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일 동아특수정밀 대표

지난 1970년대 말. 서울 성수동에 있는 동아특수정밀(당시 사명은 동아공업사) 회사에 잇단 항의 전화가 걸려 왔다. 상대방은 “제품 생산을 중단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소리를 지른 뒤 전화를 ‘쾅’하며 끊었다. 이런 전화가 거의 매일 이어졌다. 동아특수정밀의 생산 제품은 버스 문 자동 개폐기. 버스 문을 자동으로 안전하게 열었다 닫았다 하는 장치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산화한 것이다.전화를 건 상대방은 이 장치로 인해 실직의 위기에 놓인 버스 안내양들이었다. 지금은 추억의 한 장면 속으로 사라졌지만 당시 버스 안내양들은 콩나물 시루같은 버스 문에 매달려 “오라이”와 “스톱”을 반복하며 곡예사처럼 힘든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버스 문 자동 개폐기가 개발돼 일자리를 잃게 될 처지에 놓이자 거세게 항의한 것이다. 실제 이 회사 때문에 버스 안내양이라는 직업이 자취를 감췄다.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동아특수정밀(대표 전병일)은 세계적인 자동차 출입문 개폐기 업체로 자리 잡았다. 인천 남동공단 유수지 부근에 있는 이 회사는 버스 문 자동 개폐기를 생산해 국내 자동차 업체에 독점 공급하는 업체로 자리 잡았고 중국의 베이징과 선양에 공장을 세워 현지에도 납품하고 있다.그뿐만 아니라 각종 상을 휩쓸고 있다. 수입대체유공기업(산업포장) 무재해산업체포상 중소기업진흥 공로상(철탑산업훈장) 등을 수상한데 이어 지난 7월 초에는 산업안전보건의 날에 국내 중소기업으로선 처음으로 대상(동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무재해 20배(6914일) 달성 기록을 인정받은 것이다. 거의 20년 동안 재해가 생기지 않는 안전 작업장을 만들어 온 것이다.동아특수정밀은 지난 1976년 전병일(58) 대표의 부친인 전준식 회장이 창업한 업체다. 설립 초기에 자동차 출입문 안전 개폐기를 개발해 특허를 내면서 현대 대우 아시아자동차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 장치를 단 것은 서울역과 인천을 왕복하는 삼화고속이었다. 현재 생산하는 주력 제품도 역시 이 장치다. 하지만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해 스윙도어 폴딩도어 슬라이딩도어 등 다양한 종류의 개폐기를 만든다. 방식은 공압식과 전동식이 있다.버스를 탈 때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장치가 바로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이다. 공기(공압식)나 전동장치(전동식)에 의해 작동된다. 그렇다고 그렇게 간단한 제품은 아니다. 주변에 센서가 달려 있어 사람이 계단에 있을 땐 문이 닫히지 않는다. 또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에는 일정 거리 안에 사람이 있으면 문이 닫히지 않는 등 다양한 안전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만약 잘못 작동되면 사고로 이어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브레이크 부품, 더스트 인디케이터(엔진실 내부의 오염 여부를 판단하는 기기) 등 자동차 부품을 만들고 있다.전병일 대표는 원래 대학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고려대 생물학과를 나온 뒤 이 분야를 전공해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업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닫고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거쳐 공장 근무를 시작했다. 밑바닥 생활부터 터득했다. 제품의 연구·개발과 생산·판매·자금 등 각 분야를 두루 거치며 경영 수업을 쌓은 뒤 1987년부터 대표를 맡아 22년째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이 과정에서 일본의 신화오토메틱과 기술 제휴해 앞선 기술을 들여오고 미국으로의 수출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와 함께 개폐기용 솔레노이드 밸브를 개발해 특허를 취득하고 버스 문 자동 개폐기에 대해서도 특허를 얻었다. 승용차 문 자동 개폐 장치도 개발하는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그는 사업을 하면서 두 가지를 중시했다. 하나는 기술 개발이다. 전 대표는 번 돈의 대부분을 기술 개발에 쏟아 부었다. 외국의 첨단 기술을 도입하거나 자체 개발을 통해 자사의 기술로 체화했다. “처음에는 일본 기술을 들여다 성능을 높였지만 이제는 일본을 능가할 정도의 기술력을 확보했다”고 전 대표는 밝힌다. 이 회사의 브랜드는 다스코(DASCO)다. 회사의 영문 이니셜을 조합해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회사의 제품의 품질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중국에서 비슷한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또 하나는 산업 안전이다. 무려 20년 동안 산업 재해가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은 이 회사가 얼마나 산업 안전에 힘을 쏟는지 보여준다. 사업장의 안전은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숙련된 기술을 축적하는데도 아주 중요하다는 게 전 대표의 생각이다.전 대표는 대표이사를 맡은 초창기인 1989년 7월부터 무재해 운동을 진두지휘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예컨대 이 회사의 기계장치에는 대부분 센서가 붙어 있다. 따라서 손이 기계 부근으로 들어가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는 장치가 부착돼 있다. 특히 재해 발생 가능성이 있는 구형 선반을 안전한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컴퓨터 수치 제어) 선반으로 교체했다.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리프트를 새로 구입하기도 했다. 중량물 운반에 따른 근로자의 요통 예방을 위해 이동식 적재대 10개와 서서 작업하는 근로자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피로 예방 매트 13개를 구입했다.이 과정에서 직원과의 대화는 항상 쌍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며 그 바탕에는 사랑과 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을 갖게 됐다.전 대표의 취미는 클래식 음악 감상이다. 지금도 400여 장의 LP(Long Playing)반을 소장하고 클래식을 즐겨 듣는다. 그는 “이런 음악 사랑이 딸의 음악적 감수성을 길러주는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한다. 전 대표의 딸은 국립발레단 솔리스트인 전효정(30) 씨로 전효정 씨는 작년 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국제발레콩쿠르에서 일반부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다.전 대표의 모친(김학자) 역시 발레 무용가 출신으로 국립발레단원과 발레아카데미 교장을 역임했으며 최근 예술원 회원이 됐다.전 대표는 금메달에 빛나는 딸처럼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자동차 부품의 경우 독일 기술이 미국을 거쳐 일본으로 들어왔고 한국으로 넘어왔다”며 “독일은 10단계 기술 개발 절차가 필요하면 이것을 반드시 밟는 반면 일본은 2~3단계 건너뛰는 압축 방식을 택해 독일 기술이 더 정교하다”고 평한다. 그는 “앞으로 우리는 독일을 넘어서는 기술을 이룩해 낼 것”이라며 “이를 위해 근로자와 경영자가 한 몸이 돼 뛸 것”이라고 밝힌다.창업: 1976년본사 및 공장: 서울 여의도(본사), 인천 남동공단(공장),중국(베이징 및 선양 공장)생산 제품: 자동차용 승하차 문 자동 개폐 시스템(공압식 및전동식 개폐기, 공압 밸브, 컨트롤러 및 안전 장치류),배기 브레이크 밸브류 등 자동차 부품판매: 내수 및 수출(중국 동남아 중동 남미 등)약력: 1951년생. 74년 고려대 생물학과 졸업. 76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수료. 80년 동아특수정밀 입사. 87년 동아특수정밀 대표(현). 2000년 인천시 벤처기업협회 이사(현). 대한핸드볼협회 부회장(역임). 고려대 인천경제인회 회장(현). 수상;산업포장.동탑산업훈장(산업안전보건의 날) 등.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