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퀄컴은 휴대전화의 핵심 기술인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을 1989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회사다. 퀄컴은 이 원천 기술로 전 세계 160개 이상의 이동통신 단말기 제조업체와 CDMA 관련 특허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다.이 회사의 2008 회계연도 기준 매출액은 111억 달러(14조 원 상당)다. 지역별 매출 비중은 한국이 35%로 가장 높고 중국(21%) 일본(14%) 순이다. 연간 3조 원 정도를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것이다.이런 퀄컴이 한국에서 사상 최대의 과징금을 물게 될 위기에 놓였다. 2006년부터 퀄컴의 불공정 거래 및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를 조사해 온 공정거래위원회가 5월 27일 전원회의를 열고 퀄컴의 불공정 거래 혐의를 제재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기 때문이다.퀄컴은 1995년 이후 국내에서 거둬들인 로열티만 4조 원에 가까운 것으로 추산되는데 만일 이번에 불공정 행위가 입증되면 관련 매출의 3%까지 과징금을 부과 받을 수 있다. 공정위는 이미 2006년 마이크로소프트에 325억 원, 지난해 인텔에 206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공정위는 이날 퀄컴이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자사 제품만 구매하는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경쟁사의 제품을 쓰는 곳에 차별적으로 높은 로열티를 부과한 혐의를 심의했다. 퀄컴이 CDMA 및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3G) 칩셋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휴대전화 업체에 공급하면서 다른 부품을 끼워 팔았는지도 심의 대상이었다.이날 전원회의 위원들은 사건을 조사해 온 공정위 심사관과 퀄컴 측의 공방전을 지켜봤다. 퀄컴은 법무법인 세종과 화우로 방어 진용을 구축해 공정위와의 일전을 준비할 만큼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퀄컴은 이 자리에서 제품 판매의 한 방법일 뿐 불공정 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퀄컴이 우려하는 것은 큰 액수의 과징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의 제재가 전 세계에서 처음이어서 결과에 따라 글로벌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미국 공정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을 만난 공정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한국이 인텔·퀄컴 등 글로벌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적극적으로 조사하자 미국 측도 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전해 미국 측이 한국의 판례를 적극 활용할 예정임을 시사했다.사실 퀄컴의 혐의는 판단하기 모호한 부분도 있다. 각종 전자기기들의 소형화와 맞물려 반도체 기능이 복합화되는 상황에서 ‘끼워 팔기’의 개념이 모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공정위의 퀄컴 제재가 현실화될 경우 국내 기업들의 위신 하락도 우려된다. 국내 휴대전화 업체들이 리베이트를 받고 부품을 구입해 완제품을 수출했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이기 때문이다.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도 이번 공정위 판결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경쟁 당국 가운데 공정위가 처음으로 제재를 결정하는 데다 퀄컴 최대 수익처가 한국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IT 업계에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퀄컴 관계자는 이날 “우리는 한국에서 합법적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며 “공정위에 이런 내용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퀄컴은 지난 3월 11일에도 보도 자료를 내고 “공정위가 멀티미디어 솔루션의 칩셋 통합 및 리베이트와 칩셋 고객사에 제공한 할인과 연관된 특정 사업 관행의 적법성에 관한 주장을 설명하는 심사 보고서를 전달했다”며 “우리의 사업 행위는 합법적”이라고 반박했다. 공정위가 주장한 끼워 팔기는 멀티미디어 솔루션의 칩셋 통합이고 차별적 로열티 부과는 할인 정책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최종 판결은 한두 차례 전원회의를 더 가진 뒤 이르면 6월 중순께 나올 전망이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전 세계 경쟁 당국 중 우리나라 공정위가 처음으로 조사를 마무리해 제재 결정 수순에 들어감에 따라 각국이 공정위 결정을 예의 주시하는 상황”이라며 “사건 내용도 복잡해 쉽게 전원회의에서 결론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지만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는다는 게 공정위 방침”이라고 말했다.박신영·한국경제 기자 nyusos@hankyung.com