 체크할 때 시계가 그 마지막 방점을 찍고 있다. 시계야말로 남자의 정체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남성의 액세서리라고 할 수 있다. 여름이 무더워지고 있다. 반소매 아래로 노출되는 손목에서부터 스타일링의 완성을 한번 시도해 보자.h@office-h.com1994년 호주 매쿼리대 졸업. 95~96년 닥터마틴 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 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보그, 바자, 엘르, 지큐, 아레나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 버블 by 샴페인맨’ ‘행복한 마이너’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