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이스의 ‘반란’
총 31개 분야에서 1위를 가리는 ‘2009 상반기 베스트 애널리스트’ 조사. 여기서 팀제 평가를 하는 스몰캡 부문과 채권 부문을 제외하면 29명의 1등 애널리스트들이 선정된다. 이번 조사의 경우 장효선 애널리스트와 주익찬 애널리스트가 각각 2관왕을 차지했으니 27명의 애널리스트만이 1000여 명에 달하는 국내 애널리스트 중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 1위에 오른 애널리스트 중 처음으로 ‘베스트 애널리스트’의 영예를 차지한 애널리스트들은 무려 10명에 달한다. 그동안 상위권 애널리스트들이 치열한 각축전 끝에 서로 자리를 뺏고 뺏기며 1위 자리바꿈을 해 온 경우는 꽤 있었다. 지난 2008년 하반기 베스트 애널리스트 조사 때만 하더라도 15명의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자리바꿈을 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처럼 10명의 애널리스트들이 ‘무더기’로 첫 1위의 영광을 안은 조사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 같은 현상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해석했다. 첫째는 ‘세대교체’다. 물론 세대교체는 항상 있어 왔다. 하지만 이번엔 규모가 다르다. 이유는 작년 신규 증권사들이 대거 설립된 데 있다. 업계의 대규모 인력 이동 과정에서 기존 베스트급 애널리스트들이 센터장 등의 관리 업무를 전담하거나 동시에 맡으면서 해당 분야에서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된 것. 그 결과 그간 3~10위권의 다크호스들이 큰 점프를 할 수 있게 됐다.사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두 번째 이유다. 최근의 갈팡질팡하는 시장 상황 때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세 상승장, 혹은 하락장의 경우 애널리스트의 시각은 대개 비슷하게 마련”이라며 “최근 같이 횡보를 거듭하는 장세에서 오히려 애널리스트의 옥석이 가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존의 시각을 벗어난 참신한 관점에서의 분석이 오히려 투자자들의 진정한 나침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세계경제의 시스템을 뒤바꿔 놓을지도 모르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과거의 분석 관점을 답습하기만 한다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이유가 무려 10명이나 되는 애널리스트들이 쟁쟁한 선배 베스트 애널리스트들을 제치고 ‘왕좌’를 차지한 원인이 된 것이다.‘2009년 상반기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뽑힌 애널리스트 중 최고의 스타를 꼽으라면 아마도 IBK투자증권의 고태봉 애널리스트일 것이다. 2008년 하반기 조사까지만 해도 고 애널리스트는 10위까지 발표하는 애널리스트 순위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그는 단박에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1973년생인 고 애널리스트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대우증권에서 일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기업 탐방 리포트에 사진을 직접 찍어 올리는 등 당시로서는 ‘한 발 앞선’ 리포트로 업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하지만 ‘끼’가 넘치는 그는 2004년부터 크레던스라는 투자 부티크(초소형 금융사)로 자리를 옮기며 애널리스트 직을 떠났었다.5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2008년 하반기 신설 증권사인 IBK투자증권의 애널리스트로 복귀하며 이번 조사에서 단숨에 자동차·타이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고 애널리스트는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로 ‘주위의 도움’과 ‘재미있게 일하려고 노력했던 점’을 꼽았다. 그는 “변화된 리서치 환경이 낯설고 더 힘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관 매니저, 기업설명회(IR) 담당자, 법인부, 부서원들이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며 “자칫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일에서 행복을 느끼고 보람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이 일의 능률로 이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신설 회사이기 때문에 기존 리서치센터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며 “그래서인지 한결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토양이 됐다”고 말했다.그는 종목 선정의 기준을 ‘내가 사고 싶지 않으면 남도 사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 또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남도 이해시킬 수 없다’는 생각으로 리포트를 썼고 세미나에 임했다고 했다. 5년 동안 이뤄졌던 ‘실전 경험’에서 나온 그의 이 같은 생각이 이번 조사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다.제약·바이오 부문의 권재현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도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최근 애널리스트 선발의 큰 트렌드 중 하나는 해당 분야의 ‘업계 출신’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특히 제약·바이오 부문의 경우 이 같은 현상은 더 심해 혜성처럼 등장해 상위권을 차지하거나 순위가 껑충 뛰어오른 애널리스트의 경력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약사나 관련 업계 출신이다.2007년부터 애널리스트 생활을 시작한 권 애널리스트는 2008년 하반기 조사에서는 불과 11위에 그쳤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다른 애널리스트들을 큰 폭으로 따돌리며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이렇게 높은 점프의 비결은 당연히 그가 ‘현업 출신’이라는 데 있다. 그는 코스닥 상장사인 오스코텍의 연구소에서 연구와 사업개발팀 근무 등 현장에서 뛴 경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또 그는 생명공학 분야 박사학위까지 가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제약 업계의 화두인 신약 개발에 직접 뛰어들어 본 경험이 있으니 당연히 매니저들도 그의 리포트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이번 조사의 특징 중 하나는 베스트 증권사 부문에서 대신증권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베스트 증권사에서 4위를 차지한 대신증권은 베스트 애널리스트 숫자로는 대우증권에 이어 4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좋은 결과는 조윤남 전재천 애널리스트 등 기존 베스트 애널리스트 외에 정연우 최정욱 애널리스트 등 1999년부터 기업 분석 업무를 담당해 온 중견 애널리스트 콤비의 ‘스퍼트’가 큰 몫을 담당했다. 이들은 그간 하위권에서부터 한 계단 한 계단 순위를 높여가며 2~3위권까지 순위를 끌어올려 왔지만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선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정연우 애널리스트는 1999년 대신경제연구소에 입사해 지금까지 기업 분석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대신맨’이다. 최정욱 애널리스트 역시 1999년부터 한국투자증권에서 애널리스트 일을 시작했다. 이후 2007년 대신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은행 및 카드 분야의 기업 분석을 맡고 있다.이 밖에도 현대증권의 김장열 애널리스트, 키움증권의 김지산 애널리스트, 신영증권의 한승호 애널리스트, 동양종합금융증권의 박기현 애널리스트, 동부증권의 지기호 애널리스트가 첫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오르며 본인과 회사의 명예를 높였다.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