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쟁력 현주소

“연구 실적이 정년 보장과 승진을 결정하는 중요 판단 기준이 되지 않는다면 한국 경영대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과다한 강의 시간과 일률적인 연봉 체계도 당장 뜯어고쳐야 할 점입니다.”‘한국 경영대의 국제 경쟁력 현주소’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상건 성균관대 경영대학장은 한국 경영대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선 인센티브 확충과 연구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부와 대학본부의 지나친 간섭 등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했다.그는 “질보다 양으로 연구 성과를 판단하는 것이 한국 경영대학의 현실이다. 이렇게 되면 시스템적으로 맹점이 생긴다”며 “최근 우리 대학 내 한 마케팅 담당 교수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인정받은 수준급 논문이 3개나 되는데 근속연수가 모자라 승진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그는 “이 같은 연구 풍토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해당 교수의 경쟁력 향상은 물론 양질의 연구 보고서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학장은 교수 연봉 체계가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을 예로 들면서 “이 같은 이유로 교수들이 외부 컨설팅이나 강연 등으로 수입을 충당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경영대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이 학장에 따르면 성균관대 경영대의 경우 교수 1인당 강의 시간은 규정상 12학점이지만 비전공 수업까지 합치면 22학점이 넘는다. 연구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해외 유수 학술지에 기고할 수준의 논문이 나오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미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금융학 박사 학위를 받고 로드아일랜드주립대, 피츠버그대 교수, 하와이대 금융부문 석좌교수 등을 지낸 이 학장은 국내 경영대학들이 세계 유수의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연구와 교육, 대학 행정 등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그는 세계 상위 25개 경영대는 교수 1인당 평균 3과목 정도 강의하며 학기(9개월) 중 여름방학 두 달 간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대학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는 점을 주목했다. 평균 연봉도 20만 달러 이상이다. 그는 “순도 높은 연구 실적을 내도록 데이터베이스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지원책도 잘 마련돼 있다”면서 타 대학과의 공동 연구와 관련 세미나 등이 다양한 것도 해외 유수 경영대의 강점으로 꼽았다.이 학장은 “지난 4월 말 모교인 오하이오 주립대의 한 세미나에 참석할 일이 있었는데 교수 20명, 박사학위 과정자 40명 등 총 60명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는 것이 너무도 부러웠다”면서 “아시아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경영대 세미나도 분위기가 너무나 학구적이어서 큰 감명을 받았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지난 1990년부터 2007년까지 18년간 세계 4개 경영학 저널에 기고된 것을 기초로 금융 부문 경영대 순위를 살펴보면 뉴욕대(NYU), 시카고대, 펜실베이니아대, 하버드대, UCLA(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순으로 랭크됐다. 아시아에서는 홍콩과학기술대가 21위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 학장은 “상위 5개 대학은 1년에 평균 12~15편씩을 해외 유명 학술지에 기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미 애리조나 주립대가 조사한 상위 50개 금융 부문 경영대학은 미국 대학이 45개로 가장 많았고 캐나다는 토론토대와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등 2곳, 영국은 런던비즈니스스쿨(LBS), 프랑스는 인시아드(INSEAD:유럽경영대학원),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홍콩과학기술대가 랭크됐다.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영대학의 현주소는 과연 어디일까. 이 학장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경영대학의 현주소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1990년부터 2004년까지 유명 경영학술지 21곳에 기고한 연구 실적을 살펴보면 홍콩과 싱가포르 대학들이 각각 550페이지, 325페이지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34페이지를 기록해 대만(55페이지)보다 낮은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호주와 뉴질랜드는 각각 133페이지, 105페이지를 기록해 이 통계만 놓고 보면 우리보다 연구실적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현재 국내 경영학 관련 학과를 설치한 대학이 대략 150여 개인 것을 감안하면 지난 14년간 학교당 한 해 평균 0.4페이지 정도를 해외 학술지에 기고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홍콩 내 경영학 과정이 설치된 대학은 총 8곳으로 이들 대학에서 기고한 분량만 550페이지다. 각 대학마다 한 해 4.9페이지씩을 발표한 셈이다. 연구 실적만 놓고 봐도 우리와는 큰 차이가 난다.현재 아시아 경영대학 순위는 홍콩과기대, 홍콩공과대, 홍콩중문대가 1~3위를 달리고 있다. 그 다음을 싱가포르 난양공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싱가포르국립대가 뒤쫓고 있으며 홍콩시립대와 시드니대, 멜버른대, 모나시(Monash)대 등이 3위 군을 형성하고 있다. 톱 10에 홍콩(4개), 싱가포르(2개), 호주(4개) 대학들만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은 이들 국가의 대학들이 국제화 흐름에 그만큼 발 빠르게 대처했다는 방증이다.그렇다면 세계 수준의 경영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학장은 성공 경영대의 공통분모(Common Denominators)를 ‘연구 강화’와 ‘지원금 확충’으로 요약해 설명했다.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석좌교수급 연구 인력을 대거 늘려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함께 대학은 양질의 연구를 위한 금전적·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특별하고 실용적인 프로그램을 수입원으로 만드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또 경영대학이 다양하고 효율적인 연구, 교육·훈련 프로그램 센터 역할을 수행하는데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며 이를 통해 사회와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후원금 유치에 대학이 발 벗고 나설 것도 함께 주문했다.아시아개발은행(ADB) 상근학자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서 활동한 ‘국제통’답게 이 학장은 경영대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단기 처방으로 정부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 학장은 “성공한 경영대학일수록 공공보다 민간 지원액이 훨씬 많다”면서 “모교인 오하이오대만 해도 경영대 건물이 5개나 되는데 이 중 1개는 호텔로 사용돼 수익 사업용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정부나 연방정부의 지원액이 적다보니 대학의 자율성이 크게 존중받고 있다는 것이 이 학장의 설명이다.그는 그러면서 “UCLA, UC버클리대 경영대 교수들은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포함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다”면서 “주립대에 속해 있으면 주 정부가 정한 규정을 준수해야 해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데 제약이 뒤따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이 학장은 각 대학에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주는 것이 대한민국 경영대 경쟁력을 높이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사회나 대학본부에도 실무를 책임지는 경영대학장, 경영대학원장 등의 권한과 책임을 최대한 부여해 줄 것을 함께 주문했다.이 학장은 “세계 수준 연구대학(WCU), 두뇌한국(BK21) 사업 등에 각 대학들이 너무 의존하다 보니 대학의 자율성과 독창성이 많이 훼손되는 느낌”이라면서 “학생 정원까지 정부가 규제하는 경우는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들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