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이명박 대통령의 한 핵심 참모는 일요일인 6월 21일 오전 모처럼 등산길에 나섰다.청와대 직원들은 일요일에도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이 참모는 아침 일찍 산에 올랐다가 출근할 예정이었다. 그는 몇몇 기자들과 북한산을 등반하던 도중 청와대로부터 긴급 호출 전화를 받았다. 운전사에게 산 아래까지 오라고 급하게 연락한 후 이 참모는 내려갈 채비를 했다.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인사 발표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 참모는 “그런 것 같다. 발표 때까지 오프로 해 달라”고 말한 후 하산했다.이 참모는 이 대통령을 항상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핵심 중 핵심 측근이다. 웬만한 인사 내용을 알만한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구체적 인선 내용뿐만 아니라 발표 시점까지도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채 산에 오른 것이다.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초 6월 말 정도에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가 허를 찔렸다.검찰총장, 국세청장 인사는 이렇게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와 백용호 국세청장 내정자 모두 언론 하마평에 후보자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발표 아침까지도 언론들은 검찰총장 후보로 권재진 서울고검장과 문성우 대검차장을 유력 후보로 올리며 권 고검장이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보도했다. 국세청장엔 허병익 직무대행(차장)의 승진 전망과 함께 허용석 관세청장, 윤영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등도 거론된다고 썼다. 줄줄이 오보를 낸 셈이다.철통 보안 속에 진행됐기 때문에 인사 내용을 아는 사람은 이 대통령 이외에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김명식 인사비서관 등 3, 4명에 불과했다. 인사 라인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상황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의외의 인사를 휴일에 깜짝 발표할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게 핵심 수석들의 반응이다.심지어 인사 검증을 책임지고 있는 민정 라인에서조차 “전혀 짐작하지 못한 예상 밖의 깜짝 발탁”이라며 놀라워했다. 민정 라인에서도 발표 당일 아침까지 검찰총장 후보자로 권재진 고검장을 유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권 고검장에게 “준비하라”는 전화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쪽에서도 권 고검장의 내정을 염두에 두고 실무 준비까지 했다.민정 라인에선 권 고검장을 검찰총장 후보 1순위로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주변에선 국세청장으로 지난 5개월간 허병익 대행 체제가 무난했다는 점에서 허 차장의 승진 기용설이 유력하게 나돌았다.그러나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일찌감치 ‘변화’와 ‘개혁’을 최우선 방점을 두고 후보를 골랐다는 후문이다. 이동관 대변인은 “당초부터 검찰총장은 조직의 일신과 세대교체에, 국세청장은 외부 인사의 발탁과 전문성에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어쨌든 이번 인사로 이 대통령의 ‘깜짝 발표’ 스타일이 굳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해와 올해 세 차례에 걸친 개각을 비롯한 인사 개편 때 일단 그 사실을 부인한 후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다가 막판 깜짝 발표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파문이 터진 4월 말부터 내각 및 청와대 참모들 물갈이설이 나돌았지만 “세게 훈련했는데 뭘 또 바꾸나(5월 9일)” “문제가 있을 때마다 바꾸면 일을 할 수 없다(6월 19일)”고 했다. 이동관 대변인도 “아무것도 결정된 것 없다.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다가 결국 6월 19일 청와대 수석을 대폭 교체했다. 이 대변인을 제외한 전 수석 교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물갈이’ 인사였다.지난 1월 19일 개각 때도 마찬가지였다. 9월 금융 위기로 인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팀 교체 목소리가 터져 나왔을 때도 이 대통령은 “각 정권 경제장관들이 1년도 못 채우고 바뀐 예가 많다. 신뢰가 중요하다(9월 9일)” “장관 하나 바꿔 나라가 잘될 것 같으면 매일 바꾸겠다(11월 23일)”는 등으로 차단막을 쳤다. 심지어 이 대변인은 “개각이 있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까지 했다. 당시 교체된 국방부 차관은 인사 발표 때 해외 출장 중이었고 국방장관도 차관이 바뀌는 줄 몰랐다고 한다.여권 여기저기서 7월 개각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이번에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딱 잡아떼고 있다. 이러다가 한여름 또 한 번의 ‘깜짝 개각’을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홍영식·한국경제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