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하이브리드카 전성시대
최근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자동차는 무엇일까. 답은 혼다의 하이브리드카 ‘인사이트’다.일본 자동차판매협회가 경차를 제외하고 4월 중 국내 신차 판매 대수 순위를 집계한 결과 인사이트가 1만481대로 1위를 차지했다. 올 2월부터 시판된 인사이트는 4월까지 2개월간 누계 판매 실적(1만9475대)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하이브리드카가 신차 판매 1위에 오르기는 처음이다.배기량 1300cc의 소형 하이브리드카인 인사이트는 최저 가격이 189만 엔(약 2400만 원) 수준으로 저렴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경쟁 차종인 도요타자동차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배기량 1500㏄)의 평균가격이 대당 234만 엔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20% 정도 싼 것이다.혼다의 인사이트가 ‘저렴한 하이브리드카’란 이미지로 히트를 치자 도요타자동차도 프리우스의 가격을 내리는 등 ‘맞불 작전’을 펴고 있다. 도요타는 5월 중순 시판하기 시작한 프리우스의 신형 모델(1800cc) 가격을 205만 엔(2600만 원)으로 크게 낮췄다. 기존 모델보다 배기량과 성능이 강화되고 내·외관 디자인 등이 월등히 좋아진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가격이다.세계 경기 침체로 판매 격감이라는 먹구름이 잔뜩 낀 일본 자동차 업계에 한줄기 빛이 내비치고 있다. 바로 하이브리드카다. 전기모터와 가솔린엔진을 동시에 사용해 연비를 크게 높인 하이브리드카가 궁지에 몰린 자동차 업체들의 탈출구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올해와 내년에 걸쳐 잇따라 새로운 하이브리드카를 시장에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하이브리드카로 사상 최악의 불황 탈출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전략이다.혼다는 현재 가장 잘 팔리는 차종 중 하나인 소형차 ‘휘트(Fit)’의 하이브리드 판을 내년 가을 시판하기로 했다. 당초 계획보다 1년 반 정도 앞당긴 것으로 혼다의 휘트 하이브리드 판은 올해 판매를 시작한 하이브리드 전용차인 ‘인사이트’와 같은 시스템을 사용할 예정이다.배기량 1300cc에 연비 성능은 리터당 30km 이상을 목표로 잡고 있다. 가격은 최저 189만 엔인 인사이트보다 30만 엔가량 싼 150만 엔 전후를 계획하고 있다. 혼다는 휘발유용 휘트가 지난해 국내에서 15만 대 팔렸기 때문에 하이브리드 판도 연간 5만 대가량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도요타자동차는 올해 안에 4개 하이브리드 차종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 여기엔 새로운 하이브리드 전용차인 렉서스 브랜드의 ‘HS250h’와 도요타 브랜드의 ‘SA1’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차체의 기본 구조와 하이브리드 시스템 등을 공통화하고 휘발유엔진 배기량은 2000cc 이상으로 해 기존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인 프리우스보다 크고 주행 성능이 좋은 차를 만든다는 것이다. 기존 모델의 하이브리드화를 주도하고 있는 도요타는 최근 판매를 시작한 신형 프리우스가 10만 대 이상 팔리는 등 큰 인기를 모으고 있어 앞으로도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을 계속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닛산자동차는 독자 개발한 하이브리드카 기술을 고급차 모델에 적용해 내년 중 미국과 일본에서 시판하기로 했다. 닛산은 내년에 전기자동차를 미국과 일본 시장에 내놓아 환경차 분야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도요타자동차와 혼다를 바짝 추격할 방침이다. 닛산은 올 가을 모델을 전면 개량하는 고급 차종인 ‘후가(해외명 인피니티M)’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 모델엔 전기모터와 배기량 3500cc급 엔진, 변속기 등을 넣어 전기 주행과 엔진 주행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한다는 목표다.도요타나 혼다의 하이브리드카와 다른 점은 니켈 수소 전지를 이용하지 않고, 리튬 이온 전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동차 무게를 가볍게 하고 가속 성능을 향상시킬 예정이다. 연비는 휘발유 리터당 16km 이상을 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후가의 하이브리드카는 도치기 현 공장에서 생산해 일본 국내는 물론 해외로 수출할 방침이다. 가격은 현재의 후가(3500cc, 450만~530만 엔)에 비해 다소 비싸게 책정될 전망이다. 닛산은 지난해 일본에서 후가를 8200대, 미국에서 인피니티M을 1만600대에 팔았다. 닛산은 앞으로도 고급 차종과 스포츠카 등에 하이브리드 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확대할 방침이다.고급 차종에 하이브리드 기술이 적용된 경우는 도요타의 ‘크라운’과 ‘렉서스’ 등이 있다. 수입차로는 독일 다임러 메르세데스벤츠가 올 가을 ‘S클래스’를, 독일 BMW가 내년 여름부터 ‘7시리즈’를 하이브리드카로 만들어 내놓을 계획이다. 현재는 하이브리드카가 소형 전용차 위주이지만 점차 부유층이나 기업들 사이에서도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고급 차종 모델도 잇따라 출시될 전망이다.후지중공업도 2011년께 하이브드리카를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후지중공업의 모리 이쿠오 사장은 최근 도쿄에서 주력 중형차인 ‘레거시’의 새 모델을 발표한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2010년대 초에는 독자적인 하이브드리카를 시장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후지중공업은 회사의 최대 주주이자 하이브리드카 분야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도요타자동차로부터 관련 기술을 제공 받아 자사 브랜드의 승용차에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할 계획이다. 도요타와의 제휴 관계를 하이브리드카로 확대해 이 시장에 참여하는 셈이다.모리 사장은 어떤 차종에 하이브리드 엔진을 얹을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론 후지중공업이 독자 기술로 개발한 엔진에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을 적용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요타로선 하이브리드카의 주요 부품인 모터나 전지, 제어장치 등을 후지중공업과 공동 사용함으로써 원가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렇게 자동차 업체들이 앞 다퉈 하이브리드카 출시에 나섬에 따라 일본 승용차 판매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카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10%에서 2011년에는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일본자동차공업회에 따르면 올해 일본 내 승용차 판매(경자동차 제외)는 227만6000대로 전년보다 8.4%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하이브리드카는 작년보다 4% 늘어난 22만 대 이상이 팔릴 것으로 전망된다.일본의 자동차 업체들은 해외시장엔 배기량 1000~1300cc급 소형차를 잇달아 투입한다는 전략이다. 불황에 따른 세계 소비자들의 소형차 선호에 적극 호응하기 위해서다.마쓰다자동차는 내년부터 배기량 1300~1500cc의 소형차 ‘데미오’의 북미 수출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동안 국내와 유럽 시장에만 주력해 왔지만 세계 동시 불황과 환경 규제 강화에 따라 대형차 위주였던 미국 시장에서도 소형차 판매가 늘어날 것이란 판단에서다. 중국에서도 연내에 마쓰다의 최대 판매 모델인 소형차 ‘엑세라’의 생산을 연간 6만 대 이상 늘릴 계획이다.닛산은 소형차 ‘픽소’를 6월부터 유럽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배기량 1000cc로 닛산이 유럽에서 파는 차종 중에선 가장 작은 차다. 가격은 90만 엔(약 1200만 원) 선으로 정할 예정이다. 스즈키자동차는 중국에서 올 여름에 신형 ‘알토’의 현지 생산을 시작하기로 했다.도요타도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서 1500cc 이하인 ‘비츠’의 판촉을 강화하는 한편 신흥국 공략을 위한 저가격 소형차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혼다는 소형차 ‘휘트’를 중국 인도 이외에도 올 가을부터 영국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수출을 포함해 일본 자동차 생산에서 차지하는 배기량 2000cc급 이하의 자동차 비율은 작년 가을까지 40%였지만 올 1분기(1~3월)엔 60%로 올라갔다.차병석·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