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개 든 부동산 버블 논란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다. 과잉 유동성 논란 속에 800조 원으로 추정되는 단기 부동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는 모습이다. 실물 경기는 잔뜩 움츠려 있지만 부동산 시장은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 같은 기세라면 전고점이었던 2006년 하반기를 돌파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부동산 정보 제공 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6월 넷째 주 서울지역 아파트 매매 값은 0.15% 상승했다. 5월만 하더라도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 재건축 아파트 값만 오른 것과 달리 지난 6월 중순부터는 사실상 서울 전 지역이 오름세로 돌아선 것이다. 실물 거래의 바로미터인 경매 시장으로도 시간이 갈수록 투자자들이 몰리는 양상이다. 지난 6월 수도권 고가 아파트(6억 원 초과)의 낙찰가율은 83.64%로 전달에 비해 1.23%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2007년 4월(87.68%) 이후 26개월 만에 최고치다.이에 따라 정부가 우려한 집값 불안이 현실화되는 양상이다. 지금 당장 모습만 놓고 보면 집값 상승세는 서울을 넘어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강남 재건축, 버블 세븐 등 과거 참여정부가 줄기차게 집값을 틀어쥔 지역뿐만 아니라 서울시가 추진하는 동북권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수혜 지역인 노원·도봉구까지 강세 대열에 합류하자 정책 당국의 고민도 그만큼 깊어졌다.이러자 정부도 다급해졌다. 당초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겠느냐며 낙관적인 입장을 취하던 정책 당국이 ‘예의 주시’ 쪽으로 정책 기조를 바꾼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시중은행의 가계 대출 비중이 늘자 정부는 시중은행의 수도권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60%에서 50%로 하향 조정했으며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담보대출 비율 규제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액은 전월보다 3조5000억 원 증가한 254조 4000억 원으로 2006년 11월(5조 4000억 원)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아직은 소수 의견이지만 ‘일본 주택 거품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불과 반년 전만 하더라도 극심한 시장 침체를 겪던 것과 비교하면 정반대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 일본 주택 거품론은 과거 2006년 초반 논란거리였지만 거품론자들은 오히려 지금 상황이 일본과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강남으로 대표되는 서울 일부 지역의 집값 이상 급등 현상은 유동성 증가에 투기 세력이 가세한 것밖에는 별다르게 해석하기 힘들다는 주장이다.일본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등 세계 모든 나라에 부동산 값 거품이 생긴 것은 저금리와 통화량 증가 때문이다. 최근 전 세계 금융 공황을 불러온 미국도 시발점은 담보대출 비율이 10% 미만인 상황에서 은행들이 저금리를 무기로 무리하게 대출 경쟁을 벌였다는 데 있다. 일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특히 일본의 부동산 거품은 여러모로 볼 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일본 정부가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해 건설 경기 부양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나카소네 내각은 1987년 국토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하는 ‘다극분산형’ 국토 개발 계획(열도개조론)을 발표해 사실상 전 국토의 개발 분위기를 조성한 바 있다. 도쿄를 국제금융도시로 육성하고 도쿄에 집중된 수도 기능을 다른 대도시로 이전하는 방안이 나온 것도 이 당시다. 최근 서울 한강변 아파트 재개발과 강남 재건축 규제 완화, 서울 서남권, 동북권 개발 프로젝트가 서울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과 비슷하다.여기에 은행이 저금리 기조를 펼치면서 부동산으로 자금 유입이 가속화됐다는 점도 최근 우리 상황과 비슷하다. 지난 1985년 엔 고(高)를 용인하는 플라자 합의 이후 경기가 둔화되자 일본은 경기 부양을 위해 5%였던 금리를 1년 만에 2.5%까지 떨어뜨렸다. 금리 인하는 자연스럽게 대출 경쟁으로 이어져 결국 부동산 값 거품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빚었다.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부동산 가치에 대해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점도 유사하다. 결국 일본은 부동산 값 거품 붕괴가 산업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면서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만드는 단초를 제공하게 됐다.최근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치더라도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은 부동산 값 거품이라는 기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정부는 일본형 거품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LTV가 미국과 일본보다 낮아 현실화될 가능성이 작다는 식으로 얘기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집값 불안이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 한정돼 있어 일본 미국과 같은 상황이 재연되기 힘들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만 놓고 보면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전 지역은 아니더라도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 한해 국지적인 버블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은 충분하다.때문에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전문연구위원은 “2009년 들어 경제 위기에 대한 공포 심리가 빠르게 진정되면서 주택 수요가 살아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재건축, 재개발에 대한 초과 이익 환수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내수 경기 악화를 우려해 버블 붕괴 기간 동안 일본 정부가 민간 건설 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공공 공사 보완으로 건설사들의 재정을 직간접 지원해 준 것도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볼 때 유사하다. 건설업계 싱크탱크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지난 6월 5일 5월 건설 기업 경기실사지수(CBSI)는 전월 대비 6.6포인트 상승한 86.6을 기록해 2005년 6월에 86.4를 기록한 이후 47개월(3년 11개월) 만에 85선을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6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간 것. 연구원은 지수 상승 이유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증액 및 조기 집행에 따른 공공 공사 수주 증가 현상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대신 민간 부문은 분양 시장 침체로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고 이 연구원은 밝혔다. 결국 정부가 건설 경기 부양으로 고용 창출과 내수 경기 활성화는 기대할 수 있겠지만 기업 체질을 바꾸는 근원적인 처방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우리 상황을 낙관적으로 볼 수만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오히려 금리 인하 속도, 재정지출 확대는 1980년 말 일본보다 더 크기 때문에 가격 거품 현상이 더 심화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우리 금융 당국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라는 시한폭탄의 뇌관을 제거하지 못한 상태다. 하반기 추가 재정 투입이 한계에 직면한 상태에서 실물경기가 예상만큼 좋아지지 않을 경우 집값 폭락은 실현 가능성이 충분한 시나리오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유동성이 풍부한 상태에서 LTV를 축소하는 것은 투기 세력에 경쟁자를 줄여주는 효과만 거둘 뿐”이라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집값이 더블딥(double dip:이중 침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김 소장은 “미국과 같은 급락보다는 일본과 같이 2~3년에 걸쳐 가격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아시아형’ 집값 폭락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라면서 “현재로선 정부가 시장에 정확한 시그널을 줘야 하며 지자체를 포함한 거시적인 부동산 정책을 새롭게 재정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부동 자금을 차단하기 위해 시장 규제를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때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각종 개발 프로젝트를 쏟아내는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 정책 기조를 긴밀하게 협의하는 방안도 필요하다.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