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감세 논쟁으로 국회가 뜨겁다. 논쟁의 한가운데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있다. MB 노믹스를 대표하는 감세 기조의 후퇴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연이어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그는 7월 13일 국회 재정위 전체회의에서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 유보 의사를 묻는 질문에 “감세 정책은 현 단계에서 변경할 생각이 없지만 경제 정책상 상황 변화에 대해 가변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며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성역은 없다”고 답했다.이 발언을 들은 대부분의 재정부 관계자와 기자들은 “감세 정책을 변경할 생각이 없다”는 말보다 “성역은 없다”에 더 주목했다. 감세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둔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윤 장관은 섣불리 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치밀한 계산과 전략을 짠 끝에 말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평소에 ‘경제 정책의 일관성’을 무엇보다 강조해 왔다. 사람들은 그런 그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것도 국회의원들을 앞에 두고 감세 철회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분명 속뜻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사실 정부는 계속해 재정건전성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작년 9월부터 지금까지 세 번에 걸쳐 32조 원에 달하는 추경을 편성했다. 이에 따른 나라 빚은 내년에 국채 이자만 20조 원 넘게 지급할 지경에 이르렀다.물론 재정 확대 정책을 선회할 가능성은 없다. 여전히 경기는 불확실하고 민간 부문의 투자도 여전히 냉랭하다. 그나마 재정을 쏟아 부은 덕분에 통계청이 7월 15일 발표한 6월 고용 동향에서 취업자 수가 처음으로 전년 동기 대비 플러스로 회복했다.결국 재정부가 선택하고 있는 것은 재정 확대 기조 유지 속의 세출 구조조정과 세입 확대 방안이다. 여기에 나오는 것이 부자 증세다.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감세한 부분을 담배세와 주세, 개별소비세 등으로 서민들에게 거둬 채워 넣는다는 반발 여론이 많아지자 내놓은 대책이다.여기에 대표적인 것이 올해 비과세 일몰(日沒·자동 폐지)이 도래하는 86개 비과세·감면 제도다. 정부는 이 중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주로 지원이 돌아가는 세목을 폐지 또는 조정 대상에 올려놓았다.이 중 투자액의 3~10%만큼 법인세를 깎아 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가 대표적이다. 임시투자세액공제의 80% 이상이 대기업 몫인데다 연구·개발(R&D)과 원천 기술 투자에 대해서는 세액공제를 대폭 늘렸기 때문에 임시투자세액공제를 폐지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올해 말 일몰이 돌아오는 신용카드에 대한 소득공제 제도(연봉의 20%를 넘는 금액 중 20%까지 500만 원 한도로 공제해 주는 제도)도 500만 원 공제 한도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소득층에 많이 돌아가는 세금 혜택을 줄이겠다는 것이다.3채 이상 주택 보유자가 전세 보증금으로 받은 돈이 3억 원이 넘는 경우 이르면 내년부터 임대소득세를 내도록 하는 방안도 역시 고소득층 증세의 일환이다.반면 국회에 계류 중인 증여세와 상속세 감면 법안은 시행이 유보되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법인세 감면 방안 역시 과세표준 2억 원 이하는 올해 11%에서 내년 10%로, 2억 원 초과는 22%에서 20%로 낮추기로 돼 있지만 이 또한 유보될 가능성이 크다.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도 크다. 지난해 하반기 정부는 대규모 감세 정책을 발표할 때만 하더라도 감세로 인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소비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었다.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경기 회복을 위해 고소득층의 소비와 대기업 투자가 절실한 시점에서 소비 심리와 투자 심리를 냉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감세 정책 철회가 오히려 재정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경기 침체로 국민소득이 큰 폭으로 감소한 상황에서 감세 정책이 보류되면 조세 부담률이 크게 높아진다”며 “이는 잠재성장률을 둔화시키고 투자와 고용을 위축, 국가 채무를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박신영·한국경제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