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화려한 변신

모차르트가 오페라 ‘돈 조반니’를 초연한 도시.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의 숨결이 어려 있는 곳. 작곡가 드보르자크와 스메타나의 애수어린 가락이 절로 흥얼거려지는 곳. 유서 깊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심지로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걸작 미술품들이 모여 있는 도시 프라하.체코의 수도 프라하가 경제 위기 시대에 ‘고품격·저가격’을 무기로 한 예술 상품을 앞세우며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체코는 경제난으로 인해 유럽 내에서 문화 관련 정부 예산이 가장 적은 국가다. 하지만 풍부한 예술 자원과 국민 전반에 깔린 예술 감각, 수적으로 풍부한 예술가들을 바탕으로 소설과 영화, 미술품에서부터 체코 전통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 상품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동유럽권 대표 언론 중 하나인 ‘루마니아 리베라’는 최근 온라인 영어판을 통해 “체코가 싸면서도 풍성한 문화 자산을 바탕으로 글로벌 차원에서 문화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동유럽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에도 높은 수준의 풍부한 예술 인력 풀이 저가의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며 세계 문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 서구에 비해 전혀 뒤처지지 않는 양질의 문화 콘텐츠에 동유럽 특유의 저가 인건비가 결합되면서 매력적인 문화 상품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시장을 뚫고 있다는 분석이다.우선 소설 분야에선 밀란 쿤데라와 사회주의권 몰락 후 체코 대통령을 역임한 바츨라프 하펠의 라이벌 관계가 유지되면서 두 사람의 영향을 받은 우수한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됐다. 루도비크 바쿨리크, 보후밀 흐라발 등 중견 작가들도 쿤데라나 하펠 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꾸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같은 풍부한 문학적 토양을 바탕으로 꾸준히 양질의 작가들이 발굴되면서 체코어 사용 인구가 많지 않은데도 국제 출판계에서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하지만 정작 체코 문화 역량의 저력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바로 영화다. 1996년 아카데미 영화상 외국어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얀 스베르자크나 콜야와 같은 거장들이 터를 닦은 후 인구 1000만의 체코에서 매년 20여 편의 순도 높은 영화들이 생산되고 있다. 영화의 소재도 사회 현실과 안일한 소시민들의 삶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비평이 가미된 작품에서부터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 얘기까지 다양하다. 이 같은 체코의 수준급 영화들은 평균 50만 유로(약 9억 원) 정도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해외 판권이 거래되면서 국제 영화 시장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이와 함께 최근 주목받는 것은 체코의 전통 설화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 및 캐릭터 관련 관광 산업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 프라하의 골렘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다’라는 기사를 통해 프라하의 전통 캐릭터 골렘을 재조명했다.골렘은 1580년 프라하 유대인들이 타데우스라는 기독교 사제에게 목숨을 위협받자 당시 존경받는 랍비였던 뢰브가 신에게 계시를 받아 타데우스에 대항하기 위해 진흙으로 만든 거대한 인조인간을 가리킨다.뉴욕타임스는 프라하 거리 곳곳에 골렘 모양의 진흙 인형이 진열돼 팔리는가 하면 골렘 호텔, 골렘 식사, 심지어 골렘이란 이름의 차력사까지 TV에 등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프라하 관광에서 이제 골렘을 지나치지 않고는 도시에서 즐기고, 먹고, 자는게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이웃 독일 등에서 골렘을 소제로 20세기 초부터 영화를 만들어 왔듯, 또다시 유럽과 미주 지역에 골렘이라는 강력한 문화 상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제 위기의 시대에 불안한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본능을 자극하며 초자연적 힘을 지닌 존재인 골렘을 베스트셀러 상품으로 변모시켰다. 골렘 마케팅에 대해 프라하에 사는 한 유대 랍비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프라하 전체가 (체코의 대문호) 카프카의 기념품을 팔듯 이제 유대 전통이 팔리고 있다”고 설명했다.국내총생산(GDP)의 1%도 문화 관련 예산에 배정하지 않는 나라, 예술 공연과 관련된 법령도 구비돼 있지 않을 정도로 겉보기엔 문화에 무심한 나라 체코가 풍부한 자생적 문화 역량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의 문화 중심지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김동욱·한국경제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