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규제와 부동산 가격

일부 부동산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대출 규제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린다고 한다. 이유는 실물 경기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동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만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과연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며, 그 효과가 있을까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국민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해 2분기에 전국의 집값 상승률은 0.4%라고 한다. 1억 원짜리 집이라면 3개월간 40만 원 정도 올랐다는 의미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집값은 바닥을 쳤다는 상징적인 의미 이외에는 없다. 그러나 이 결과를 지역별로 꼼꼼히 살펴보면 그 내용은 조금 다르다. 전통적 인기 지역인 강남 3구의 경우 강남구 1.9%, 서초구 1.7%, 송파구 1.2% 순으로 올라 시장 평균 상승률을 앞서고 있다. 이 밖에 목동이 포함된 양천구 2.1%, 강동구 2.2%, 용산구 2.7%, 마포구가 2.2% 올라 강남 3구의 상승률을 초과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7개 지역을 제외한 서울시의 나머지 18개 자치구는 3개월간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고 있으며 도봉구 서대문구 성북구 중랑구 등 일부 강북 지역과 구로구 금천구 등 서민이 많이 사는 지역은 오히려 집값이 내리고 있다. 같은 서울이라도 이렇듯 지역에 따라 체감온도가 확연히 다른 것이다.이 때문에 현시점에서 과연 주택 담보대출 규제라는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강남3구를 비롯해 7개구의 시장 평균 상승률이 상승세로 돌아섰다고는 하지만 이는 작년 9월의 국제 금융 위기 사태 이후 하락한 시세의 일부만 회복한 것이기 때문이다.실제로 범위를 넓혀서 작년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9개월간의 주택 시장 상승률을 살펴보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 지역 25개 자치구 중 시세가 오른 곳은 중구 0.7%, 종로구 0.5%, 용산구 0.2% 단 세 곳뿐이다. 나머지 22개 자치구가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강남3구의 경우 강남구 마이너스 4.0%, 서초구 마이너스 4.9%, 송파구 마이너스 4.4%로 4% 이상의 하락률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최근 몇 달간의 상승률은 그동안의 하락분에 비하면 작은 반등에 불과한 것이다. 경기도나 인천 등 다른 수도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년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과천이 2.6% 상승한 것을 제외하고는 경기도 전 지역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평균 3.7% 하락했다. 인천도 인천 동구를 제외하고 모든 지역이 하락해 평균 1.6%가 떨어진 상태다. 지방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정부 일각에서는 대출 규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듯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규제책은 크게 세 가지 방향이다. 첫째는 작년 11월 3일 대출 규제 완화 이전으로의 환원이다. 6억 원 이상 주택에 대해 담보인정비율(LTV:Loan To Value ratio)을 종전과 같이 40%로 환원하는 동시에 차주의 경제적 능력이나 신용도를 감안한 총부채상환비율(DTI:Debt To Income) 규제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일부 급등한 지역만을 대상으로 대출 규제를 하는 방법이다. 셋째는 특정 지역을 정하지 않고 은행으로 들어가는 돈줄 자체를 묶어 두는 방법이다. 이 세 가지 방향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자.현재의 주택 시장은 오르는 곳만 오르고, 나머지 곳은 거래조차 한산한 상태이므로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대출 규제를 실시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으로 극심한 거래 부진에 빠진 서울 강북 지역이나 수도권 북부 지역, 그리고 미분양 주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방 주택 시장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무차별적인 규제가 적용될 경우 부동자금은 오히려 강남3구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대출 규제의 전국적인 확대라는 의미는 다시 말해 이미 대출 규제가 실시 중인 강남3구의 경우는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는 것이고, 다른 지역으로 갈 투자 수요가 오히려 강남3구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결국 전국적인 대출 규제가 확대된다면 양극화가 지금보다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그러면 이번에는 가격이 급등하는 일부 지역만 대출 규제를 실시하는 방안에 대해 살펴보자. 앞서 언급한 대로 강남3구 이외에 2분기 시세 상승률이 시장 평균을 크게 웃도는 용산구(2.7%), 마포구(2.2%), 강동구(2.2%) 양천구(2.1%)와 과천(10.7%)이 그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남3구는 이미 대출 규제가 실시 중이기 때문에 영향이 덜할 테지만 나머지 5개 지역은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특정 지역만을 대출 규제로 묶어 놓을 경우 풍선효과에 의해 다른 지역이 반사이익을 얻게 돼 상승세가 퍼져 나간다는데 있다. 당장 작년 11월 대출 규제 해제 시 강남3구만 풀어놓지 않으니 그보다 약간 싼 지역인 용산 강동 양천 마포 과천 지역의 집값이 오른 것이다. 만약 이들 5개 지역을 묶어 놓게 된다면 그 다음은 광진 성동 영등포 동작 분당 등 옐로칩 지역들이 오르게 될 것이다. 전형적인 풍선효과가 재현되는 것이다. 더욱이 특정 지역만 대출 규제로 묶어 둘 방법이 모호하다. 강남3구와 같이 투기지역으로 다시 묶어둔다면 대출 규제뿐만 아니라 지난 4월 말에 개정한 양도세 특례 조항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즉, 새로 투기지역으로 지정되는 지역에 위치한 주택을 팔 경우 일반과세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10%의 가산세까지 물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양도세 감면을 받으려는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줄어들게 돼 시세가 오히려 오르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세 번째 규제 방향은 특정 지역을 정하지 않고 은행의 대출 총량을 규제하는 방법이다. 즉, 대출 규모 등 총론만 정부가 제시하고 세부 방법 등은 은행에 맡기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의 신용도와 경제 능력을 감안해 대출 한도에 차별을 두게 돼도 대출 규제에 대한 직접적인 반발이 정부가 아닌 은행으로 몰리게 된다는 점에서 정부가 선호하는 듯하다. 명분 측면에서도 은행에 자율권을 주는 듯한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일방적인 규제의 형태와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기존의 큰 틀을 깨지 않고 위에서 서술한 부작용도 줄이면서 주택 시장으로 들어가는 돈줄을 자연스럽게 죄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 방법에도 부작용은 있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이에 따라 수익성과 안정성을 대출의 핵심 기준으로 삼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수익성 제고를 위해 대출 금리를 자연스럽게 인상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많은데 빌려줄 돈이 제한된다면 시중금리가 올라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이런 방향이 은행의 수익성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작용되니, 정부 시책에도 따르고 은행 수익도 올리는 꿩 먹고 알 먹는 식이 되는 것이다. 또 안정성 측면에서도 대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빌려줄 사람을 골라서 빌려줄 수 있으니 담보 능력이나 대출 상환 능력, 신용도에서 아무래도 불리한 서민층보다는 재정적으로 안정된 사람에게 대출해 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한마디로 서민의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대출 받기가 더 어려워지면서 이자율도 올라가는 이중고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면 시장은 어떻게 반응할까. 서민층의 수요가 많은 지역은 약세를 면하기 어렵고 재정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은 강세를 띠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결국은 어떤 형태의 규제라고 하더라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순간 부작용은 반드시 시장에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금융 당국은 눈앞의 현상만 보지 말고 시장을 좀 더 길게 보고 신중한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1970~80년대와 같이 정부가 미시 조정을 하기에는 너무 커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시장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거시경제의 측면에서 실물 경기 회복과 연동해 주택 시장을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마케팅 회사의 최고재무관리책임자(CFO)로 재직 중이며 국내 최대 부동산 동호회인 ‘아기곰동호회’의 운영자이자 저명한 부동산 칼럼니스트다.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는 객관적인 사고와 통계적 근거를 앞세우는 과학적 분석으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기조를 정확히 예측한 바 있으며 기존의 부동산 투자 이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최근 신간 ‘부동산 비타민’을 내놓았다.아기곰 a-cute-be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